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 연예 > 인터뷰

[N인터뷰] '삼토반' 이종필 감독 "여성서사, 자연스러운 시대적 흐름이죠"(종합)

(서울=뉴스1) 고승아 기자 | 2020-10-24 08:00 송고
이종필 감독/롯데엔터테인먼트 © 뉴스1
이종필 감독(40)이 영화 '도리화가' 이후 5년 만에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내놓았다. 영화는 1995년 입사 8년 차, 업무능력은 베테랑이지만 늘 말단 사원으로, 진급을 위해 회사 토익반을 같이 듣는 세 친구가 힘을 합쳐 회사가 저지른 비리를 파헤치는 이야기다.

"작가님이 쓰신 초고 시나리오 버전은 지금보다 더 사회고발물에 가까웠어요. 이 드라마를 신나게 풀어보고 싶었죠. 추리와 추적도 넣고 싶었고요. 단지 고발에 그치지 않고 이들이 승리하고 성취하는 것도 보고 싶었어요. 사실 전작 '도리화가'가 잘 안돼서 우울하던 시기라, 밝아지고 싶은 바람도 있었어요."

감독의 바람대로, 영화는 밝고 유쾌하면서 정직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그는 "90년대 고졸 여성 말단 사원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사실 현재 보편적으로 통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해요"라며 "전 영화를 통해 묵묵히 살아가는 다수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그런 얘기를 했을 때 눈물 질질 짜게 하는 그런 것보다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고 싶어서, 그에 더 주안점을 두고 작업했죠"라고 밝혔다.

이종필 감독은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영화에 대한 반응을 밤새 살피느라 중독이 될 정도라며 웃었다. 이렇게까지 반응을 찾아보는 이유에 대해 묻자, "이번 영화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같다"고 답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스틸컷/롯데엔터테인먼트 © 뉴스1
그는 "촬영 초반에 문득 주변을 둘러보는데 배우분들은 물론이고, 모든 스태프분이 이 영화에 집중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어요"라며 "이 영화가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내가 괜찮은 걸 하고 있다는 걸 확 느끼면서 행복했어요"라고 회상했다.

이어 "왜 그런가 생각해봤는데, 이야기 주인공들은 그저 평범하게 일하는 사람들, 하루하루 살아가며 일하고, 아무 일이 없고 그 속에서 가끔 우울하기도 하고 그런 일이 반복되는 사람들이죠"라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것 같아서 더 애정이 가요"라고 답했다. 특히 "고아성 이솜 박혜수 배우는 촬영에 온전히 집중했죠"라며 "세 배우가 합숙한 거 외에는 별다른 에피소드가 없을 정도로, 촬영에 완전히 집중했고, 정말 다들 잘하고 싶은 마음이 느껴졌어요"라고 말했다.

이 감독은 전작 '도리화가'에 이어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도 여성을 주연으로 내세웠다. 특히 이번에는 세 명의 여성 배우가 전면으로 등장해 여성 서사 영화의 흐름을 이어간다.

이 감독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란다. "제가 여성사도 좋아하고, 영화는 장르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하고, '신세계'도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도 좋아하죠"라며 "그래서 이 영화가 단지 제 개인의 어떤 가치관보다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나온 거라 생각하고, 언젠가는 여성 서사가 특별하게 취급받지 않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이어 "몇 년 전에 어느 영화를 보고, 여성 친구가 '몇백 년 후에 현재 영화를 보면 저 시대엔 남자만 살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고 하더라고요"라며 "그런데 이제 흐름이 바뀌었고, 저는 자연스러운 흐름 앞에 자영(고아성 분), 유나(이솜 분), 보람(박혜수 분)의 캐릭터에 집중했어요"라고 부연했다.

특히 자영, 유나, 보람을 비롯해 고졸 여성 말단 사원이 을지로 거리를 걷는 '떼 신'은 인상 깊다. 이 감독은 "여자들이 떼로 나오는 걸 영화에서 본 적이 없어서 스타일리시하게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영화 '저수지의 개들' 같은 걸 생각했죠. 낮 촬영인데도 조명에 힘을 줬을 정도로 멋있게 해보고자 했어요. 첫 커트를 찍는데 걸어오는 아성 배우가 얼마나 멋있던지, 정말 좋았어요"라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스틸/롯데엔터테인먼트 © 뉴스1
영화 속 배우들의 앙상블도 눈길을 끈다. 'FM' 같이 정석대로 정의로운 자영, 아는 척을 많이 하지만 매력적인 유나, 그리고 수학 올림피아드 출신 보람까지 세 친구가 힘을 합치는 순간이 돋보인다.

