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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박스에 독감백신, 택배인 줄"...최대 400억 손실 책임

국가조달 무경험 신성약품, 무료접종 1259만명분 전량 수주
'냉장유지' 수칙 어긴 채 운송…의사커뮤니티 "황당한 일" 비난

(서울=뉴스1) 이영성 기자, 음상준 기자 | 2020-09-23 05:00 송고 | 2020-09-23 08:59 최종수정
지난 22일 오전 서울 송파구의 한 소아병원에서 간호사가 무료독감 일시중단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질병관리청은 지난 21일 오후 인플루엔자 백신 조달 계약 업체의 유통과정에서 문제점을 발견해 국가 인플루엔자 예방접종 사업을 일시 중단하고 유통 중 상온 노출로 인플루엔자 예방접종 사업이 중단된 것과 관련해 현재까지 접종된 사례 중에는 이상 반응 신고 사례가 없었다고 밝혔다. 2020.9.22/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지난 22일 오전 서울 송파구의 한 소아병원에서 간호사가 무료독감 일시중단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질병관리청은 지난 21일 오후 인플루엔자 백신 조달 계약 업체의 유통과정에서 문제점을 발견해 국가 인플루엔자 예방접종 사업을 일시 중단하고 유통 중 상온 노출로 인플루엔자 예방접종 사업이 중단된 것과 관련해 현재까지 접종된 사례 중에는 이상 반응 신고 사례가 없었다고 밝혔다. 2020.9.22/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운송과정 중 냉장온도를 유지하지 못한 독감(인플루엔자) 백신들이 신고되면서 정부가 지난 22일 전체 무료 접종을 일시 중단했다. 유통과정 문제로 자칫 입찰가 수백억원이 허공에 날아갈 상황에 놓인 가운데, 해당 유통 도매상의 책임 문제 여부가 부각되고 있다. 문제의 백신은 지난 22일부터 접종을 시작하기 위해 준비했던 13~18세 어린이 대상 물량에서 나왔다.

23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문제 백신 물량은 정부가 입찰로 확보한 1259만명분(도스) 중 22일 접종을 위해 풀린 500만도스 가운데 일부다. 백신이 의료기관에 공급되는 과정 중 냉장온도가 유지되지 않았던 것으로 정부는 파악했다. 정부는 일단 전체적인 품질검증을 위해 전체 접종 대상자에 대한 예방접종을 중단한 상태이다. 500만도스에 대한 품질검증을 진행할 계획으로, 만일 최악의 상황으로 전부 폐기처분해야 할 경우 무용지물이 되는 낙찰금 규모는 400억원대에 이른다.

정부가 밝힌 이번 백신 유통 업체는 신성약품이다. 국가 독감백신 무료접종사업의 유일한 유통 의약품도매상으로, 이번에 처음 백신 유통을 맡은 것으로 전해진다.

신성약품은 이달 초 질병관리청이 실시한 2020~2021 절기 독감 백신 국가조달 입찰에서 낙찰됐다. 낙찰 규모는 약 1259만명분(도스)으로 1도스당 8000~9000원, 총 1000억원대 수준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이번에 공급된 500만도스는 약 400억원 규모가 되는 것이다.

백신이 정상적으로 의료기관에 공급된다면, 독감백신을 접종한 의료기관은 정부에 해당 비용을 청구하고 그중 공급가를 백신 제조·생산 제약사에 준다.  

하지만 물량이 폐기될 경우엔 의료기관이 제약사에 폐기한 규모만큼 줄 돈이 사라지게 된다. 정부가 이를 보상한다면 건보재정이 쓰일 수밖에 없다. 정부는 조사를 통해 신성약품에 대한 약사법 위반 여부를 살피겠다는 방침이다.

문은희 식품의약품안전처 바이오의약품품질관리과 과장은 지난 22일 긴급브리핑에서 "의약품 도매업체가 준수해야 할 사안 중에는 의약품이 허가된 온도를 유지하도록 보관하고 운송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약사법 47조에 따르면 의약품 공급자는 의약품 등의 안전 및 품질 관련 유통관리에 책임이 따른다. 이를 위반할 시에는 1년 이하 징역,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백신을 공급한 제약사 입장은 더 강경하다. 이번 독감 백신 제조사들 중 한 관계자는 "해당 유통사의 문제가 확실시되고 일부 물량이 폐기된다면, 피해보상 요구 등을 진행할 계획"이라며 "이 과정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엔 법적 대응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질병관리청은 지난 22일 오전 브리핑을 통해 인플루엔자 백신 조달 계약 업체의 유통과정에서 문제점을 발견해 국가 인플루엔자 예방접종 사업을 일시 중단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22일 서울 송파구의 한 소아병원에서 본 독감 백신 앰플의 모습. 2020.9.22/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질병관리청은 지난 22일 오전 브리핑을 통해 인플루엔자 백신 조달 계약 업체의 유통과정에서 문제점을 발견해 국가 인플루엔자 예방접종 사업을 일시 중단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22일 서울 송파구의 한 소아병원에서 본 독감 백신 앰플의 모습. 2020.9.22/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의사들 사이에서는 백신이 의원으로 들어올 때 문제가 인지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지난 22일 온라인 의사 커뮤니티사이트인 닥터플라자(닥플) 게시판에서 한 의사는 "(독감백신이) 종이박스로 와서 좀 이상하긴 했네요"라며 "대부분 백신회사가 배송하면 물량이 많아 나눠주는데, 한꺼번에 660개가 그렇게 온 것 같다"고 게재했다.

다른 의사는 "어르신, 13~18세, 취약계층 전부 다 신성약품 배송이다"며 "이상하게 스티로폼 박스가 아니라 종이박스로 배송해서 이상하단 생각은 했지만 ㅠㅠ"라고 게시했다. 독감 백신은 섭씨 2~8도에서 보관돼야 하지만 상온인 10~20도에서 전달된 것이란 얘기가 된다.

또 다른 의사는 "백신 보관도 허름한 창고에서 종이박스에 넣어서 쌓아놓지 않았을까요"라며 "위생 더러운 음식점에 배달시켜먹은 기분이네"라고 힐난하기도 했다.

아울러 한 게시글은 "조무사들에게 물어봤는데, 무료 독감 백신이 점심시간에 와서 택배 마냥 그냥 데스크 위에 놔두고 갔다고 하고, 상자도 그냥 택배처럼 종이상자에 담겨져 있었다고 하네요"라며 "백신은 이런 식으로 배달되지 않으니까 처음에는 백신인지도 몰랐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배송 차량에 따라 어떤 곳은 종이박스, 어떤 곳은 아이스박스에 배송된 것 같다"는 증언도 나와 모든 배송 물량이 종이박스에 담긴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정부는 이번에 중단한 독감 백신 접종을 2주 안으로 재개할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 조달계약 물량 중 아직 유통되지 않은 물량을 먼저 공급해 접종을 시작한 뒤 이미 공급된 물량은 품질검사를 거쳐 접종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품질검사에는 2주 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아울러 의료기관이 자체 확보한 백신 물량은 먼저 접종하도록 검토 중이다.

정부는 올해 국민 약 2950만명(전 국민 57%) 대상의 독감백신 접종을 계획했다. 그중 1900만명은 무료 접종 대상이고, 나머지 1050만명은 민간 의료기관을 통한 유료 접종 대상이다.


ly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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