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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인터뷰] '소리도 없이' 감독 "유아인, 신인의 패기·용기 한번도 꺾은적 없어"

(서울=뉴스1) 장아름 기자 | 2020-11-02 09:00 송고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 영화 '소리도 없이' 홍의정 감독 인터뷰.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 영화 '소리도 없이' 홍의정 감독 인터뷰.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 이 인터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유아인씨 캐스팅 수락에 저도 충격에 휩싸였었어요.(웃음) 유아인 배우는 단 한번도 신인감독의 패기와 용기, 의지를 꺾은 적이 없었어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침체된 극장가에서 반가운 신작이 있었다. 신인인 홍의정 감독이 연출한 '소리도 없이'다. 배우 유아인과 유재명, 두 사람이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여기에 영화계에선 쉽지 않은 선과 악에 대한 주제의식을 범죄극이라는 장르로 풀어낸, 신인 감독의 범상치 않은 연출력에도 주목했다.

유아인이 제작보고회 당시부터 "쇼킹했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시나리오를 쓴 홍의정 감독과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지난달 중순 개봉한 '소리도 없이'는 납치한 아이를 맡기고 죽어버린 의뢰인으로 인해 계획에도 없던 유괴범이 된 두 남자의 위태로운 범죄 생활을 그린 영화로, 단편 '서식지'로 데뷔한 홍의정 감독의 첫 장편이다.

'소리도 없이'는 언론시사회부터 호평이 자자했다. 캐릭터와 사건, 주제의식의 이면을 끊임없이 들여다보게 하는 힘을 보여줘서다. 이에 대해 홍 감독은 "제가 고민했던 것을 정확히 캐치해주시고 풀어주신 분들, 좋은 리뷰를 많이 써주신 분들도 계시지만 영화를 편안하게 보시려 했던 분들은 제가 상징적인 장치를 많이 쓴 부분이나 엔딩(열린 결말) 때문에 힘들어하시기도 하시더라"며 "그럼에도 '어떻게 이런 것까지 보셨지' 할 정도로 잘 분석해주셔서 저로서는 감사한 마음이 컸다"고 고백했다.

'소리도 없이' 스틸 컷 © 뉴스1
'소리도 없이' 스틸 컷 © 뉴스1
홍 감독은 지난 2005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졸업 후 2년간 광고 프로덕션에서 일하다 영국 런던필름스쿨 영화과에서 유학했다. 런던에서 작업을 해오던 홍 감독은 제작사 루이스 픽쳐스와 인연이 닿아 자신이 써오던 시나리오로 '소리도 없이'를 선보이게 됐다. 그는 영화가 제작된 과정에 대해 "상업성이 있다고 보기엔 어려운 작은 사이즈의 영화를 유지하면서 쉽지 않았지만 유아인씨 소속사에 시나리오를 보냈는데 생각보다 빠른 시일내에 답장이 와서 충격에 휩싸였었다"고 회상해 웃음을 안겼다.
'소리도 없이'의 장르는 범죄물이지만 선과 악에 대한 감독의 통찰력이 깊게, 한편으론 흥미롭게 그려진 영화다. 단순히 생존을 위해 '시체 처리'라는 직업을 가진 두 남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데, 도덕적 기준에서 벗어난 이들에게 관객들이 선역으로 몰입할 수 있다는 자체부터가 아이러니다. 홍 감독은 이 아이러니를 영화 곳곳에서 보여주면서 인간의 선과 악이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영화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한다. 홍 감독은 중요하게 여겼던 메시지를 먼저 구축한 뒤 범죄 장르 스토리의 틀을 잡았다고 했다.

