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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100℃] 격정 출산누아르 '산후조리원', 북한에도 있을까?

드라마 '산후조리원'을 통해 생각해 본 남북의 출산과 육아

(서울=뉴스1) 이설 기자 | 2020-11-28 10:00 송고 | 2020-11-28 17:35 최종수정
편집자주 [북한 100℃]는 대중문화·스포츠·과학·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북한과의 접점을 찾는 코너입니다. 뉴스1 북한팀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관심사와 관점을 가감 없이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드라마 '산후조리원'의 한 장면. 드라마는 아이를 낳던 현진이 저승사자와 만나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tvN 제공)
드라마 '산후조리원'의 한 장면. 드라마는 아이를 낳던 현진이 저승사자와 만나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tvN 제공)

"죽은 건가요? 노산이라서 위험하다고는 했는데 진짜 죽었을지는 몰랐네요."

임신과 출산, 새 생명의 탄생을 다룬 드라마 첫 장면에 저승사자라니. 회사에선 최연소 임원, 병원에선 최고령 산모인 현진(엄지원 분)은 저승사자와 격투를 벌인 뒤에야(?) 아이를 만났다. '몇 시간' 혹은 '몇 년 뒤' 어여쁜 아기가 짠하고 나타나는 기존 방식과 다른 '현실' 출산 묘사로 tvN 드라마 산후조리원이 인기리에 얼마 전 막을 내렸다.

"여성들의 친정집인 평양산원에서는 여성들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끝없이 울려 퍼질 것이다."

전에 본 적 없던 실감나는 출산 스토리가 남한에서 펼쳐지는 동안 북한은 최근 자국의 대표 산부인과인 평양산원을 홍보하는 기사를 실었다. 어머니날(11월16일)까지 지정하면서 모성을 신성하게 여기는 북한이다.

그런데 출산의 '민낯'을 마주하고 나니 "행복한 웃음소리가 끝없다"는 문장이 어쩐지 의문스럽고 스산하기까지 하다. 그들은 보여주지 않는, 적나라하고 솔직한 북한 인민들의 임신과 출산, 양육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 글은 시작됐다. 남한과는 얼마나 같고, 또 다를까.

북한의 대표 산부인과 평양산원. © 뉴스1
북한의 대표 산부인과 평양산원. © 뉴스1

◇ 굴욕기·짐승기…출산 4단계 산통은 남북 공통

출산 앞에서 누가 '고상'할 수 있으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오는 극한의 출산 과정은 남북을 불문하고 산모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인 것 같다. 드라마에서 현진은 관장과 제모 등으로 출산을 준비하는 '굴욕기', 짐승처럼 오직 진통에만 반응하는 '짐승기', 무통주사를 맞은 뒤 잠시 평화를 찾는 '무통 천국기', 출산 직전 대자연의 이동을 온몸으로 느끼는 '대환장 파티' 4단계를 겪는다.

드라마 '산후조리원'의 한 장면. 출산을 굴욕기, 짐승기, 무통 천국기, 대환장파티 4단계로 나누고 있다.(tvN 제공)© 뉴스1
드라마 '산후조리원'의 한 장면. 출산을 굴욕기, 짐승기, 무통 천국기, 대환장파티 4단계로 나누고 있다.(tvN 제공)© 뉴스1

북한의 산모가 겪는 현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1998년 양강도 혜산산원에서 출산한 경험이 있다는 한 탈북민은 진통을 시작해 병원에 갔지만 의사에게 "자궁문이 덜 열렸다. 입원실로 가서 더 아파라(?)"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다른 산모들이 모여 있는 불 꺼진 입원실에 들어가 한참 소리를 지른 후에야 수술대에 오를 수 있었다. 드라마로 치면 '굴욕기'와 '짐승기' 그 어디쯤일 것이다. 무통주사는 물론 없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차이점은 아이를 낳는 장소다. 북한에도 각 지역 시·군 병원마다 산부인과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집에서 출산한다고 한다. 1980년대는 평양산원을 본보기로 전국 각지에 산원이 건설돼 병원이 잘 갖춰졌지만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환경이 열악해졌고 '집에서 낳는 게 낫다'는 인식이 커져서다.

