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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퇴임' 강우일 주교 "손대지 않는 게 제주 위한 일"

제주서 18년 헌신…평화·인권 외친 '작은 자들의 주교'
"주교로서 할 수 있는 일 있다면 어디든지 달려갈 것"

(제주=뉴스1) 오미란 기자 | 2020-11-17 19:00 송고 | 2020-11-17 23:04 최종수정
강우일 천주교 제주교구장이 지난 13일 오후 제주시 천주교 제주교구청에서 퇴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2020.11.17 /뉴스1© News1 오미란 기자

"제주에 처음 왔을 때는 참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주는 행복한 땅이 아니었어요. 도민들이 살아온 역사를 생각하면 정말 마음 아픈 일들이 많았어요. 그 아픔에 조금이라도 함께 하라고 하느님께서 저를 보내신 게 아닌가…."

강우일 주교는 2002년 10월8일 제3대 천주교 제주교구 교구장에 공식 취임해 지난 18년간 제주 곳곳을 보듬어 왔다.

제주4·3의 역사적 진실을 재조명해 국제사회에 알리는가 하면, 제주해군기지 건설사업으로 피폐해진 강정마을에 성 프란치스코 평화센터를 짓고, 제주에 몰려 온 난민들을 위한 이주사목센터를 설립하는 등 평화·인권운동에 그 누구보다 앞장섰던 그다.

자기 목소리를 내는 데에도 거침이 없었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사업을 향해 "제주4·3 희생자들의 무덤을 갈아엎는 행위", "아무도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라고, 제주 제2공항 건설사업을 향해서는 "다수가 소수를 짓밟는 행위", "제주도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이라고 그는 수없이 외쳤었다.

그렇게 제주에서 '작은 자들의 주교'로 살아온 강 주교는 17일 오후 8시 제주시 삼위일체대성당에서 퇴임 김사미사를 통해 천주교 제주교구장으로서의 마지막을 맞는다.

"특별한 계획은 없습니다. 백수가 겪는 모든 과정을 저도 겪을 겁니다. (웃음) 천주교 제주교구 교구장이라는 보직은 내려놓지만 천주교의 주교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계속 있을 겁니다. 어느 누구라도, 어디에서라도 절 부른다면 기쁘게 달려갈 생각입니다"

다음은 강 주교와의 일문일답.

강우일 천주교 제주교구장이 지난 13일 오후 제주시 천주교 제주교구청에서 퇴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2020.11.17 /뉴스1© News1 오미란 기자

- 퇴임 소회는.

▶18년이 굉장히 빨리 지나갔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가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아마 그렇게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처음 제주에 왔을때는 '참 아름다운 곳에 와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수 있겠다' 생각하고 굉장히 기쁜 마음이었는데 살다 보니 제주는 행복한 땅이 아니었다. 제주도민들이 살아온 과거와 역사를 생각할 때 정말 마음 아픈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아픔에 조금이라도 함께 하라고 하느님께서 저를 보내신 게 아닌가 생각한다.

- 재임 기간 제주의 주요 현안에 관심이 많았다.

▶세상이 생각하는 종교인이라는 개념은 종교시설에서 조용히 앉아 기도하고, 기껏해야 가난한 이들을 돕는 정도인 것 같다.

일단 종교 존재의 의미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을 돕고, 그것에 함께하는 데 있다. 그래서 국민들이 힘들어하고, 아파하는 것을 모른 척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일종의 직무유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왔다.

- 국책사업인 제주 제2공항 건설사업을 둘러싸고 찬반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데, 어떻게 이 갈등을 해소해 나가야 한다고 보나.

▶슬기롭게 풀렸으면 참 좋겠는데 사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현재 정부와 제주도는 지금 제주국제공항이 너무 협소하기 때문에 연간 400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공항을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다시 말하면 20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제주를 오간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는 제주도라는 작은 섬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인원이라고 저는 생각한다.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미 제주는 파괴되고 무너지고 있지 않느냐. 18년 전 제주에 왔을 때와 비교해 보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

심지어 쓰레기, 상·하수도 등의 문제가 해결이 안 되고 오히려 악화되고 있는데 지금의 배 이상의 인원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은 제주의 미래를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결정이다.

