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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일의 맥] 떠나는 이동국과 정조국의 메시지는 뻔해서 곱씹힌다

(서울=뉴스1) 임성일 기자 | 2020-12-02 11:25 송고
이동국 전북현대 선수가 1일 전북 전주시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1 최종전에서 승리하며 은퇴경기를 우승으로 장식한 가운데 음료를 마시며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2020.11.1/뉴스1 © News1 유경석 기자
이동국 전북현대 선수가 1일 전북 전주시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1 최종전에서 승리하며 은퇴경기를 우승으로 장식한 가운데 음료를 마시며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2020.11.1/뉴스1 © News1 유경석 기자

이동국(41)과 정조국(36)은 공통분모가 많은 축구 선수다.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낸 스트라이커였다. 포철공고 때부터 이미 전국구 스타였던 이동국은 1998년 포항스틸러스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하자마자 11골(2도움)을 터뜨리며 신인왕에 등극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대신고 시절 초고교급 선수로 통했던 정조국은 2003년 안양LG 유니폼을 입고 K리그에 입성, 12골(2도움)을 기록하며 역시 신인왕 타이틀을 잡고 프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 시절 '황금의 다리'로 통했던 최정민 선생을 시작으로 이회택-차범근-최순호-황선홍으로 이어지던 대한민국 스트라이커 계보의 적자라 칭해지던 이들이니 소위 타고난 유형의 선수들이었다. 동시에 지독한 노력파였다.

공히 롱런했다. 두 선수 모두 2020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는데 이동국은 23년, 정조국은 18년 프로생활이었다. 조카뻘 되는 선수들과도 공을 찼다. 타인과의 경쟁도 경쟁이지만, 다양한 형태의 '자기와의 싸움'에서 패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임을 떠올릴 때 박수 받아 마땅한 선수들이었다.

은퇴의 가장 큰 이유는 둘 다 "몸이 아픈 것은 참을 수 있어도 정신적으로 나약해지는 나는 참을 수 없었다"였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프로 커리어 내내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위치에서 뛰었던 이들이 지독하게도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살아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화려했지만 이동국과 정조국만큼 혹독한 시련을 겪은 선수들도 없다. 그런데 번번이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이동국 스스로 '인생최악'이라 말한 2002 월드컵 엔트리 탈락과 최전성기였던 2006 독일월드컵 직전의 십자인대파열은 굴곡을 담고 싶은 소설이라 해도 삼류 같던 설정이다. 그냥 주저앉았다고 해도 사람들이 토닥여줬을 시련에도 이동국은 2007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 진출했고 2009년 전북현대로 이적해 올해까지 총 8번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FC서울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정조국은 2015시즌이 끝난 뒤 팀에서 사실상 방출됐다. 정조국은 "앞으로도 그런 상처는 없을 것"이라는 표현으로 믿을 수 없는 좌절이라 말했다. 그렇게 떠밀리듯 옮긴 2016년 광주FC에서 정조국은, 20골을 터뜨리며 득점왕에 올랐다. 우승팀이나 준우승팀이 아닌 8위팀 광주FC에서 MVP 정조국이 배출된 해다.

패트리어트 정조국이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제주유나이티드 제공) © 뉴스1
패트리어트 정조국이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제주유나이티드 제공) © 뉴스1

요컨대 '남들과 다른 피'를 지닌 이동국과 정조국으로 출발했으나 이후 '남들과 다른 땀'으로 뼈를 깎았다. '초심을 잃지 않고 최고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라는 신념이 라이언킹 이동국과 패트리어트 정조국을 빚은 비결이었다. 너무 뻔해서, 그래서 곱씹을 필요가 있다.

이동국은 "언제나 '올해가 마지막이다'라는 자세로 뛴 것 같다. 멀리 보지 않고 바로 앞 경기만 생각하며 땀 흘렸다. 좌절? 나보다 더 큰 좌절을 맛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으로 견뎠다. 나보다 더 고통 받는 사람보다는 내가 행복하다는 생각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왔다. 프로니까 경쟁하고 경쟁에서 살아남아야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리고 경쟁에서 이기려면, 당연히 남들보다 나은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해야하지 않겠나"라고 은퇴식 때 이야기했다.

FC서울을 떠나던 무렵 "어떻게 하면 과거를 잊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결국은 훈련밖에는 없었다. 땀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그저 뛰었다"던 정조국은 은퇴하며 "젊은 친구들, 이제 이 악물고 뛰는 것 좋아하지 않는다. 세대는 달라졌고 선택은 존중되어야하지만 곁에서 지켜보면 아쉬움도 든다. 좋은 선수들이 판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면, 판에서 뛰는 사람들이 고민해봐야한다"고 말했다.

두 선수에 앞서 시대를 풍미했던 스트라이커 황선홍 전 감독은 "축구는 사실 설명이 잘 안 되는 때가 있다. 평상시라면 앞쪽으로 이동해야하는 경우인데 이상스레 몸이 뒤로 움직일 때도 있다. 그럴 때는 틀림없이 크로스가 길게 넘어온다"는 무용담을 전한 적 있다. 다음 설명이 중요하다.

그는 "필드에서 연습하는 것은 다 한다. 필드가 아닌 곳에서도, 머릿속으로도 끊임없이 (이미지)트레이닝 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상상해야 한다. 상상하면, 분명 는다"면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모두 염두에 두고 필드에 나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엄청난 차이다. 몸이 알아서 반응해야한다. 몸이 반응한다는 것은 그만큼 준비를 잘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타고난 이들이 그렇지 못한 이들보다 더 노력한다면 답은 뻔하다. 축구대표팀이 소집됐을 때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개인훈련 하는 이들을 살펴보면 손흥민이 빠지지 않는다. 주위에서 아무리 '힘내'라고 외쳐도 자신이 힘쓰려 노력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lastuncl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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