병원까지 가는 길이 험해 걸어서 이동해야 경우가 많은 것도 하나의 이유다. 양수가 터질 때까지 일을 하다가 스스로 택시를 불러 타고 산부인과로 향했던 현진의 모습은 북한에선 상상하기 어렵다.

◇ 최고급 세레니티 산후조리원, 북한에도 있을까

드라마 '산후조리원'의 한 장면. 현진의 부부를 맞이하는 산후조리원 세레니티.(tvN 제공)© 뉴스1
드라마 '산후조리원'의 한 장면. 현진의 부부를 맞이하는 산후조리원 세레니티.(tvN 제공)© 뉴스1

최고급 시설을 겸비한 산후조리원 '세레니티' 원장 혜숙(장혜진 분)은 현진에게 이렇게 말한다. "산모님은 우릴 믿고 따라오면서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면 되는 거예요. 전적으로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이곳에는 산모의 정서를 안정시켜주는 실내 정원, 요가와 스파를 즐길 수 있는 공간까지 마련돼 있다. 유명 호텔 출신 셰프가 맛, 영양, 칼로리까지 고려한 산후 조리 음식도 제공한다. 산모와 신생아의 천국으로 불릴 정도다.

북한은 어떨까. 산후조리원이라는 시설은 따로 없다. 산원에 며칠 더 입원하는 것까지는 허용되지만 식사와 이부자리 등은 산모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번거롭고 불편한 탓에 산모들 대부분 집에서 산후 조리를 한다고 한다.

산후조리 음식은 비슷하다. 굳은 음식, 찬 음식은 먹지 않고 남한처럼 미역국을 먹는다.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꿀이나 해산물을 먹기도 한다. 드라마에선 산모가 아이에게 모유를 먹일지 분유를 먹일지 심각하게 고민하지만 북한에서는 비싼 분유 대신 대부분 모유 수유를 한다고 한다. 이때 모유의 분비를 돕기 위해 돼지족탕, 돼지족발 등도 챙겨먹는다.

그런데 북한 여성의 80%가 크고 작은 산후병을 앓고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산후조리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이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몸조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생계 유지를 위해 일터로 나가는 산모들도 있다고 한다. 

◇ 다둥이 사랑이 엄마, 북한에서도 대접받을까

드라마 '산후조리원'의 한 장면. 모성의 여왕으로 불리는 사랑이 엄마.(tvN 제공)© 뉴스1
드라마 '산후조리원'의 한 장면. 모성의 여왕으로 불리는 사랑이 엄마.(tvN 제공)© 뉴스1

"남들보다 두 배 많은 젖양을 가졌고 동시에 두 명의 아이를 돌본 멀티태스킹 수유 끝판왕, 모성의 여왕이에요."

사랑이 엄마 은정(박하선 분)은 산후조리원에서 모성의 여왕으로 불린다. 그는 쌍둥이를 자연주의 출산으로 낳아 2년간 모유 수유를 하고 독박육아 6년차에 또 다른 아이까지 출산했다. 아이를 많이 낳고 모유 수유를 오래할수록 이들 세계에서 서열이 높아진다.

북한은 아이를 많이 낳아 기르면 '나라'에서 대접해준다. 인구수가 경제력과 군사력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북한은 아예 법으로 "삼(三)태자, 다(多)태자를 낳아 키우는 여성과 어린이에게는 특별한 배려와 혜택을 돌린다(여성권리보장법 제50조)"라고 규정하고 있다. 아이를 많이 낳은 여성에게는 노력영웅칭호와 함께 금메달 망치와 낫, 국기훈장 제1급이 수여된다.

