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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재구성]휴대폰 대리점 찾은 '호갱'…요금 명세서 월 400만원

"사기 막으려면 휴대폰 1대 더 개통해야" 또다시 속임수
통신사 대리점장 '사기' 혐의 유죄…벌금 200만원 불과

(서울=뉴스1) 정혜민 기자 | 2020-11-28 07:00 송고 | 2020-11-28 10:49 최종수정
© News1 김일환 디자이너
© News1 김일환 디자이너

약 400만원.

피해자 A씨가 서울 마포구의 한 통신사 대리점과의 '악연'으로 매달 납부하게 된 휴대전화와 인터넷 요금이다. 웬만한 직장인의 월급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이 어마어마한 요금을 A씨는 어쩌다가 내게 됐을까.
사건은 2019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A씨의 주장에 따르면, A씨는 통신사 대리점에 들렀다가 직원인 B씨와 급격히 가까워졌다. 대리점 직원들은 A씨와 B씨가 '특별한 관계'라는 점을 모두 알 수 있었다.

하지만 A씨는 B씨로부터 잇따른 사기를 당해 속앓이를 했다. 자신의 명의로 B씨에게 휴대폰 기기를 개통해 '선물'해줬는데 B씨는 A씨의 명의로 된 기기들을 계속 변경하고 소액결제를 반복했다. A씨 앞으로 청구되는 각종 요금들은 불어났다.

A씨가 이런 사정을 터놓고 도움을 구하던 상대는 박씨가 일하던 대리점의 점장인 고모씨(28)였다. 하지만 고씨는 '천사의 얼굴을 한 악마'였다.

고씨는 A씨를 도와주겠다는 핑계를 대며 자신도 A씨에게 사기를 쳤다. 고씨가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은 A씨는 고씨의 사기에 쉽게 넘어갔다.
2019년 5월. A씨는 고씨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대리점에 방문했다. A씨는 고씨에게 "B에게서 휴대전화 사기를 당했다"고 호소했다. 고씨는 "B가 고객들에게 사기를 쳤다. 일단 B가 사용하는 번호를 막아야 된다"고 호응했다.

고씨가 제안한 해결책은 A씨 명의로 휴대폰을 1대 더 개통하고 그 단말기를 중고로 팔아 그 돈으로 피해분을 메우는 것이었다. 막대한 휴대전화 요금에 시름하는 A씨에게 고씨는 휴대전화를 또 개통할 것을 종용한 것이다.

A씨가 고씨의 제안을 수락한 것은 '가개통' 처리를 하면 요금이 나가지 않는다는 말 때문이었다. 고씨는 "인터넷과 TV 서비스와 같이 가입하면 할인되니 일단 가입하고, 가입 후 '가개통' 처리를 하면 요금을 납부할 필요가 없다"며 인터넷과 TV 서비스까지 가입하게 했다.

고씨는 A씨가 119만9900원 상당의 휴대전화를 개통하게 하고 인터넷과 TV 서비스에 가입하도록 해 수수료 20만~30만원을 챙겼다. 고씨는 6개월 후 기기를 중고로 팔아서 피해금을 보전할 수 있게 하겠다 했지만 이렇게 해서 고씨가 얻을 수 있는 돈은 40만원에 불과했다.

A씨는 단말기 기기값 119만9900원을 48개월 동안 분할납부해야 했다. 또 인터넷 및 TV 서비스 요금도 내야 했다. 앞서 B씨로 인한 각종 요금에 더해 고씨와의 계약으로 납부하게 된 요금을 합쳐 A씨는 매달 400만원을 지출했다.

고씨는 A씨가 '본인 A는 휴대폰 변경 및 인터넷 가입에 인지하고 동의함' '기기 본인이 판매 원해서 처리 요청, 기기 절대 돌려받을 수 없는 점 동의함' '핸드폰을 개통하고 6개월 내 해지하면 페널티 발생' 등의 문구를 자필로 작성하고 서명하게 했다.

A씨는 "'왜 이렇게 써야 하느냐'고 묻자 B씨가 '나중에 일 생길까 봐 이렇게 적은 것이다'라고 답했다"고 후에 진술했다. B씨가 알아서 자신이 손해 보지 않도록 처리해 줄 것이라고 믿고 구체적인 진행 과정에는 관심을 두지 않은 것이다.

결국 고씨는 '사기'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됐다. 고씨 측은 "A씨가 모든 요금 조건을 이해하고 동의한 것"이라며 "피해자를 속이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A씨가 서명한 서류들을 근거로 삼았다.

재판부는 고씨가 휴대전화를 팔아 피해금을 보전해주거나 피해금을 줄여 줄 의사나 능력이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결국 A씨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총 50만원"이라며 "B씨로부터 이미 받는 피해를 회복하거나 또는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피해자가 취한 조치였다고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고 봤다.

A씨는 "고씨가 가개통해 주겠다고 했고 가개통 단계에서는 요금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며 "저는 데이터도 무제한이고 집에서 텔레비전도 거의 안 보는데 인터넷에 가입할 필요가 없었다"고 진술했다.

서울 서부지법 형사6단독 신진화 판사는 지난 11일 고씨의 사기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A씨가 매달 납부해야 했던 요금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벌금이다.


hemingwa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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