적당히 타협할 문제가 아니다. 제주도민의 미래가 결정적으로 좌지우지 될 수 있는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정책 결정자 뿐 아니라 제주도민 한 분, 한 분이 이런 사실을 숙고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강우일 천주교 제주교구장이 지난 13일 오후 제주시 천주교 제주교구청에서 퇴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2020.11.17 /뉴스1© News1 오미란 기자

- 또 다른 국책사업인 제주민군복합형관광미항 건설사업 추진으로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의 경우 찬반으로 분열되기도 했다. 강정마을 공동체를 회복시키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나.

▶사업이 시작될 때부터 주민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그런데 정부가 아주 바람직하지 않은 여러 방법으로 일부 주민들과 은밀히 협약을 맺고 사업을 추진하면서 대부분의 주민들이 격분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결국 사업은 완료됐고, 현재 강정마을에는 해군이 주둔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간이 많이 흐르긴 했지만 많은 주민들은 여전히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저라도 지치고 힘들어서 모든 걸 잊어버리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이 중에는 우리 마을을 절대 군사기지로는 넘겨줄 수 없다는 의연한 의지를 갖고 싸우는 분들이 아직 있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루아침에 하나로 모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강정마을에 성 프란치스코 평화센터를 설립했다. 사업을 반대하는 것을 넘어 이 세상의 평화를 이루기 위한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일을 펼쳐가기 위해서였다.

아직까지는 대대적으로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성 프란치스코 평화센터를 통해 그러한 작업을 서서히, 조용히 펼쳐가고 있다.

- 제주에서 추진되고 있거나 추진될 예정인 대규모 국책사업, 대규모 개발사업이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 한다고 보나.

▶집 주변을 산책할 때면 정말 행복하다. 대통령도, 이건희도 안 부럽다. (웃음) 이런 곳에서 지낼 수 있다는 게 특혜로 여겨질 정도다.

그런데 수만그루의 나무가 잘려나가더니 자꾸 도로가 생겼다. 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꼭 시체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길도 이렇게 많이 만들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는 길 한복판에 나무 한 그루가 덩그러니 서 있어도 불편함을 참고 그대로 둔다. 우리나라였으면 당장 자르고 도로를 확장했을 텐데 결코 그러지 않는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영원한 도시' 로마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다.

제주의 자연은 돈으로 살 수도, 공장에서 만들 수도 없는 것이다. 한 번 파괴되면 다시 회복시키기도 힘들다. 이건 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다. 당장 눈 앞의 수익을 위해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를 계속 추진하는 것은 행정이 제주도민의 미래를 파괴하는 것이다.

강우일 천주교 제주교구장이 지난 13일 오후 제주시 천주교 제주교구청에서 퇴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2020.11.17 /뉴스1© News1 오미란 기자

- 앞으로 제주4·3은 어떻게 논의돼야 한다고 보나.

▶제주4·3의 진실은 70주년이었던 2018년을 기해 전국적으로 많이 알려졌고, 전국민적인 관심도 또한 많이 높아졌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면 안 된다. 제주4·3을 겪은 이들의 아픔을 계속 기억하고 상기시킴으로써 앞으로 다시는 제주4·3과 같은 비극이 재현되지 않도록 하는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고 본다.

숨겨진 기억을 찾아내고, 이를 후대에 계승하는 일에 제주도민 모두의 관심이 필요하다.

- 제주의 밝은 미래를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손대지 않는 일이다.

제주에서 무엇을 계속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제주를 최대한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돈을 쓴다면 훼손된 제주를 되살리는 데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 퇴임 후 계획이 있다면.

▶특별한 계획은 없다. 백수가 겪는 모든 과정을 저도 겪을 것이다. (웃음)

천주교 제주교구 교구장이라는 보직은 내려놓지만 천주교의 주교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계속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누구라도, 어디에서라도 절 부른다면 기쁘게 달려갈 생각이다.


mro1225@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