특히 세쌍둥이를 임신하면 북한 인민의 0.001%만 이용할 수 있다는 평양산원에 바로 갈 수 있다. 이들은 임신 시기에 상관없이 평양산원으로 옮겨져 건강관리를 받는다. 세쌍둥이는 출산 후 몸무게가 4kg이 될 때까지 입원 치료를 받으며 퇴원할 땐 남아일 경우 은장도를, 여아는 금반지를 선물한다. 산모에게도 회복을 돕는 건강 제품이 제공된다.

◇ 경력단절·육아휴직 북한서는 걱정 없을까

"남조선 여성들은 결혼, 출산, 자식 등으로 사회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성들이 직장을 그만두는 주요 원인이 자식을 키울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북한 선전매체 '메아리'의 보도 일부다. 이들은 출산 이후 남한 여성들의 고충을 지적하며 자신들의 출산 정책을 선전했다.

드라마에도 남한의 '워킹맘'의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이 많다. 회사에서 최연소 상무를 맡고 있는 현진은 산후조리원에서 회복하는 사이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워졌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복직에 대한 불안감을 느낄 무렵 아이를 봐주기로 했던 친정엄마가 어깨를 다쳤단 소식을 듣고 좌절한다. 급하게 베이비시터를 구하려 하지만 이미 '만석'이다.

북한에서는 여성들이 임신을 하게 되면 산전 60일, 산후 180일 총 240일(8개월)간의 휴가를 받는다. 이 기간은 노동 여부에 상관없이 자신이 받던 기본 생활비를 100% 지급받는다. 휴가 이후엔 어떤 조건 없이 그대로 일할 수 있다.

북한은 또 아이를 두고 어떻게 출근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모든 직장에 설치된 탁아소나 유치원에 아이를 맡기고 퇴근할 때 아이와 함께 귀가하면 된다는 것. 만약 아이가 한 명 이상이라면 또 다른 아이는 지역마다 설치된 탁아소나 유치원에 맡길 수 있다. 이들은 월요일부터 그 주 토요일까지 주 6일 아이를 맡아준다.

드라마 '산후조리원'의 한 장면. 산후조리원을 퇴소한 '조리원 동기들'.(tvN 제공)© 뉴스1
드라마 '산후조리원'의 한 장면. 산후조리원을 퇴소한 '조리원 동기들'.(tvN 제공)© 뉴스1

그런데 출산, 육아 제도의 우수성을 선전하는 북한에서도 출산율은 1970년대 이후 계속 감소하고 있다. 유엔인구기금(UNFPA)과 인구보건복지협회가 발간한 '2020 세계인구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합계출산율(한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1.9명으로 집계됐다. 남한의 합계출산율(1.1명)보다는 높지만, 역시 2명에는 못 미치는 수준이다.

북한은 경제적인 부담으로 둘 이상의 자녀를 낳는 것을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남한보다 출산 휴가, 복직에 대한 우려가 적다지만 출산의 위험, 산후 조리에 대한 비전문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개인이 떠안아야 할 위험은 여전히 크다. 체제부터 다른 남북의 출산 정책의 장단점을 단순하게 비교하긴 어렵지만 출산율이 계속 떨어지는 건 두 나라의 공통점이다.  

"좋은 엄만 완벽한 엄마가 아니에요. 아이와 함께 행복한 엄마지. 꼭 행복해지세요."

'세레니티' 원장 혜숙은 조리원을 퇴소하는 현진에게 이렇게 말한다. 직장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고, 모유 수유를 고민하며 '나는 엄마 자격이 없는 것 아닌가'라는 자책을 했던 현진이다. 그에겐 모성은 강요됐고, 행복은 스스로 찾아야 했다.

비록 남북의 출산, 육아 정책은 달라도 산모가 느끼는 고통과 고충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꼭 행복하라'는 메시지를 남긴 드라마는 끝났지만 남북을 불문한 '현실 고민'은 계속될 것 같다.


sseo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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