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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모 폭력·정신적 가혹행위에도…학대아동 즉각분리 반려, 왜

[또 아동학대]② 사각지대 여전…"흉기사용 아닌 이상"
신고자 부담도…"반려시 신고자만 책임지는 경우 많아"

(서울=뉴스1) 서혜림 기자, 원태성 기자 | 2020-11-22 07:01 송고
© News1 DB

#12살 병수 이야기

삼촌은 주먹의 세계에 있었다. 아버지는 병수가 알지 못하는 범죄를 저질러 도주 중이다. 어머니는 100일 된 병수를 두고 달아나버렸다. 병수는 그렇게 할아버지 할머니와 15년째 살고 있다.

병수는 걸핏하면 할아버지에게 맞았다.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사회복지사가 보기엔 병수는 학습의 기회가 없었을 뿐이었다. 삼촌은 가끔 이유 없이 당구 큐대로 병수를 두들겨 팼다.

병수의 왼팔에 다시 주먹만 한 피멍이 든 날, 사회복지사는 병수를 입양 보내야겠다고 결심했다. 병수의 멘토가 구청에 입양 의사를 밝히기도 했지만 양육자인 할머니가 놓아주지 않았다. 구청에서 상담을 나와도 할머니 거부로 모니터링조차 이뤄질 수 없었다. 병수는 결국 악몽 같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13살 은지 이야기

은지는 엘리트 집안으로 입양을 갔다. 새어머니, 새아버지는 모두 변호사였다. 은지가 공부를 잘하지 못하자 소위 '잘난' 부모는 '내가 입양을 왜 선택했는지 모르겠다'며 정신적 학대를 시작했다. 

부모는 가족모임에도 은지를 데려가지 않았다. 은지가 자신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성적을 냈을 때에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무시했다. 은지는 쉽사리 작은 일에도 놀라고 반에서도 제대로 된 친구 없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은지를 본 청소년상담사는 이를 기관에 신고했지만 신체적 폭행이 없었다며 반려당했다. 은지는 가출을 반복했지만 누구도 은지를 보살펴줄 수 없었다.

◇사회복지사들 "흉기 사용 학대 아니면 보통 상담서 끝"

22일 <뉴스1>이 인터뷰한 사회복지사들에 따르면 아동학대 피해자의 사례를 수사기관이나 아동보호 전문기관에 말해도 제대로 해결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흉기 등에 의한 신체적 가해가 아닌 이상은 분리 조치는 거의 불가능했다.

아동복지기관에서 청소년 상담사로 일했던 A씨는 "학대 기준이 굉장히 복잡했다"며 "쉼터로 안내를 하려고 해도 극악무도한 학대로 보이지 않으면 그냥 반려되곤 했다"고 말했다.

A씨는 "신고가 반려될 경우에는 신고한 사람만 책임을 지게 되고 아이는 그 가정에서 방치돼서 폭력적인 상황에 계속 노출되게 된다"며 "칼에 찔려 생명이 위급한 상황이 아닌 이상 학대로 보지 않는 경향이 많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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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청소년 상담센터에서 일했던 B씨도 "아동학대를 전문기관에 신고하면 사후처리과정을 알려주지 않는다"며 "또 상담사들의 업무량이 많다 보니 관련 신고 처리가 더딘 경우도 많다 "고 전했다.

또 다른 사회복지사 C씨는 "학교에서는 학부모와 문제가 생기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상담받고 아이 마음 조금 좋아지길 바라고 기관에서도 경찰에 신고하는 것은 피하고 싶어 한다"며 "누군가가 나서서 신고를 해주고 용감하게 나서야 하는데 조금 상담하다가 다시 상담센터로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수사가 제대로 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신고 받아도 4.3%만 응급조치…부모로부터 분리조치 12.2%  

한해 입양·위탁 아동과 일반 가정을 포함해 수만명의 아이들이 아동학대에 시달리고 있지만 응급조치는 신고접수의 4.3%만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학대아동을 원부모로부터 분리하는 조치도 12.2%밖에 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2019 아동학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신고접수된 아동학대사례는 총 3만45건이었다. 이 중에서 1309건(4.3%)만 경찰과 기관이 응급조치를 실시했다.

신고를 하더라도 분리조치된 경우는 3669건(12.2%)으로 열에 하나 정도였다. 원래의 가정으로 다시 돌아간 경우(원가정보호)는 2만5206건(83.9%)나 됐다.

이 중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접수된 아동학대 사망사례는 42건이다. △2015년 16명 △2016년 36명 △2017년 38명 △2018년 28명으로 해마다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입양과 위탁아동의 경우 지방자치단체 등 관계기관에서 모니터링을 하고 검증이라도 하지만 일반 친부모나 위탁으로 신고되지 않았음에도 조부모 등과 함께 사는 아동 중 학대를 받을 경우에는 모니터링에서도 제외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정위탁관련 수십년 봉사활동을 한 김모씨는 "부모가 없으니까 아동이 생활보소대상자가 되는데 그걸 악용하려고 조부모나 먼 친척이 데려다가 키우는 경우가 있다"며 "폭력전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위탁으로 공식적으로 신고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사실상 기관에서 관리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최근 양천구에서 16개월된 여아가 입양한 부모의 학대로 사망한 사건에서도 3번의 신고가 있었고 모니터링이 있었음에도 사고를 막을 수 없었다. 모니터링이 있었음에도 허술한 대처로 여아가 사망한 가운데 모니터링이 없는 결손 가정의 경우 더욱 폭력을 감시할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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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관 근무여건 열악…전문성 키워주고 경찰 정보공유 높여야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피해와 관련해서 기관들이 책임을 미루는 이유에 대해 신고자의 신변이 보호가 안되고 결국 수사기관을 통해 사건이 접수되더라도 무혐의 처리되는 경우가 있어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신수경 민변 아동인권위원회 변호사는 "신고 의무자라면 신고를 하는 것이 맞는데 아무런 수사가 진행되지 않을 경우 무고죄로 고소를 당한다던가 가해자가 찾아와 항의하는 경우 등 민원 때문에 힘들어할 수밖에 없다"며 "신고자의 비밀을 철저히 보호해야 하는데 신변이 노출되지 않게 사문화된 보호법을 제대로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양천구 사건 같은 경우 어린이집 원장은 신고하기 부담을 느꼈을텐데도 신고를 했는데 무혐의가 됐고 이는 전반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인다"며 "아동보호전문기관 등 신고의무자 입장에서는 (부모가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경우) 고소가 두려워 신고를 꺼리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경찰의 수사 의지도 중요하지만 아동보호전문기관 실무진들의 전문성을 강화할 방법도 시급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노 교수는 "실무자들 여건이 너무 열악하고 스트레스가 많다 보니까 자주 인력이 교체된다"며 "경찰은 범죄가 아니냐 판단을 해야 하는데 전반적인 상황을 파악하는 것은 아동보호전문기관 실무자들이 해야 하며 경찰을 지원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노 교수는 △경찰에는 아동학대 전문 수사관을 길러 아동학대사안에 대한 민감성을 기르고 △아동복지를 위한 예산을 증액해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들의 전문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기사 초반에 나오는 아동학대 사례들은 사회복지사들의 말을 종합해 아이들의 이름을 가명으로 재구성했습니다)


suhhyerim777@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