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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캐나다 국기는 왜 단풍잎이 되었나

(서울=뉴스1) 조성관 작가 | 2020-10-08 12:00 송고 | 2020-10-08 16:13 최종수정
메이저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엠블럼 / 사진출처 = 토론토 블루제이스 홈페이지
메이저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엠블럼 / 사진출처 = 토론토 블루제이스 홈페이지
우리는 MLB 토론토 블루제이스 선발투수 류현진으로 인해 캐나다와 관련된 것들을 친근하게 접하는 중이다. 토론토는 류현진의 활약 덕분에 4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현재 KBO리그 삼성 라이온스에서 마무리 투수로 활약 중인 오승환이 잠깐 토론토에서 뛴 적이 있다. 마무리 투수는 세이브(save) 상황에서만 등판한다. 언제 마운드에 올라올지 모른다. 며칠씩 건너뛰는 경우도 있다. 올라와도 대부분 한 이닝을 던진다. 오랫동안 투구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토론토 에이스로 입지를 굳힌 류현진. 야구팬들은 앞으로 3년간 토론토를 가깝게 느끼게 될 것 같다.    
토론토, 블루제이스, 로저스센터, 버팔로 섀린필드(Sahlen Field)…. 오대호의 하나인 온타리오호(湖)에 면한 캐나다 제1의 도시 토론토, 산까치의 일종인 청어치(bluejays), 돔구장의 원조 격인 로저스센터 스카이돔. 그러나 2020시즌은 코로나19로 인해 토론토는 스카이돔 홈구장을 쓰지 못한 채 미국 뉴욕주 버팔로에 있는 마이너리그구장 섀린필드를 임시로 사용했다. 개폐(開閉)식 스카이돔을 경험할 수는 없지만 대신 우리는 나이아가라 폭포의 기막힌 야경(夜景)을 감상했다.

토론토 홈경기 때마다 블루제이스의 더그아웃이 카메라에 잡히고, 토론토의 엠블럼에 시선이 간다. 그때마다 청어치보다 빨간 단풍잎에 시선이 빨려든다. 단풍잎 디자인이 참 간결하고 예쁘다. 빨강은 파랑 바탕에 얹힐 때 색의 채도가 높아진다. 세계 198개 나라의 국기 중에서 나뭇잎을 이미지로 쓴 나라는 캐나다가 유일하다. 물론 국기에 나무를 등장시킨 나라는 있다. 레바논 국기에는 삼나무로 불리는 백향목이 나온다.

캐나다 국기는 어떤 철학적 의미를 담지 않고도 잎사귀 하나로 충분하다는 자부심으로 펄럭인다. 단풍잎 국기는 '캐나다는 깨끗하다' '캐나다는 자연이 아름답다' '캐나다는 청렴하다' 등의 메시지를 발산한다. 일찍이 유대계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이미지가 곧 메시지다'라고 갈파한 바 있다.  
국기에 단풍잎 이미지를 가져다 쓴 것에서 보듯 캐나다는 메이플 리프스(maple leafs)를 빼놓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단풍잎 이미지를 변형한 디자인이 끝없이 생산되고 유통된다.

캐나다는 전통의 아이스하키 강국이다. 동계 올림픽 최대의 이벤트는 캐나다와 미국이 금메달을 놓고 결승에서 맞붙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TV 시청률이 치솟는다. 토론토를 연고지로 한 내셔널 하키리그(NHL)의 팀이 토론토 메이플 리프스(Toronto Maple Leafs)다. 이 팀의 홈구장 이름이 '메이플 리프스 가든'이다.  

캐나다 동부에는 단풍나무길(mapleroad)가 있다. 세인트로렌스강 연안의 삼림지대를 관통하는 장장 800km에 달하는 고속도로다. 오타와, 몬트리올을 거쳐 퀘벡에 이르는 도로 양옆에는 단풍나무들이 거대한 숲을 이룬다.

나는 오래전 이 길을 몬트리올에서 오타와 구간을 석양 녘에 버스로 여행한 적이 있다. 단풍나무 숲은 이미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메이플로드 위 하늘도 노을로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단풍나무숲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버스 차창으로 이 광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면서 내가 탄 버스가 에트나 화산의 용암 속으로 빨려드는 것 같은 환상에 빠졌다.
단풍잎 유리병의 메이플 시럽, 단풍잎 디자인의 머그잔, 메이플시럽을 원료로 만든 식품. 조성관 작가 제공
단풍잎 유리병의 메이플 시럽, 단풍잎 디자인의 머그잔, 메이플시럽을 원료로 만든 식품. 조성관 작가 제공
단풍나무는 맛으로도 기억된다. 메이플 시럽이다. 도처에 널려 있는 단풍나무에서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듯 단풍나무 수액을 채취해 뭉근하게 끓이면 황금빛 메이플 시럽이 나온다. 캐나다인의 아침 식사 중의 하나가 팬케이크에 메이플 시럽을 끼얹어 구운 감자, 소시지, 계란프라이를 곁들여 먹는 것이다. 메이플 시럽을 몇 번 맛보면 다른 시럽은 먹기 힘들다. 단맛이 은은하면서도 깊은 맛이 있다. 자연이 주는 단맛이 이런 거구나! 인공 감미료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단맛의 세계를 보여주는 게 메이플 시럽이다. 메이플 시럽을 원료로 버터, 젤리, 캐러멜 등 다양한 제품이 생산된다.

