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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스코틀랜드에 관한 쓸데없는 생각

(서울=뉴스1) 조성관 작가 | 2020-11-19 12:00 송고 | 2020-11-19 19:08 최종수정
2008년의 숀 코네리 모습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얼마 전 영화배우 숀 코너리가 세상을 떴다. 모든 미디어가 그의 부고 기사를 크게 실었고, 영화 팬들도 그를 애도했다.
그의 타계는 한 번의 부고 기사로 끝나지 않았다. 그를 평가하고 찬미하는 사람은 이미 영화 기자의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었다. 패션 담당 기자는 '킹스맨'보다 앞서는 슈트의 교과서로 그를 재조명하고, 사회생물학자는 원조 마초로 그의 생애를 반추하기도 한다.

'조각 미남' 같은 표현은 진부하다 못해 경박하다. 젊은 시절의 사진과 비교해보면 그는 늙어가면서 중후한 멋을 발산했다. 그에게서는 만추(晩秋)의 향기가 진동한다. 남자의 깊은 주름과 은발이 그렇게 매력적일 수 있다는 것을 숀 코너리는 보여주었다.

세계인은 그를 007시리즈의 '제임스 본드'로 기억하지만 그는 007시리즈에 자신의 이미지가 구속되는 것을 거부했다. 그는 '파인딩 포레스터' 같은 영화에 출연했다. 이 영화는 은둔의 작가 제롬 샐린저를 모델로 한 것이다. 영화 팬들은 이 작품을 통해 그의 이지적인 면을 발견했다.

숀 코너리(Sean Connery 1930~2020). 그의 부고 기사를 접하면서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국적이다. 미디어마다 제각각이었다. 주요 언론을 살펴보자. 영국 태생(조선일보, 세계일보), 스코틀랜드(동아일보, 서울신문, 한국일보), 영국 스코틀랜드(중앙일보),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매일신문), 스코틀랜드(월간조선)···.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같은 미국에서 발행되는 신문들은 100%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출신'이라고 명기했다. 영국의 BBC와 파이낸셜타임스에서도 '스코틀랜드 출신'이라고 썼다.

영국이라고 쓰든 스코틀랜드라고 쓰든 그게 무슨 상관이냐, 어차피 다 영국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망자(亡者)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그는 평생 자신을 스코틀랜드 출신이라고 말해왔다. 코너리의 발자취 기사에서 눈에 띄는 또 다른 대목은 '스코틀랜드 독립운동을 지지했다'는 대목이다. 2014년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주민투표의 부결로 스코틀랜드 분리독립운동은 물거품이 되었다.    

유엔에 가입한 세계 국가 수는 193개국이다. 하지만 국제축구연맹(FIFA) 회원국 수는 211개이다. 영국은 올림픽에 출전할 때는 단일팀인 GBR로 출전한다. 하지만 월드컵에서는 GBR이 아니라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4개 팀이 출전한다. 만일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해 조별 예선에서 맞붙는다고 가정해 보자.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스코틀랜드 하면 어떤 것이 연상되나. 가장 먼저, 북소리와 함께 흘러나오는 백파이프 연주가 떠오른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스카치 위스키를, 골퍼들은 세인트 앤드루스 클럽의 링크스 코스를,  공연예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에든버러 국제페스티벌을 떠올릴 것이다. 보학(譜學)에 밝은 이는 맥도널드 햄버거를, 킬트를 좋아하는 여성들은 타르탄 킬트를 연상할 수도 있겠다.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위스키의 대부분이 스코틀랜드 위스키다. 조니 워커, 밸런타인, 글렌피딕···. 2008년까지 한국은 스카치 위스키 소비량에서 압도적인 세계 1위였다. 현지인들은 꿈도 못 꾸는 밸런타인 30년 같은 최고급 스카치 위스키를 용감하게 폭탄주 제조용으로 격하시키면서 벌어진 일이다. 2008년을 정점으로 룸살롱이 쇠퇴하고 접대문화가 바뀌면서 위스키 소비량은 급감하는 중이지만 여전히 한국은 세계 위스키 시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고객이다.

스코틀랜드는 위스키의 성지(聖地)다. 위스키는 황량한 땅과 궂은 날씨라는 환경에서 살아가야 하는 스코틀랜드인의 생활 그 자체다. 스코틀랜드인들은 아침 식사로 오트밀에 위스키를 부어 먹는다. 브렉퍼스트 위스키다. 스코틀랜드에는 이런 격언이 전해진다. '브라운색 음료의 맛을 아는 것은 50세가 넘어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위스키 성지 여행'이라는 산문집을 썼다는 것이 모든 걸 말한다.

주라 위스키
주라 위스키

최근 위스키 미니아들에게서 주라 위스키가 조금씩 관심을 주목을 받는 중이다. 나는 주라 위스키라는 말을 듣고 화들짝 반가웠다. '위스키' 때문이 아니라 '주라' 때문이다.    

꼭 10년 전 나는 '런던이 사랑한 천재들'을 쓰기 위해 런던과 그 주변을 씨줄과 날줄로 돌아다녔다. 그때 취재 리스트 중에서 두세 곳을 거리와 비용 문제로 포기해야만 했다. 가지 못한 곳 중 지금까지도 미련이 남는 공간이 바로 주라섬이다. 주라섬은 스코틀랜드 서부 헤베르디스 제도에 있는 섬이다.

'동물농장'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조지 오웰은 1946년 가을 주라섬으로 들어간다. 그가 어떻게 주라섬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현재는 주라섬의 인구가 300명 정도인데, 그때는 얼마나 됐을까. 정기 여객선이 다니는 스코틀랜드의 섬들은 현재 백패킹족들의 로망이다. 육지에서 배로 30여 분 걸리는 주라 섬도 그중 하나다.

