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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없이 채취된 '불멸의 세포'…생물학·의학 기여 70년 만에 보상

미국 하워드 휴스 의학연구소 연구기관 최초로 보상 나서
2020년 과학계, 인종차별 관행 반성·개선 노력 중

(서울=뉴스1) 김승준 기자 | 2020-11-02 06:00 송고
(헨리에타 랙스 100주년 기념 사업회 갈무리) 2020.11.01/뉴스1
(헨리에타 랙스 100주년 기념 사업회 갈무리) 2020.11.01/뉴스1

1951년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헨리에타 랙스는 자궁경부암에 걸려 사망한다. 사망 전 병원에서 채취된 그의 암세포는 현재까지도 증식하고 있다. 문제는 세포 주인의 동의가 없었다는 것. 사후 70년 만에 과학연구기관이 그에 대해 보상하는 데 나섰다.
헨리에타 랙스 재단은 지난 10월29일 연구기관 최초로 하워드 휴스 의학연구소(HHMI)가 재단에 기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재단 측은 정확한 기부 규모를 밝히지 않고 10만달러 이상이라고만 말했다. 이 보조금은 헨리에타 랙스의 자손을 비롯한 적격 수혜자들에게 제공될 예정이다.

재단은 " 2010년 레베카 스클루트의 저서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의 수익금과 오프라 윈프리가 주연을 맡은 동명의 영화 수익금으로 설립된 이후, 독자들이 개별 기부를 했다"며 "이번 HHMI의 기부는 연구기관으로서는 첫 번째 기부다"고 밝혔다.

◇동의없이 활용되는 헬라 세포…인류의 문제 해결에 공헌
세포 주인의 이름을 따서 이름 지어진 헬라(HeLa) 세포는 그 주인 헨리에타 랙스('He'nrietta 'La'cks)보다 유명하다. 헨리에타 랙스의 세포는 영양만 공급하면 왕성하게 분열한다는 특징이 발견됐고, 그 연구결과가 논문으로 발표된 후 세계 각지 연구진의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세계 각지에 펴져 분열되며 연구에 쓰였다. 채취 후 연구 목적으로 쓰일 수 있으며, 세계 각지로 퍼질 수 있다는 고지와 동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랙스의 가족도 1970년대에 들어서야 알게 됐다.

헨리에타 랙스의 세포는 인간 세포가 필요한 연구, 신약 개발 등에 다양하게 쓰였다. 해당 세포의 후손 세포들(세포주)은 잘 자랄 뿐 아니라 널리 연구되며 그 특성이 잘 알려졌고, 유전적 특성 등이 같은 만큼 다른 연구 검증에 쓰기도 편하기 때문이다. 소아마비 백신 발명, 체외수정, 암, 유전자 지도, 독성 검사 등 다양한 연구에 활용됐다. 특히 소아마비 백신은 아동 사망률을 낮춰 인류의 평균 수명을 늘린 것으로 평가받는다.

1970년대 채취과정의 문제가 드러났지만 관행은 쉬이 바뀌지 않았다. 2010년 레베카 스클루트의 저서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으로 이 문제가 재조명됐지만, 2013년 일부 연구자들이 동의 없이 유전 정보(게놈)를 온라인에 발표하는 등 문제가 이어졌다.

이후 프랜시스 콜린스 미국 국립보건원장과 랙스의 가족들은 향후 관련 연구가 동의 하에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유전자 개인정보 보호 장치 등을 마련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14일 (현지시간) 뉴욕 브루클린 가에서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과 경찰의 잔혹성에 항의하는 수천명의 시위대가 거리를 메우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14일 (현지시간) 뉴욕 브루클린 가에서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과 경찰의 잔혹성에 항의하는 수천명의 시위대가 거리를 메우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2020년 과학계, 인종차별 관행 반성·개선 노력 중

에린 오새 HHMI 연구소장은 이번 기부와 함께 "헨리에타 랙스 덕분에 가능했던 과학의 진전을 전하고 싶다"며 "최근의 여럿 인종차별적 사건으로 HHMI는 다양성·평등·포용성 확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헨리에타 랙스가 아프리카계 여성이기 때문에 이 문제는 과학 윤리 문제뿐 아니라 인종·젠더 차별과 결부된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올해 미국에서는 미네소타주에서 무저항 상태의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 손에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후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미국 전역 각계각층과 세계 각국으로 퍼졌다.

과학기술계도 이에 호응하기 위해 '셧다운 스템'(Shutdown STEM) 운동을 펼쳤다. 당시 과학기술계는 6월10일 하루, 교육·연구·학술 활동을 잠시 멈추고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 나서자는 캠페인을 펼쳤다. 네이처와 사이언스 등 주요 학술지도 인종차별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동참하겠다고 나섰다.

네이처는 지난달 헨리에타 랙스의 탄생 100주년을 기리며, 아직도 지속하고 있는 연구 윤리 문제를 부각했다. 이번 HHMI의 기부에 앞서 8월 영국의 생명과학기업 아브캄은 헬라 세포로 이룬 이익의 일부를 헨리에타 랙스 재단에 기부하기도 했다. 이같은 일련의 반성과 기부는 과학계의 인종차별 및 연구윤리 부족을 반성하는 선례가 될 전망이다.


seungjun24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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