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시선의 확장] 지금 북한은 색깔 전투 중

핑크빛 소비문화의 '색깔'을 바꾸는 북한 산업미술 도안들

(서울=뉴스1) 최희선 디자인 박사/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겸임교수 | 2020-10-24 08:00 송고
편집자주 [시선의 확장]은 흔히 '북한 업계'에서 잘 다루지 않는 북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그간 주목받지 못한 북한의 과학, 건축, 산업 디자인 관련 흥미로운 관점을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최희선 디자인 박사. (현)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겸임교수.© 뉴스1
당 창건 75주년 기념인 10월, 북한은 온통 가을 단풍처럼 붉게 물들었다. 북한의 매체들에서 보이는 당 창건 기념 행사장들의 사진과 영상에는 붉은 배경의 깃발이 유독 크고 선명하게 보이며, 한밤중에 열린 열병식에서도 주민들이 환호하며 흔드는 붉은 꽃 때문에 두렵기까지 한 강렬한 색 잔상을 남겨주었다. 북한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리면 '빨강'을 연상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도 여기 있는 듯하다.
단조로운 붉은 색, 어두운 콘크리트 잿빛의 사회로 여겨지던 북한은 2012년 이후 사회 곳곳에 밝은 조명과 다양한 색상을 입히기 시작하였다. 평양 곳곳에 총천연색의 동상들이 등장하고, 고층 아파트들도 핑크와 민트색으로 도색을 하며 알록달록 파스텔톤의 수도를 만들었다. 최근 큰 수해를 당한 지역에 신축된 살림집들도 진분홍색 기와지붕, 살구와 크림빛으로 외벽을 도장하여 주민들에게 제공되었다.

이러한 북한 사회의 '색 입힘'의 현상을 어려운 경제 현실을 잊게 하는 일종의 마취제와 같은 정치 수단으로 평가하는 언론들도 있으며, 동화와 같은 유토피아 국가의 이상을 대변해주는 색채 심리로 풀이하는 북한 전문가들도 국내외에 많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수해 피해지역인 황해북도 금천군 강북리에 새로 마련된 살림집의 입사 행사 모습(좌), 당 창건 75주년을 기념하며 진행된 여맹 예술소조원들의 공연 모습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뉴스1
(평양 노동신문=뉴스1) =수해 피해지역인 황해북도 금천군 강북리에 새로 마련된 살림집의 입사 행사 모습(좌), 당 창건 75주년을 기념하며 진행된 여맹 예술소조원들의 공연 모습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뉴스1

산업미술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건설기계, 의상, 가방, 식료품과 건축자재들을 위한 산업미술 도안들도 알록달록 색깔 전투를 벌이는 것처럼 총천연색들을 자랑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배경에는 북한의 자력갱생, 국산화 정책과 함께 펼치고 있는 공업 분야의 '다양화, 다종화, 다색화' 운동이 있다. 원산구두공장의 도안실에 '다양화, 다종화, 다색화'의 구호가 벽에 걸려있으며, 건설건재 전시장과 평양양말공장의 지도자 현지 시찰 사진에서도 '다양화, 다종화, 다색화'의 구호가 함께 카메라에 잡히곤 한다.

2016년 북한 원산구두공장의 국가산업미술전시회 전시 부스. 원산구두공장의 고유 브랜드인 '매봉산'의 전시 판넬에는 '다종화, 다양화, 다색화 실현'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출처: 조선중앙TV 캡쳐)© 뉴스1
2016년 북한 원산구두공장의 국가산업미술전시회 전시 부스. 원산구두공장의 고유 브랜드인 '매봉산'의 전시 판넬에는 '다종화, 다양화, 다색화 실현'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출처: 조선중앙TV 캡쳐)© 뉴스1

