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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칼럼] 적대적 M&A 귀환 조짐

(서울=뉴스1)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2020-11-11 06:31 송고 | 2020-11-11 16:21 최종수정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News1
1974년 미국에서 첫선을 보였던 적대적 M&A(인수·합병)는 1980년대부터 특히 유행해서 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소재가 될 정도였다. 1988년 한해에만 160건의 적대적 M&A가 미국에서 발생했다. 미국의 ‘유행’은 시차를 두고 유럽과 아시아에도 전파되었다.

2000년에는 아직도 기록이 깨지지 않고 있는 사상 최대의 적대적 M&A가 독일에서 발생했다. 영국의 보다폰에어타치가 독일의 만네스만을 적대적으로 인수했다. 인수금액은 약 1800억 달러였는데 그해 한국거래소 상장회사 시가총액 합이 1483억 달러였다. 국내에 적대적 M&A가 소개되고 실제로 여러 건이 발생한 시기도 1990~2000년대였다. 1994년 한농, 2004년 SK, 2006년 KT&G가 대표적 사례다. 
그 후 적대적 M&A는 잦아들었다. 미국의 경우 작년에는 발생 건수가 15건에 불과할 정도로 감소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법원 판례가 경영권 방어를 쉽게 해주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것과 기업결합규제가 매우 강력해졌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수습된 후 2010년대에 들어 주식시장의 활황이 유지되었다는 것이다. 주가가 계속 오르며 적대적 M&A라는 고비용 전략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줄어든 것이다.

그런데 최근 글로벌 로펌 시들리 오스틴이 하버드 로스쿨 기업지배구조포럼에 보고한 바에 따르면 미국에서 적대적 M&A가 다시 증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골드만삭스가 올 3월에 경고했던 대로다. 코로나19로 내내 어수선했던 2020년 올해 최소 15건의 사례가 발생했다고 한다. 예컨대 지난 6월 말에는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사인 캘리포니아의 데이터 회사 코어로직(CoreLogic)이 적대적 M&A의 표적이 되었다.

적대적 M&A가 다시 증가한다는 것은 일견 모순으로 보인다. 전세계적으로 코로나19 유행 상황이 지속되면서 다수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주가가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외로 선전하는 기업들이 많다. 심지어 실적이 더 좋아진 기업들도 있다. 이들 기업들이 적대적 M&A 공격자의 사냥감이 될 수 있다. 실적은 괜찮은데 코로나 19로 주가가 저평가되어 있다면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그간 관망세였던 헤지펀드와 투자회사들도 투입할 수 있는 재원을 쌓아두고 대기 중이다. 적대적 M&A의 활성화에 이상적인 조건이 형성되어 있는 셈이다.
코어로직의 경우 경쟁회사나 사업다각화를 시도하는 관련 업계 기업이 아닌 투자회사들이 회사 지분 15%를 매입한 후 적대적 M&A에 착수했다는 특징이 있다. 이처럼 재무적 투자자들이 딜을 주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최근 경향이기도 하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통상 숟가락을 얻는 전략을 선호하지만 현재와 같은 조건에서는 주도적으로 적대적 M&A에 나설 가능성이 있고 사모펀드도 가세할 수 있다. 사모펀드들은 약 2조5000억 달러의 ‘드라이 파우더’(dry powder)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흔히 오해하는 것 중 하나는 헤지펀드가 투자 대상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가장 큰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지배구조 개선은 투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사사로운 투자자인 헤지펀드가 정치권이 진력하는 지배구조 개선 프레임을 들고나오면 착시현상마저 발생한다. 그러나 궁극적인 목적은 투자수익이다. 그 최종 목표 달성에 부응한다면 지배구조가 우수한 회사도 적대적 M&A의 목표물이 될 수 있다. 교과서 같은 이사회가 있어도 기관을 포함한 주주들은 프리미엄 앞에서는 큰 관심이 없을 것이다. 지배구조 개선은 중요하지만 결국은 수익과 주가다.

지금 국내에서는 대기업 지배구조의 개선이라는 정치적 압력 때문에 지배구조 개선이 기업의 실적으로 연결된다는 명제가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다. 그 명제는 전체적으로는 맞다. 그러나 개별 기업에 타당한지는 별개의 문제다. 정치권은 전체를 다루기 때문에 그 명제 위에서 제도를 정비하려 하지만 개별 기업들은 각자 처한 고유의 상황에서 고유의 문제와 씨름한다. 경영권에 영향을 미치는 기업지배구조 관련 제도는 개별 기업이 경제 전체의 일부라는 관점에서 공정하게 정비되어야 한다.

원래 적대적 M&A는 불공정한 게임이다. 공격하는 측은 베일에 가려진 채로 조용히 준비하다가 가장 적합한 상대에게 가장 적합하다 생각되는 시점에 공격을 개시한다. 목표물은 가장 불리한 시점, 즉, 주가가 하락하고 주주들이 경영진에 가장 비판적인 시점에서 시간적 여유 없이 힘겹게 대응해야 한다. 그 상황에서는 회사의 본질가치나 지속가능 경영 같은 메뉴가 주주들에게 잘 먹히지 않는다. 회사 경영자들도 지배구조 착시를 조심해야 한다.

시장은 언제나 정치가 아니고 돈의 논리로 움직인다. 

※ 이 글은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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