"어떤 계기가 있어서 이 같은 시나리오를 썼다기 보다 사람들은 늘 오해가 쌓이는 과정들을 겪는데, 나는 그럴 때마다 '이 사람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왜 나를 안 좋아하나' 그런 고민과 추측을 어릴 때부터 해왔어요. 그러다 서서히 사회에서도 마녀사냥을 종종 목격했고, 순식간에 여론이 몰려서 그릇된 판단을 하는 것을 살면서 봐왔던 것 같아요. 모티브는 '별주부전'에서 갖고 오게 됐고 '범죄' '납치'라는 소재를 통해서 악하지 않은 사람의 사회적 입장이나 계급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 영화 '소리도 없이' 홍의정 감독 인터뷰.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 영화 '소리도 없이' 홍의정 감독 인터뷰.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놀라웠던 점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범죄 상황을 아이러니하게 풀어내며 먹먹하면서도 유쾌한 블랙 코미디를 보여준 연출력이었다. "결정적으로 배우들에게 엄청난 도움을 받게 됐어요. 피식 거리는 웃음이 나왔다면 배우들이 시나리오에 써있던 것 이상으로 상황을 재밌게 만들어준 것 같아요. 일상에 범죄가 개입돼 있는 자체에서 감사하게도 아이러니가 나왔어요. 실제 현실에서도 악하지 않은 사람들이 열심히, 선한 의도로 성실하게 일을 했지만 환경 오염이든 사고든 예기치 못한 결과가 나오게 되는데 그게 실제 사회 시스템인 것 같아서 그 부분을 영화에 녹였어요."

극 중 태인(유아인 분)은 동생 문주(이가은 분)와 정돈되지 않은 집에서 먹고 자는 본능에만 충실한 삶을 살아간다. 납치된 초희(문승아 분)는 태인의 공간에서 믿어지지 않을 만큼 침착하게 적응해간다. 태인과 문주의 집을 정리하고 문주를 자신의 동생처럼 돌본다. 분명 납치된 상황이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속사정은 다른 아이러니가 실감된다.

"덜 자란 어른 남자와 어른스러운 소녀의 구조를 잡게 되면서 두 인물이 설정됐어요. 태인과 창복(유재명 분)에게 납치된 초희는 딸이라는 이유로 남동생과 집안에서 동등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범죄 현장에선 약자인데도 생존을 위해 빠르게 적응해가며 동등하게 자신의 가치를 인정을 받고 주도권도 갖게 돼요." 

태인의 느릿하고 어기적 거리는 걸음에서 한 마리 동물이 움직이는 느낌도 난다. 유아인에게 고릴라 영상을 보냈다는 홍 감독의 일화도 화제였다.

"태인의 감정 묘사보다 행동 묘사를 많이 했기 때문에 고릴라 영상을 드리게 된 것 같아요. 태인은 조직 안에서는 사회화 돼있지만 나머지 삶에서는 자기 의지대로, 본능적으로 먹고 자는 사람이에요. 본인이 겪지 못했던 삶을 초희라는 아이를 통해 겪고, 그 아이를 통해 사회화가 돼야 해서 동물적인 표현을 갖고 갔어요."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 영화 '소리도 없이' 홍의정 감독 인터뷰.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 영화 '소리도 없이' 홍의정 감독 인터뷰.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영화 개봉 전부터 화제였던 점은 유아인이 러닝타임 내내 단 한 마디의 대사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말이 없는 캐릭터는 선과 악에 대한 판단과 관련한 주제도 갖고 가고 있어요. 사람이 어떤 말을 했을 때 말이 오해를 낳게 되고 내가 전하고 싶은 진짜 의도를 말이 잘 전달해주지도 못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떠들어봤자 세상이 이해해주지 않으면,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말이 없는 것과 같은 게 아닐까' 했어요. 그래서 태인은 대사가 없는 캐릭터가 됐어요."

유아인은 신인인 홍의정 감독에게 찬사에 가까운 칭찬을 하는 모습으로 화제가 됐다. 홍 감독의 작품을 대하는 태도를 극찬하거나 선한 영향력을 기대한다는 말도 했었다. 두 사람이 감독과 배우로 잘 통하는 지점들이 있었을지, 또 어떤 작업 과정이 유아인을 흥미롭게 했을지 궁금했다.