동계올림픽에 출전하는 국가대표 선수들은 국기 이미지를 디자인한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선다. 두세 개의 색을 배열을 달리해 국기로 사용하는 나라들은 유니폼이 헷갈리기 일쑤다. 그중 한 번만 봐도 눈에 팍 들어오는 유니폼이 몇 개 있는데, 캐나다가 대표적이다. 단풍잎을 쪼개고 자르고 분리해 정말 다채로운 디자인이 탄생한다. 4년마다 돌아오는 동계올림픽에서 캐나다 선수들의 유니폼이 또 어떻게 디자인되었을지 궁금해진다.  

지금부터는 언제 어떻게 단풍잎이 캐나다 국기로 채택되었는지를 알아볼 차례다.

캐나다는 1867년 영령북미법(英領北美法)에 의거해 탄생한 나라다. 이후 1964년까지 캐나다는 '캐나다 붉은 국기'(Canadian Red Ensign)를 사용했다. 왼쪽에 영국 국기 유니온 잭(Union Jack)을 넣고 중간에 캐나다 국가문장(Arms of Canada)을 배치한 것이다. 6‧25전쟁 때 참전한 캐나다 군인들은 이 깃발 아래 경기도 가평에서 중공군과 싸웠다. 과거 대영제국의 식민지였다가 독립한 나라들의 집합체인 영연방(Commonwealth) 소속 53개국 중에는 여전히 유니온 잭을 국기에 사용하는 국가가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가 대표적이다.  
캐나다가 6·25전쟁 당시 사용한 국기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캐나다가 6·25전쟁 당시 사용한 국기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이 지점에서 우리는 조금은 낯선 캐나다 정치가 한 사람을 만날 필요가 있다. 토론토를 항공으로 한 번이라도 여행해 본 사람은 이 정치가의 이름을 접했을 것이다. 토론토 국제공항이 이 정치가의 이름을 따왔다. 1963년부터 1968년까지 캐나다 총리를 지낸 레스터 피어슨(Lester Pearson 1897~1972)이다.

이에 앞서 피어슨은 10년간 외무장관을 지냈다. 피어슨은 1957년 수에즈 위기(Suez Crisis)를 해결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외무장관 재임 중인 1956년 이집트 낫세르 대통령이 수에즈 운하 국유화를 선언하면서 영국·프랑스와 분쟁이 발생했다. 수에즈 위기다. 피어슨은 외무장관 자격으로 UN에서 국제연합감시군을 창설을 주도했고, 이를 현지에 파견해 수에즈 위기를 해결했다. 이것이 현재의 유엔평화유지군(PKO)이다.

1963년 총선에서 자유당이 승리하면서 피어슨은 캐나다 총리에 오른다. 피어슨 총리는 영연방의 일원이지만 독립국으로서 국제사회의 위상에 어울리는 국기를 갖는 것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캐나다 오타와의 테리 팍스 동상 옆에서 펄럭이는 캐나다 국기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캐나다 오타와의 테리 팍스 동상 옆에서 펄럭이는 캐나다 국기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피어슨은 왜 이런 결심을 했을까. 그는 외무장관 시절 '수에즈 위기'의 중재자로 나서면서 캐나다 국기로 인해 난감한 경험을 했다.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이 국제연합감시군에 편성된 캐나다군의 깃발을 문제 삼은 것이다. "왜 독립국 캐나다 국기에 '유니온 잭'이 들어 있느냐? 영국 편을 드는 게 아니냐?"  

피어슨은 하원 연설을 통해 국기를 바꿀 계획이니 의회에서 토론을 통해, 여야 합의안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캐나다 전역은 하루아침에 국기 논쟁에 휩싸였다. 별의별 의견이 다 나왔다. 야당 총재이자 전직 총리인 존 디펜베이커는 국기 변경 계획에 거세게 반대했다.    

캐나다 건국사(史)의 양대 축은 영국과 프랑스다. 주도권은 영국계가 장악했지만 캐나다 연방을 유지하려면 퀘벡주와 프랑스계 캐나디언을 껴안아야 했다. 다수인 영어 사용주민 앙글로폰과 소수인 프랑스어 사용주민 프랑코폰 모두를 만족시키는 새로운 국기를 도출해야 했다. 이때 대두된 것이 캐나다 국가 문장에 등장하는 단풍잎 세 개였다. 이것은 다양한 인종들에 의해 건국된 새로운 나라를 상징한다. 캐나다는 150여 개의 다양한 인종이 모자이크를 이루는 나라다.

마침내 단풍잎 디자인이 국기로 결정되었다. 그러자 일부에서는 흰색 여백이 많아 금방 때가 탄다는 반대 의견도 나왔다.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새 국기는 캐나다인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통합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집마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새 국기를 하나씩 선물했다.    
1957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할 당시의 레스터 피어슨 /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단풍잎 국기가 채택되자 차츰 국가(國歌)도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되었다. 식민지 시절부터 불러온 영국 국가 '신이여, 여왕 폐하를 보호하소서'(God Save the Queen)을 대신할 새로운 국가가 필요해졌다. 재집권에 성공한 피에르 트뤼도 총리는 1980년 ‘O, Canada!’를 새 국가로 채택했다. 1982년에는 헌법을 수정할 때마다 영국 국왕의 허락을 받아야 했던 헌법수정권을 완전 이양받기에 이른다.

그리고 1984년 토론토국제공항이 토론토피어슨국제공항으로 이름을 바꿨다. '피어슨 공항'은 이렇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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