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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앞둔 쪽방촌 노부부는 멍하니 '전원일기'만 바라봤다

가족관계 허물어진 쪽방촌·고시원·노숙인…명절 그늘
30년 가까이 못본 자식들…"너희를 어떻게 키웠는데"

(서울=뉴스1) 이밝음 기자, 원태성 기자, 이승환 기자 | 2020-10-01 07:01 송고 | 2020-10-01 17:16 최종수정
추석 연휴 전날인 지난 29일 오후 4시, 종로구 쪽방촌 건물 계단.© 뉴스1이밝음 기자
추석 연휴 전날인 지난 29일 오후 4시, 종로구 쪽방촌 건물 계단.© 뉴스1이밝음 기자

조일순씨(가명·78)는 가파른 계단을 한걸음씩 올랐다. 쪽방촌 건물 2층에 도착한 조씨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조씨의 남편인 이철호씨(가명·85)도 건물 2층에 있었다. 이씨는 쭈그려 앉아 계단 아래 쪽을 멍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너희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씨는 넋두리하듯 말했다.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29일 오후 4시쯤, 종로구 쪽방촌 2층짜리 건물 안이었다. 이씨는 명절 때만 되면 이런 넋두리를 한다. 이씨와 아내 조씨는 매달 기초생활수급비 70만원을 받고 이 가운데 20만원은 치매 증상을 보이는 이씨의 약값으로 쓰고 있다.

◇"아들·딸 소식 끊긴 지 20년 더 됐다"

30년 전만 해도 이씨 부부는 아들·딸과 즐겁게 살았다. 아들이 하던 사업이 부도나 집이 넘어간 게 화근이었다. 아들·딸 소식 끊긴 지 20년이 더 됐다. 주거지를 옮기며 사실상 떠돌이 생활을 하던 이들 부부는 5년 전 이곳 쪽방촌으로 흘러들어왔다. 
이씨 부부는 "자식들은 보고 싶지도 않아. 애를 먹였으니까"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시 명절이 다가오면 이씨는 넋두리를 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들 부부 방안에 놓인 브라운관 TV에서는 '대가족'이 등장하는 드라마 '전원일기'가 방영되고 있었다.

이씨 부부가 자리 잡은 쪽방촌 건물 2층에는 3가구가 살고 있다. 두 사람이 누우면 빈틈을 찾기 어려운 쪽방이다. 3가구가 복도에 있는 화장실 1곳을 함께 쓴다. 맞은편 건물 쪽방에는 박성훈씨(53·가명)가 살고 있다. 3.3㎡(1평) 남짓한 방 안에 박씨는 머물고 있다.

추석 연휴 전날인 지난 29일 오후, 종로구 쪽방촌 건물에 들어선  이철호씨(가명·85)와 조일순씨(가명·78) 부부 방안© 뉴스1이밝음 기자
추석 연휴 전날인 지난 29일 오후, 종로구 쪽방촌 건물에 들어선  이철호씨(가명·85)와 조일순씨(가명·78) 부부 방안© 뉴스1이밝음 기자

박씨는 "어머니 못 본 지 27년 정도 됐다"고 말했다. 등본을 떼어 봐도 모친의 주소가 확인되지 않는다고 한다. 주소를 알고 있어도 그는 쉽게 발걸음하지 못할 것 같았다. "어머니도 힘들게 살 것 같거든요. 서로 도움 안 되는데 만나서 뭐하나 싶기도 하고…."

◇인간관계 끝난 고시원 사람들
    
쪽방촌과 고시원의 주민, 노숙인은 주거 공간만 취약한 게 아니었다. 가장 기초적인 인간관계인 '가족 관계'도 허물어진 상태였다. 

30대 이지은씨(가명)는 어두컴컴한 고시원 방안에 앉아 있었다. 이씨는 약 2년6개월 전부터 서울역 인근 A고시원에 살고 있다.

신경 정신과 진료가 필요한 이씨를 그의 부모는 감당하지 못했다. 부모는 이씨를 A고시원에 입실시켰다. 이후 이씨를 찾지 않고 있다. 기자의 질문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던 이씨는 '가족'에 대한 질문에 "부모님 같은 거 몰라요"라고 답했다.

A고시원은 서울역 주변에서 가장 오래된 고시원이다. 방 67개가 다닥다닥 들어섰다. 가장 저렴한 방의 월세는 23만원이고 크기는 9.9㎡(3평) 수준이다.

추석 연휴 전날인 지난 29일 오후, 서울역 인근 A고시원 방안.© 뉴스1원태성 기자
추석 연휴 전날인 지난 29일 오후, 서울역 인근 A고시원 방안.© 뉴스1원태성 기자

A고시원 총무 박상호씨(가명·61)는 "이곳에는 최하계층이 산다"고 했다. "대부분 인간관계가 끝난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이곳 사람들이 추석 명절에 가족들을 만나냐'는 말에 박씨는 이 같이 답했다.

◇"아들 앞에 못 나타나겠다"    

서울역 광장에도 가족관계가 사실상 끝난 사람이 모여 있다. 노숙인 30여명이 광장 곳곳에 저마다 자리를 잡고 있다.

성경책 구절을 공책에 옮겨 적던 이호범씨(가명·56)는 올해 서른 살 된 아들이 있다. 아들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1년 전이다.

그때만 해도 이씨는 '직업'이 있었다. 하루벌이였지만 영등포 소재 민박집에서 일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영향으로 그만둔 뒤 서울역 노숙 생활을 시작했다. 직업이 없는 이씨는 아들 앞에 나타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아들이 왜 안 보고 싶겠어. 그런데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아들 앞에 나타난다고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

이씨와 인터뷰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서울역 대합실을 향해 인파가 몰리고 있었다. 추석 연휴 전날 시작된 귀성길은 다음 날 30일에도 이어졌다. 연휴 첫날 전국 고속도로에는 차량 457만대가 몰려 이날 오전 교통 혼잡은 절정에 달했다.

추석 연휴 전날인 지난 29일 오후, 노숙인들이 서울역 광장에 삼삼오오 모여 있다.© 뉴스1원태성 기자
추석 연휴 전날인 지난 29일 오후, 노숙인들이 서울역 광장에 삼삼오오 모여 있다.© 뉴스1원태성 기자



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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