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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직업도 없이 '교회 일'만 했는데…법원 "노동 아닌 봉사"

관리집사 부부 "8년간 100만원 안팎 월급…퇴직금도 없어"
교회 측 "어려움 겪는 교인에게 사택주고 구제비 준 것"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2020-10-24 07:00 송고 | 2020-10-24 10:52 최종수정
자료사진 2020.4.7/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자료사진 2020.4.7/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제가 무지하고 무지해서 그런 건지 너무 억울해서 못 살겠습니다"

지난 서울 서초구의 반지하 자택에서 만난 서민경씨(60·가명)는 말을 이어가다 여러번 울음을 터트렸다. 남편 김영진씨(61·가명)도 아내의 말을 돕다가 천장 방향으로 눈길을 돌렸다. 답답한 마음에 말이 뚝뚝 끊어졌다. 
2010년부터 8년여간 경기도 하남시에 위치한 A교회에 관리집사로 일했던 영진씨 부부는 교회를 위해 일하는 동안 최저임금을 보장받지 못하고 퇴직금도 받지 못했다며 지난 2018년 12월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최근 1심에서 패소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영진씨 부부가 교회에서 '일'을 했다는 주장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영진씨 부부가 교회나 그 목사 등으로부터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지휘·감독을 받았다고 볼 증거가 없으며 다른 성도들과 함께 '봉사'를 한 것일 뿐 '근로'를 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판결문에 적힌 법원의 판단에 대해 민경씨는 "목사가 업무 하나하나 지시했다"며 "부부가 생계도 직업도 없이 그 일만 했는데 이걸 봉사라고 할 수 있느냐.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영진씨는 교회의 권유로 2010년부터 A교회의 관리집사로 일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민경씨는 영진씨 결정이 못마땅했지만 경제 사정도 좋지 않았고 교회에서 사택을 제공한다고 하기에 남편과 함께 교회의 사택으로 들어갔다. 민경씨는 교회 잡무 정도를 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부부가 전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을 해야 했다고 밝혔다.

A교회는 예배당 외에도 어린이집, 숙소 주택, 빌라, 수양관 등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고 수양관에는 논밭과 수목원도 딸려 있었다. 영진씨 부부는 자신들이 교회 차량운행, 청소와 관리, 예배 보조 업무뿐만 아니라 교회가 소유한 논밭, 수목장에서 농작물을 재배하고 조경을 가꾸는 일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영진씨가 법원에 제출한 작업일지 등에는 교회와 관련된 일을 했다는 내용이 적혀있지만 법원은 이를 "일기 형태로 그날그날 자신이 한 일과 느낌을 적은 것에 불과하고 교회 소속의 어떤 자로부터 지시를 받아 일을 했다고 볼만한 기재가 없다"고 판단했다.

일에 대한 대가로 받은 돈은 부부가 합쳐 70만원에서 150만원 사이였다. 민경씨는 월급을 받아도 십일조, 주일교사 회비, 전도 회비, 각종 특별 헌금과 감사 헌금을 내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을 얼마 없었다고 털어놨다. 

심지어 영진씨는 "집사라는 직책이 있어 다른 성도들보다 더 많은 헌금을 내놓을 때도 있었다"라며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오히려 빚을 져야 했다"고 말했다. 교회를 나오고 나서 영진씨 부부는 한 병원에서 청소업무를 하고 있다. 민경씨는 "둘이서 일을 하니 최근 지금까지 진 빚을 다 갚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은 영진씨 부부가 '노동'이 아니라 '봉사'를 한 것이라고 판단한 근거로 이들 부부가 작성한 '봉사신청서'를 들었다. 봉사신청서를 스스로 작성해 제출했으므로 교회가 이들에게 근로를 시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영진씨는 "교회가 매년 11월쯤 되면 성도들에게 봉사신청서를 돌려서 작성하도록 한다"라며 "집사 이상은 의무적으로 이를 작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교회가 정례적으로 봉사신청서를 받고 있으며 이를 거부하기는 힘들다는 설명이다. 

A교회 측은 재판 내내 영진씨 부부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어 사택을 내주고 '구제비'를 준 것이지 근로자로 고용을 해 월급을 준 것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A교회는 영진씨 부부가 해온 일도 다른 교인들과 함께 스스로 원해서 봉사를 한 것이지 이들이 특별하게 많은 일을 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A교회는 3명에 목사가 있다. 아버지가 원로목사, 어머니가 수석목사 딸이 담임목사다. 2009년 교회가 서울 양재동에서 하남으로 이사하면서 딸이 부모부터 담임목사 자리를 넘겨받았다. 민경씨는 "수석목사는 항상 우리에게 '관리집사나 목사는 전부 교회의 녹을 먹고 사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했다"라며 "그러는 목사에게는 수억원의 퇴직금을 주면서 우리에겐 방 구할 보증금 1000만원 못 준다고 한다. 너무나 억울하다"고 말했다.

영진씨 부부의 주장에 대해 교회 측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이미 법원에서 판단한 내용이라고 못을 박았다. 영진씨 부부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부부는 최근 설립된 교회 종사자 노동조합인 '기독노조'에도 도움을 청했다. 기독노조는 지난 18일부터 A교회 앞에서 일요일마다 교회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potgu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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