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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전담맡은 공공병원…취약계층 응급상황시 '의료공백' 심각

'죽음에 대한 공포' 속에서도 병원 전전하다 결국 '귀가'
빈곤·사회적 낙인 문제로 취약층의 민간병원 접근성 떨어져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2020-11-30 06:30 송고
당뇨합병증으로 양발을 절단한 윤영환씨(가명)의 의족. © 뉴스1
당뇨합병증으로 양발을 절단한 윤영환씨(가명)의 의족. © 뉴스1

당뇨합병증인 골수염으로 양쪽 무릎 밑 다리를 절단한 윤영환씨(가명·57)는 지난 8월 다리에 또 염증이 생겼다. 몸에 열이 나는 것이 느껴지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염증이 심해지면 다시 무릎 위로 다리를 절단해야 할수 밖에 없기에 영환씨는 119에 전화를 걸었다.

영환씨를 받아주는 병원은 없었다. 평소 다니던 공공병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응급실이 폐쇄됐다. 구급차가 찾은 민간병원들은 영환씨가 열이 난다는 이유, 환자가 많다는 이유 등을 들며 진료를 거부했다. 119 대원들도 진료가 가능한 병원을 알지 못했다.
구급차는 병원 3곳을 돌았지만 영환씨는 응급치료를 받지 못했다. 자신을 위해 고생하는 119 대원들에게 미안함이 느껴진 영환씨는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가겠다 했다. 이후 이틀을 영환씨는 해열제로 버텼다. 골수염이 패혈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이 몰려왔다. 영환씨는 "이대로 세상을 뜨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공포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다음날 민간 병원의 외래진료를 받을 수도 있었지만 걱정이 되는 것은 '돈'이었다. 영환씨는 기초생활수급비로 살아가는 서울 용산구 쪽방촌 주민이다. 민간병원에 진료비를 받으면 생계를 꾸려가기가 힘들었다. 결국 공공병원에서 자신을 진료하는 주치의가 외래진료를 볼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영환씨를 포함해 빈곤층, 사회적 취약 계층들은 경제적·사회적인 이유로 의료 서비스 제공을 공공의료기관에 전적으로 의존해왔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19의 확산으로 공공병원들이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응급한 진료를 받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20여개 시민단체가 연대한 '코로나19 의료공백 인권실태조사단'은 쪽방촌 거주민, HIV(에이즈) 감염인, 장애인, 이주노동자, 의료인 등 13명을 심층 인터뷰해 사회적 약자들이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체험하고 있는 의료공백 사례들을 조사했다.

조사단이 지난 26일 발표한 '코로나19 의료공백인권실태조사보고서'에는 영환씨의 사례처럼 기존에도 여러 차별을 받고 있었던 취약계층들이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의료공백 상태에 빠져있는 상황이 여실히 담겨 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일일 확진자가 450명을 기록해 3일만에 500명 밑으로 내려간 29일 오전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 마련된 코로나19 선별진료소를 찾은 시민들이 검사를 위해 줄 서 있다.  2020.11.29/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일일 확진자가 450명을 기록해 3일만에 500명 밑으로 내려간 29일 오전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 마련된 코로나19 선별진료소를 찾은 시민들이 검사를 위해 줄 서 있다.  2020.11.29/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인권활동가 A씨는 최근 진료를 거부당해 사망한 이주노동자 B씨의 사례를 조사단에 소개했다. B씨는 심장에 통증을 느껴 찾아간 병원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열과 기침이 없었지만 병원에서는 '당신들은 거짓말로 입원할 수 있다'며 검사가 꼭 필요하다고 했다.

결국 병원에서 약만 처방받아 기숙사로 돌아온 B씨는 곧 통증으로 인해 의식이 혼미해졌고 주변의 신고로 병원에 이송되던 중 사망했다.

HIV감염인인 C씨의 경우 일터에서 기계 조장 중 사고로 엄지손가락이 절단됐다. 가까운 서울, 경기 지역 10여 군데 병원에 연락을 했지만 모두 HIV 감염을 이유로 수술을 거부했다. 구급차에 실려 병원을 오가던 C씨는 사고 약 15시간 만에 수술을 해줄 수 있는 병원을 찾아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손가락에 영구장애 진단을 받았다.

빈곤층, 이주민, HIV감염인들의 경우 경제적인 이유에 더해 평소 사회적 취약층에 대한 사회적인 '낙인' 때문에 민간병원보다 공공병원에서 진료를 받아왔다. 하지만 공공병원들이 코로나19 방역에 초점을 맞추면서 의료공백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다.

조사단은 "공공병원이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취약계층들은 긴급한 상황에서 이용할 의료자원을 찾아 민간병원의 문을 두드리는 수밖에 없으나, 코로나19 상황은 민간병원이 다시 이들을 쉽게 거부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진단했다.

조사 보고서에 사례로 담기지 않았으나 노숙인들의 경우에도 비슷한 의료공백을 겪고 있었다. 홈리스행동에 따르면 지난 8월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던 D씨가 갑자기 피를 토하기 시작해 119 구급대에 실려 5개 병원을 돌아다녔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어 다시 서울역으로 돌아오는 사례가 있었다.

노숙인들의 경우 지정된 병원에서만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서울 시내에서 노숙인 진료시설로 지정된 2차 이상 병원은 국립중앙병원, 서울시의료원 등 9개소에 불과하고 이들 상당수도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됐다. 외래 진료는 가능하지만 응급상황 시 응급실 이용은 대부분 불가능하다.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확산의 대응과 취약계층들의 의료공백화를 막기 위해서 취약한 공공의료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 국내 전체 병상 중 공공병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0%로 경제협력기구(OECD) 최하위 수준이다.

최규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인권위원장은 "코로나 상황에서 기존 공공의료가 갖고 있던 취약성이 위기와 결합하면서 진료와 치료가 원활히 이뤄지지 못하는 공백의 상황을 만들어냈다"라며 "이는 오래전부터 의료공공성을 외면한 채 영리화만 추진해온 결과"라고 진단했다.


potgu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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