"유아인 배우와 통했다고 하기엔 저는 그분이 너무 무섭고 어려워요.(웃음) 저보다 한참 선배이기도 하고, 제가 생각하기에 그분은 잘 하려고 애쓰고 있는 사람이 발견되면 자신의 영향력을 도움이 되는 곳에 쓰고 싶어하는 분이 아닌가 했어요. 제 시나리오가 모든 시나리오보다 나았다고 할 수 없는데 그분에게 운이 좋게 시나리오가 갔었고, 제가 얼마나 딱한지 보셨던 것 같아요.(웃음) 또 제가 신인이기도 하니까 스포트라이트가 자신보다 감독 쪽으로 갔으면 하는 마음도 있으셨던 것 같고요. 유아인 배우는 그런 식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쓰는 방식, 혹은 그 방향에 대한 고민을 오래 전부터 많이 해온 배우인 것 같습니다."
소리도 없이 기자간담회 © 뉴스1
소리도 없이 기자간담회 © 뉴스1
신인 감독이 바라본 유아인은 어땠을까.

"그런 작업(고릴라 영상)을 보고 유아인 배우가 신선하다고 했다고 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 그런 말은 해준 것은 '신선하게 보려고 작정하셨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웃음) 신인 감독이니 얼마나 많은 문제가 보였을까요. 그럼에도 제게 제지를 한다거나 신인의 어떤 패기와 용기와 의지를 꺾는 말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와 저 사람은 왜 대체 사람이 저렇게 좋아?'라고 혼자 생각한 적이 있을 정도였어요. 이 사람이 정말 한순간도 안 편한데 '왜 이렇게 편하게 말할 수 있지?' 하는 이 두 가지 생각을 같이 했던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유아인은 태인 역할을 위해 15㎏을 찌웠다.

"막노동하면서 사는 덜 자란 소년이 어른 몸 안에 있었으면 하는 느낌을 바라서 살을 찌워달라고 했어요. 유아인씨가 소년미가 있잖아요. 덩치가 커질수록 그 느낌이 더 잘 살더라고요. 원래 살이 잘 안 찌는 체질이라 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렇게 고생하면서도 힘든 티도 단 한 번도 낸 적이 없어요. 촬영하면 땀이 나고 살도 빠지는 것 때문에 힘들었을 텐데 단 한번도 그런 표정을 내비치지 않았어요."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 영화 '소리도 없이' 홍의정 감독 인터뷰.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 영화 '소리도 없이' 홍의정 감독 인터뷰.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극 중 태인이 집착하는 정장에 대한 많은 해석이 있었다.

"초희를 구하러 갈 때 입은 정장은 태인의 결핍을 나타내요. 사람이 모두가 꿈을 꾸는데, 태인이 사는 환경에서 그가 가장 동경할 수밖에 없는 건 조직의 실장, 이런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이에요. 그러다 보니 그게 태인에게는 슈퍼맨 같은 슈트였고 정장이 용기를 주는 아이러니를 보여줬으면 했어요. 자신이 속한 세상에서의 최상위 단위의 대상을 꿈꾸는 아이러니죠."

그리고 태인이 초희를 놔줬던 장면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태인이 초희의 손을 놔주지 못하는, 또 한 번의 갈등하는 장면이 있어야 태인이 저지른 범죄 미화가 안 된다고 봤어요. 그러면서도 초희가 손을 떨쳐버리고 갔을 때 관객들이 태인 편을 들어줄 수 있을 정도의 애정을 태인에게 주려고 했어요. 태인은 유괴범으로 불리게 될 것이고 분명 범죄를 저질렀는데 과연 그를 단편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지려 했어요."

'소리도 없이'로 벌써 차기작이 기대되는 홍의정 감독이다. 그는 SF 장르에 대한 관심이 깊다고 고백, '소리도 없이' 이후 보여줄 행보를 더욱 기대하게 했다.

"SF는 현실의 불안 문제를 확장해서 상황을 보여주기에 좋은 장르라서 좋아해요. 만약 두 번째 작업을 할 수 있게 된다면 SF 장르를 해보고 싶어요. 현실을 드러내면서 장르를 흥미롭게 만들 수 있는 영화요. '소리도 없이'도 자기반성적인 영화였는데, SF 영화에서도 왜곡된 현실의 문제점과 아이러니를 담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aluemcha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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