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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건강보험 적용, 전문가들 대체로 찬성…관건은 시민공감

찬성·반대 단체 모두 인정…"낙태 모니터링·통계 용이해져"
건보 재정에도 큰 영향 없을 듯…"누구가에겐 필요한 선택지"

(서울=뉴스1) 정혜민 기자 | 2020-10-09 07:00 송고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낙태죄 완전 폐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0.10.8/뉴스1 © News1 이밝음 기자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낙태죄 완전 폐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0.10.8/뉴스1 © News1 이밝음 기자

정부가 최대 24주까지 임신중단(낙태)가 가능하도록 하는 입법개선안을 내놓으면서 낙태시술·먹는 낙태약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등 후속작업이 진행될 전망이다.
건강보험 적용에 대해서는 낙태죄 폐지 찬성·반대 단체들이 모두 대체로 찬성하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시민들의 공감을 끌어내는 것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낙태 여성 33% "경제적 이유 때문에 낙태"

9일 여성계 등에 따르면 낙태시술·먹는 낙태약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면 낙태에 드는 비용부담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그간 음성화했던 낙태에 대한 모니터링과 관련 통계 확보가 쉬워진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 낙태를 경험한 여성의 다수가 경제적 여건 때문에 낙태를 선택한 것으로 파악된다.
2018년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낙태 경험자의 낙태 이유(복수응답)로는 '경제상태상 양육이 힘들어서'라는 응답이 32.9%에 달했다.

가장 응답이 많았던 답변은 '학업·직장 등 사회 활동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33.4%)였다. '자녀 계획 때문에'(31.2%), '파트너와 관계가 불안정해서'(17.8%), '파트너가 아이를 원하지 않아서'(11.7%)라는 답변도 있었다.

보고서는 "'경제상태상 양육이 힘들어서'는 연령이 낮거나 사실혼·동거여성에서 응답률이 상대적으로 높았다"고 밝혔다. 조사는 3년 내 낙태 경험이 있는 20~44세 여성 20명에 대한 심층면접 방식으로 진행됐다.

임신중절수술 지불 비용은 '30만~50만원'이라는 응답이 41.7%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으로는 '50만~100만원'(32.1%)이었다. '30만원 미만'은 9.9%, 100만원 이상에 대한 응답들도 총 7.9%에 달했다.

나이가 어릴수록 임신중절수술 지불 비용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었다. 보고서는 "비용은 수술기관을 찾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된다"며 "특별히 연령이 낮고, 미혼에서는 더욱 비용의 문턱은 높을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낙태 경험이 있는 25세 미혼 여성 A씨는 "갑자기 닥친 상황에 너무 큰돈이 나가야 되니까. 제가 그렇게 알아봐서 너무 비싸다고 생각이 들고, 급한 대로 그냥 거기서 (45만원을 내고) 수술을 받았다"고 전했다.

미프진 등 낙태약 구매에 필요한 비용에 대한 응답은 '10만원 미만'이 36.3%, '10만~20만원'이 24.3%, '20만~30만원'이 13.9%로 나타나 상당수는 30만원 미만의 범위에서 약물을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외에는 '30만~40만원'(12.2%), '40만~50만원' 3.7%, '50만원 이상' 9.6%의 응답이 있었다.

◇낙태 찬·반단체 모두 건보 찬성…재정영향 없을 듯

낙태죄 폐지를 주장해온 여성의당은 "임신중절은 여성의 삶은 물론 생명까지 직결되는 문제"라며 "국가에서 보장하는 안전한 임신중단 약물 및 수술이 보장돼야 하며 건강보험 적용 또한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낙태죄 폐지를 반대해온 케이프로라이프의 송혜정 상임대표는 "어떤 낙태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는 전제를 두면서도 "낙태를 허용하게 되면 철저히 건강보험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낙태시술을 현금으로만 받기 때문에 의사들이 '돈 장사'를 하는데 건강보험을 적용해서 낙태에 대한 통계를 확보하는 동시에 의사들이 이익을 보지 못하게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먹는 낙태약과 낙태 시술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하더라도 건강보험 재정에 큰 부담은 없을 전망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연간 4만9764건의 낙태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보고서는 만 15~44세 가임기 여성 1000명당 4.8건의 낙태가 있었던 것으로 봤다.

건강보험 수가가 시술이나 약에 대해 평균 10만원 정도 적용된다고 가정해 단순계산하면 먹는 낙태약과 낙태 시술에 드는 건강보험 재정은 연간 50억원 수준이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 연구위원은 "연간 정부 총지출이 500조원 정도인데 건강보험재정은 연간 50조원에 달할 정도로 매우 크다"며 "연간 50억원은 건강보험재정에 매우 미미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먹는 낙태약과 낙태 시술에 건강보험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공감을 끌어내는 게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많은 시민은 낙태 건강보험 적용에 찬성하는 분위기지만 반대의 목소리도 있다.

서울 영등포구 거주 직장인 김지현씨(가명·34)는 "나이가 어리거나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은 경우 낙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빌리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며 "이런 사람들을 위한 선택지가 될 것 같다"고 전했다.

경기 안양에 사는 직장인 이수혁씨(가명·31) 역시 "낙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건강보험이 절실할 것"이라면서도 "대부분은 낙태에 건강보험을 이용하지 않을 것 같다"며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온라인에서는 반대 주장들이 눈에 띄었다. 한 네티즌은 "개인이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은 개인이 지는게 맞지 않나"라고 말했다. 다른 네티즌은 "'보험 적용해줄 테니 24주 안에 빨리 낙태하라'는 말로 들린다"고 비판했다.


hemingwa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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