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쪽방촌 주씨·인력사무소 이씨·노점상 곽씨…보름달 소원은 같았다

이루고 싶은 건 다 달라도 필수 조건은 '코로나 종식'
경기 나아지길, 취업할 수 있길, 아이와 뛰놀수 있길

(서울=뉴스1) 박종홍 기자, 정혜민 기자 | 2020-10-01 09:00 송고
추석인 13일 저녁 서울 도심에서 바라본 하늘에 보름달이 떠있다(자료사진) 2019.9.13/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추석인 13일 저녁 서울 도심에서 바라본 하늘에 보름달이 떠있다(자료사진) 2019.9.13/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빈다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시민들은 각자의 사정에 맞는 저마다의 소원을 준비했다. 다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어려움이 빨리 극복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공통적이었다.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에서 만난 주희달씨(60대·가명)는 인도에 리어카를 옆에 둔 채 쭈구려 앉아 폐 전선을 분류하고 있었다. 그는 전선에 있는 구리가 단가가 좋아서 고물상에 가져가면 좋은 수익을 낼 수 있을 것 같다며 오늘은 운이 좋다고 했다.
소싯적 전기 공사 현장에서 일했던 주씨는 작업 현장에서 전신에 화상을 입는 사고를 당하면서 일을 그만두게 됐다. 그는 "그때 화상으로 체중이 3분의1이 날아갔다"며 일하던 손을 멈추고 팔토시를 걷어붙였다. 그가 보여준 얇은 팔에는 생선비늘 같은 화상 자국이 가득했다.

주씨는 처음에는 "아내도 죽고 자녀도 연락이 끊긴 지 오래라 빌고 싶은 소원이 없다"고 했지만 한참 작업에 몰두하다 소원을 말했다. 그는 "코로나가 빨리 없어져서 사람들하고 마스크를 벗고 대화할 수도 있고, 경기도 지금보다 좋아질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가족들 치료 안되는 병 걸려 걱정…건강했으면"
같은 날 만난 이도석씨(69·가명)는 그가 운영하는 인력사무소에서 왼쪽 눈을 안대로 가린 채 업무를 보고 있었다. 이씨는 최근 갑작스레 왼쪽 안구 안쪽 혈관이 터져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의사는 갑자기 화가 올라오거나 스트레스가 누적되면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사람들이 식당에서 밥도 안 먹고, 술도 집에서 마시니 소개할 일자리가 줄어들었다"며 "코로나 이후 평균 매출이 30%는 날아간 거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일이 지금처럼 계속 줄면 인력사무소의 세 곳 중 두 곳은 없어질 것 같다"며 "세 들어 사업하는 주변 사람들은 월세도 못 내고 보증금을 까먹고 있다"고 밝혔다.

이씨는 추석 소원으로 중국·일본 등 주변국들과의 관계 개선을 꼽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내국인들의 소비가 줄었는데, 해외 관광객들의 발걸음도 끊겨 내수 경기가 더 침체되는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한국과 중국, 한국과 일본 사이에 악화된 감정이 개선되면 한국을 찾는 발길도 같이 늘지 않겠냐는 것이다.

영등포역 인근에서 노점상을 하는 곽모씨(56)는 온 가족이 모인다는 추석이 오면서 가족 걱정이 늘었다고 했다. 그는 "우리 가족들 가운데 치료가 잘 안되는 병을 가져서 건강이 안 좋은 사람이 있다"며 "나도 나이가 들면서 젊을 때보다 몸이 안 좋아졌다"고 걱정했다.

그런 만큼 곽씨는 추석을 맞아 빌고 싶은 소원으로 가족의 건강을 1순위로 꼽았다. 그는 "면역력이 낮은 가족들이 코로나에 걸려 더 안 좋아질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한다"며 소원으로 가족의 건강과 코로나19 종식을 함께 꼽았다.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29일 서울 중구 명동 거리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자료사진) 2020.9.29/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29일 서울 중구 명동 거리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자료사진) 2020.9.29/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 "아기 데리고 동물원도 식물원도 가고 싶은데…"

생후 11개월된 아이 엄마 박소영씨(29·가명)도 코로나19 종식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여러 경험을 하는 게 아이의 성장과 발달에 중요한데, 바깥 외출을 삼가야 하는 상황 때문에 아무 경험도 주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박씨는 "아기를 동물원도 데려가고 싶고 양떼목장이나 수족관, 식물원도 데려가 여러 가지를 보여주고 뛰어놀게 하고 싶은데 그러기가 어려워 동네 주변만 산책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태어난 지 만 1년이 안 된 김씨의 아이는 태어나고 나서 대부분의 시간을 코로나19가 주는 답답한 환경과 함께 보낸 셈이 됐다.

박씨는 "아기가 처음에는 마스크를 잘 썼는데 이제는 갑갑하다고 느끼는지 안 쓰려고 해 바깥 외출을 더 못 한다"며 "아기한테 이런 저런 경험이 중요한 만큼 빨리 코로나19가 끝나서 아이가 여러 가지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취업준비생 이다희씨(27·가명)도 올 한 해 코로나19로 심적으로 고통을 겪었다.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불안감은 나날이 커지는데 기업들이 채용한다는 소식은 오히려 뜸해졌기 때문이다. 올 한해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많은 기업들이 공채를 잠정 중단한 바 있었다.

이씨는 "소원을 딱 하나 말하라고 하면 취업인데, 코로나가 없어지지 않으면 그 소원도 계속해서 더 멀어지기만 할 것 같다"며 "코로나가 빨리 사라져서 취업 지원과 준비 과정에 별 문제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 "코로나로 배달물량 폭증…업무량 줄었으면"

추석연휴를 하루 앞둔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센트럴시티 터미널에서 관계자들이 고속버스 택배물품을 옮기고 있다. 2020.9.29/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추석연휴를 하루 앞둔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센트럴시티 터미널에서 관계자들이 고속버스 택배물품을 옮기고 있다. 2020.9.29/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택배기사 김지환씨(42)는 "한시적으로 투입된 상하차 관련 인력들이 계속 남아 택배기사들이 과로사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부와 택배업계는 추석 성수기 동안 택배 분류작업에 인원을 추가 투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올해 코로나19가 확산된 이후 '언택트' 문화로 배송 물량이 폭증하면서 택배기사들의 업무량도 가중됐다. 기사가 과도한 업무량에 시달리다 피로가 누적돼 사망에 이르는 상황까지도 발생했다. 김씨는 "택배 요금도 안정화되면 작업량도 적정 수준으로 맞춰지고 기사들이 과로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라며 "관련 법과 제도가 빨리 개선됐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김씨는 과도한 업무량에서 해방되면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을 늘리고 싶다고 했다. 그는 "휴일이나 주말에는 쉬면서 가족하고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첫째가 중학생, 둘째와 막내가 초등학생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이 훌쩍 커버려 아쉽다"고 말했다.

배달 라이더로 일하는 김정환씨(42·가명)는 "코로나로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사람들의 고통이 더 커지는 것 같다"며 "이럴 때일수록 모두 건강을 잘 챙겨야 할 것 같다. 코로나에도 걸리지 않고 다른 병도 걸리지 않고 앞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096pages@news1.kr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