스코틀랜드 헤브리디스 제도와 주라 섬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스코틀랜드 헤브리디스 제도와 주라 섬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오웰은 결핵을 앓고 있었다. 결핵은 쉬면서 꾸준히 약을 복용하고 잘 먹으면 낫는 병이다. 몸을 무리하면 절대 안되는 병이 결핵이다. '동물농장'의 성공으로 생계 문제에서 해방되었으나 그는 런던을 떠나 제 발로 문명의 변방인 주라섬으로 들어갔다. 농가의 방 네 개를 빌렸다. 머릿속에서 '윙윙' 거리는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 위해서였다. '유럽 최후의 남자'라는 제목으로 구상해온 미래소설! 지금 써내지 않으면 쓰지 못할 것 같았다.

그는 아무도 찾는 이 없는 황량한 섬에 스스로를 유폐시켰다. 집에서 몇 분만 걸어 나가면 바다였다. 누에가 나방이 되려면 누에고치 속에서 깊은 잠을 자야 하는 것처럼 그는 주라 섬에서 고독의 심연으로 침잠했다. 창문을 흔드는 거친 바람 소리를 들으며 글을 썼다. 글이 써지지 않으면 바닷가를 걷거나 낚시를 하는 게 전부였다.

그렇게 일 년이 흘렀다. 1947년 가을, 그는 '유럽 최후의 남자' 초고를 완성했다. 초고를 고치고 또 고쳐 최종 원고를 완성한 게 1948년 12월. 그는 출판사에 타이핑한 원고를 우송했다. 출판사는 '유럽 최후의 남자'를 미래의 어느 시점이라는 의미를 담아 '1984'로 제목을 바꿔 세상에 내놓았다. 소설을 끝내자 폐결핵이 재발했다. 섬에서 나와 병원에 입원했지만 때는 늦었다. 결핵균은 이미 폐 깊숙한 곳까지 갉아먹고 있었다.

조지 오웰이 '1984'를 집필한 주라섬의 농가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조지 오웰이 '1984'를 집필한 주라섬의 농가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조지 오웰 연구자로서 가끔 상상을 하곤 한다. 그가 주라섬에 들어가지 않고 런던에서 치료를 받으며 쉬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그는 1950년에 눈을 감지 않고 최소 몇 년을 더 살았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1984'라는 충격적인 소설이 과연 태어날 수 있었을까. 스코틀랜드 주라섬에서 목숨과 맞바꾼 소설이 '1984'다.    

다시 숀 코너리 이야기로 돌아간다. 코너리는 스코틀랜드민족당(SNP) 당원이며 재정적 후원자로 활동했다. 이것이 숀 코너리의 정체성이다. 스코틀랜드민족당은 분리주의 정당이다.

언어가 다른 캐나다의 퀘벡도 아닌데 영어를 쓰는 '같은 나라'에서 스코틀랜드 정부는 왜 분리독립안을 주민투표에 부쳤을까. 스코틀랜드는 켈트족이 주축이 되어 11세기 초에 세워진 왕국이다. 그러나 스코틀랜드는 걸핏하면 잉글랜드의 침략을 받아 죽임과 약탈을 당했다. 스코틀랜드 왕들은 권력 유지에 급급해 잉글랜드왕에 굴종하며 적당히 타협을 해왔다. 이때 독립영웅이 나타난다. 윌리엄 월리스(William Wallace)다. 윌리스가 이끈 스코틀랜드 민병대는 스털링다리 전투에서 잉글랜드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 사실상 최초의 승리다.

비로소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가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왕국이 된다. 월리스의 영웅적 투쟁을 다룬 영화가 멜 깁슨이 감독하고 주연한 '브레이브 하트'다. 마침내 14세기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와 독립을 보장하는 조약을 체결했다. 17세기에는 스코틀랜드 왕이 잉글랜드 왕 제임스 1세로 즉위하면서 스코틀랜드는 전성기를 구가한다. 그러나 18세기 들어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를 병합해 브리튼 왕국이 탄생한다. 이때부터 스코틀랜드인의 원한이 대를 이으며 차곡차곡 쌓였고, 분리독립의 열망으로 내연한다.

스코틀랜드 전통의상 타르탄 킬트를 입은 숀 코네리

스코틀랜드 출신들은 분리독립을 지지하든 그렇지 않든 반드시 '스카티시'(Scottish)라고 쓴다. 스코틀랜드에 대한 자부심이다. 스카티시 작가·배우·가수들은 잉글랜드인과는 확연히 다른 무언가가 있다. 주로 미국에서 활동했지만 레너드 코헨에게서 퀘벡 출신 특유의 소울이 배어 나오는 것과 흡사하다.  

스코틀랜드는 세계 최초와 세계 최고의 타이틀을 여러 개 보유하고 있다. 스코틀랜드는 골프의 탄생지다. 세계 최고 권위의 골프대회 '디오픈'은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링크스 코스에서 열린다. 골프의 성지다. 이곳은 전 세계 골퍼들의 버킷 리스트다.

숀 코너리는 2000년 봄, 워싱턴DC에서 열린 '타르탄 데이' 축하행사에서 타르탄 킬트를 입고 등장해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 '타르탄 데이'는 북아메리카에서 스코틀랜드 유산을 보존하고 기념하려는 행사다. 숀 코너리는 치마처럼 생긴 스코틀랜드 전통의상을 입었다. 이 사진은 '나는 숀 코너리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뉴스1의 편집 빙향과 다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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