"가상의 세 친구가 생긴 기분입니다. 하하. 세 캐릭터의 밸런스를 고려하기보다는 실제 친구들을 생각하며 썼어요. 특히나 고아성 배우가, 이솜 배우가, 박혜수 배우가 각자 캐릭터를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어 줬어요. 배우라는 한 창작자로서 자신들이 가진 모습을 끄집어내 캐릭터에 불어 넣었죠. 캐릭터의 매력은 배우분들이 다 만든 거라고 생각해요."

보람은 조금 더 감독의 생각이 투영된 캐릭터다. 회사를 위해 헌신하는 마음을 가진 자영과는 사뭇 다르다. 보람은 '하고 싶은 것이 없다'고 말하며 또 다른 인간상을 보여준다.

"제가 함부로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자영 캐릭터는 사실 요즘 세대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캐릭터인 것 같아요. 요즘 트렌드는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없지 않나요.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느끼는 게 무엇일지 고민하다가, 보람이 그런 고민을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처음에는 '요즘 세대'의 생각에 대해 찾아보다가 너무 단편적일 것 같아서 아예 요즘 제가 느끼는 것을 보람 캐릭터에 넣었어요. 다만 보람의 이런 모습도 단순하게 단정 짓고 싶진 않아요. 제가 감히 보람의 고민도 해결해 줄 순 없었으니까요. 다만 관객들이 보람을 보고 공감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종필 감독/롯데엔터테인먼트 © 뉴스1
이 감독은 이번 영화를 통해 90년대 시대상을 온전히 스크린에 옮겨 담았다. 배우들의 90년대 패션 스타일은 물론, 당시 사무실과 을지로 거리 등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스크린도어가 없던 지하철 모습은 꼭 담아내고 싶었어요. 90년대는 지금보다는 느린 시절이었는데, 그 공기를 느껴보고 싶었죠. 요즘 레트로가 유행인데, 우리 영화가 '찐'을 보여주겠다는 건방진 마음도 있었어요. 하하."

영화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거듭 드러낸 만큼, 아쉬운 점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전작 '도리화가'에서 아쉬운 평을 많이 받았어요. 반전이 없다는 평을 들었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싶었어요. 그러다가 과해졌다는 지적도 있었으니 다음에는 또 이런 걸 반영해서 반전을 줄이려고 합니다.(웃음) 저는 예술영화나 개인영화를 하는 것도 아니고, 대중영화를 만드는 만큼 관객분들의 의견을 많이 들어보고 반영하려고 해요. 그러면서도 저만의 변주도 조금씩 주고 싶어요. 마지막 장면에 대한 말이 오가지만, 판타지일지언정 이 사람들의 승리에 포커스를 맞춰서 보여주고 싶었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를 졸업하고 2007년 단편영화 '불을 지펴라'로 연출을 시작한 이종필 감독은 '달세계여행'(2009)에 이어 상업 영화로 '전국노래자랑'(2013) '도리화가(2015) 등을 내놓았다. 영화 '아저씨' '푸른소금' 등에서 연기를 하고, 각종 영화에서 촬영부로 뛰기도 한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

"영화학교 학생이라 아는 선배가 영화 찍는다길래 몇 번 우연히 연기를 하게 됐어요. 망치진 말아야겠단 생각에 쓸데없이 과몰입해서 메소드 연기를 했네요. 그러다 '아저씨'도 나갔는데, 배우냐고 연락이 왔고 소속사에서도 연락이 오더라고요. 길을 정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죠. 호기심으로 하는 것은 아니란 생각에 연출과 시나리오에 집중하기로 했어요. 그래도 인생은 모르지 않나요. 하하. 연기를 해본 만큼, 연출자로서 배우분들에게 좀 더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이종필 감독/롯데엔터테인먼트 © 뉴스1
차기작은 아직 준비 중이다. 해보고 싶은 장르도 많다는 이 감독은 "정작 지금 쓰는 건 많지 않다"며 "요새 영화 반응 살펴보느라 바빠서"라며 웃었다. "제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너무 사랑하는데 이 마음이 많은 관객분들에게 전달됐으면 해요. 열심히 또 반응을 검색해 볼 것 같습니다. 하하."


seunga@news1.kr

오늘의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