원산구두공장은 북한의 현대화 설비를 갖춘 본보기 신발공장으로 불린다. 일명 '강원도정신'의 대표적 공장인 원산구두공장은 한 달에 2차례 '도안합평회'와 '제품품평회'를 열고, 컴퓨터 전산을 통한 맞춤 구두도 만들고 있다. 이 공장은 특이하게 산업미술 전공자 없이 공장 내부의 구두제조 엔지니어들과 근로자들에 의해 디자인이 만들어진다고 과거 북한 매체는 홍보한 적 있다.
2020년 당 창건 75주년을 기념하여 10월에 개최되고 있는 '앙산업미술전시회'의 평양양말공장의 전시 판넬. 지난해 북한의 대외 선전매체 '우리 민족끼리'는 '다양화, 다종화, 다색화된 양말생산 – 평양양말공장'의 기사와 사진들을 올린 바 있다.(출처: New DPRK )© 뉴스1 
2020년 당 창건 75주년을 기념하여 10월에 개최되고 있는 '앙산업미술전시회'의 평양양말공장의 전시 판넬. 지난해 북한의 대외 선전매체 '우리 민족끼리'는 '다양화, 다종화, 다색화된 양말생산 – 평양양말공장'의 기사와 사진들을 올린 바 있다.(출처: New DPRK )© 뉴스1 

북한의 경공업은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주민의 생필품 제조와 관련된 것들로, 주민들에게 다양한 소비품을 제공하고 대북 제재로 인한 수입품과 원자재들을 대체하기 위해 국산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공업 분야이다. 과거 북측의 경공업 공장들은 설비 기계화, 현대화를 목표로 하였다. 당시 이 분야 산업미술 도안의 주된 대상은 식기, 신발, 가구류들이었고, 여러 색의 제품보다는 질 좋고 대량으로 생산되는 디자인들을 창작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산업미술가들은 생산의 효율성 못지않게, 주민의 소비 욕구를 충족시키며 물질문명국으로서의 상품의 시각적 풍요로움도 선사하는 역할도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지난 산업미술전시회의 우수작 580여 점이 출품된 2020년 <중앙산업미술전시회> 2층에는 이러한 산업미술의 각오를 반영하듯 "인민생활 향상을 최고의 중대사로"라는 구호가 걸려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북한 경공업 제품의 "다색화"를 이끄는 또 다른 제품은 가방류이다. 10월 5일 개막하여 11월 초순까지 진행되는 중앙산업미술전시회에서도 다양한 제품으로 인민을 만족시키는 생산기지들의 <학생가방도안>들을 소개했다.

다양한 색상의 제품 생산은 북측의 다색 인쇄 가능한 현대적 기계 도입과 과학기술을 강조하는 정책과도 관련이 있다. 과거 인쇄기계들에서 재현될 수 없는 마감 컬러들은 컴퓨터에 의해 색을 조절할 수 있는 인쇄기계들로 대체되어 산업미술의 발전도 가능하게 되었다. 작년 8월 북한은 국가 기본색 견본표를 제정하였다. 북측의 선전매체 아리랑메아리는 "이번에 과학자들이 새롭게 연구 완성한 기본색견본표는 국제적으로 규격화 돼 널리 이용되고 있는 HVC표색계의 기본색상과 자료에 기초해 견본색들을 조합하고 기호화, 수자화 된 물체색의 분류표기 방식을 규정한 현색계"라고 보도 한 적이 있다.(강진규, NK경제) 이는 북한 경공업의 '다색화 현상'를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북한 공업도안법 제2조를 보면 "공업도안은 공업적 방법으로 생산하려는 제품의 형태와 색갈(색깔), 장식 같은 것을 그림이나 사진으로 새롭게 묘사한 것이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북한 산업미술의 중요한 조형 언어 중 하나인 색채는 공업미술에서 주민들의 물질에 대한 욕구과 사회 발전상을 반영하는 척도가 된다. 북한의 소비시장이 확대되고 안목을 넓힌 장마당 세대가 경제의 주역이 될수록 공업미술의 색채는 앞으로도 주민들에게 핑크빛 경제 전망을 보게 하는 스펙트럼을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신문에 실린 신의주가방공장의 모습(좌), 2020년 중앙산업미술전시회에 출품된 신의주가방공장의 '봄향기' 브랜드의 전시 판넬. (출처: 노동신문/New DPRK)© 뉴스1
노동신문에 실린 신의주가방공장의 모습(좌), 2020년 중앙산업미술전시회에 출품된 신의주가방공장의 '봄향기' 브랜드의 전시 판넬. (출처: 노동신문/New DPRK)© 뉴스1



yeh25@news1.kr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