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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앞에 선 나경원 '4022자' 발언 <전문>…"모든 책임 제가 짊어지겠다"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2020-09-21 15:47 송고 | 2020-09-21 16:02 최종수정
20대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충돌 사태로 기소된 나경원 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원내대표가 21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News1 이광호 기자

나경원 전 자유한국당 (국민의힘 전신) 원내대표가 21일 판사앞에서 "모든 책임은 제가 짊어지겠다"며 다른 이의 선처를 호소했다.

제20대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충돌 사태와 관련해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나 전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10시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이환승)에 출석, "당시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공수처의 졸속 처리를 막기 위해 온몸을 던져야 했다"며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2019년 4월에 벌어진 모든 일들의 의사결정권은 바로 저에게 있었으며, 그로 인한 책임은 역시 모두 제게 있다"며 "짊어져야 할 짐이 있다면 그것은 저의 짐이며, 감수해야 할 고난 역시 저의 몫으로 동료 의원들에게 그 책임을 지우지 않아주시기를 간곡히 요청한다"고 했다.

다음은 나 전 원내대표가 이날 판사앞에서 한 발언 전문이다.

<저는 지난 12년 동안 과분하게도 국민의 직접적 선택을 받아 국민의 행복과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해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제가 이렇게 법정에 서게 된 것에 대해 마음 깊이 송구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또, 그 누구를 탓하기 이전에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서 오늘날 대한민국이 처한 위기와 혼란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는 말씀도 드립니다.

앞으로 오직 헌법 정신과 정의의 원칙에 입각해 저의 입장과 주장을 소상히 국민들께 알리겠습니다. 또 모든 재판 일정에 성실히 임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모두발언을 통해 몇 가지 중요한 본질과 진실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1.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존경하는 재판장님.

오늘 제가 서있는 이 법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법리를 다루게 될 것입니다.

국회법과 형법,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을 중심으로 치열한 공방과 증인 심문, 증거와 자료의 제출을 거치며 기나긴 재판 일정을 밟아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복잡한 재판의 일정 가운데 우리가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 더욱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고 공동체의 안정과 번영을 가능케 한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입니다. 바로 이곳 법정 역시 헌법의 정신을 딛고 세워져 있습니다.

헌법 제46조 2항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 헌법정신이 바로 국익의 요체이며, 또 국회의원이 지켜야 할 양심의 뿌리입니다.

우리는 이 신성한 법정에서 바로 헌법정신의 근본적 가치를 수호해야 합니다. 따라서 법을 적용하고 판결을 내리는 데 있어서도 헌법과의 충돌, 헌법 정신에 대한 훼손을 늘 경계하여야 합니다.

해방 이후 치열한 토론과 갈등 속에서 우리는 어렵사리 자유민주주의 헌법을 제창했고, 질곡의 역사를 거치며 마침내 1987년 오늘의 헌법을 마련하여 정치적 안정을 이룩하였습니다.

그 때 우리가 마련한 의회 민주주의와 삼권분립의 정신이 더 선명하게 빛날 수 있는 재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지난 20대 국회는 ‘의회독재’의 시대였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표해 법을 제정하고 대통령과 행정부를 견제해야 할 막중한 책무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 국회는 늘 다수결의 원리보다 합의의 정신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단 한 석이라도 더 많은 정당이 모든 것을 일방적으로 정하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2년 우리 국회는 현행 국회법,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이라는 것을 마련하였습니다. 당시 우리가 국회선진화법을 만든 기본 정신은, 소수에 대한 다수의 존중, 그리고 합의제를 바탕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성숙이었습니다.

이 재판에서 중점적으로 다룰 패스트 트랙 제도의 도입 역시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합니다.

330일이라는 충분한 숙의 기간을 규정한 것은 충분한 토론과 협의를 거치라는 입법 정신이 반영된 것입니다. 오늘의 제1야당이 과거 집권여당일 당시에 국회선진화법을 최소한의 범위에서 활용했던 것입니다.

특히 신속안건처리에는 모든 법안을 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대상은 사실상 제한돼 있습니다. 바로 북한인권법이 그 예입니다. 12년이나 잠들어 있던 북한인권법을 끝내 여야는 합의처리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20대 국회에서 국회선진화법은 철저히 집권여당의 ‘의회독재’의 수단을 전락해버렸습니다. 국회선진화법이 의회독재법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의원 개인의 양심과 의지를 짓밟고 이뤄진 불법 사보임이 무려 두 번이나 이뤄졌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잘 아시겠지만 국회의원은 1명, 1명이 곧 헌법기관이며 국민의 대표자입니다.

당론이란 이름으로, 진영의 이익의 논리로, 의원 스스로 원치 않는 사보임을 강제하는 것이 과연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당키나 한 일이겠습니까?

헌법재판소에서 끝내 5:4로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기각한 것은 매우 유감스럽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법으로 정해진 330일의 일정도 모두 무시해버리고, 소수당에게 주어진 긴급안건조정위원회 제도도 무시하고, 제1야당에게 주어진 필리버스터 권한마저 봉쇄하면서 오직 힘의 논리, 다수의 횡포로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이처럼 헌법 정신이 유린되는 비참한 현실 앞에 우리 제1야당은 저항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선택이 아닌 숙명이었습니다.

저희는 사실상 유일한 야당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집권여당과 다른 소수 야당은 ‘정권 운명체’로 결속돼 한 마음 한 뜻으로 움직였습니다.

소수 108석 야당인 우리가 저항하지 않았다면, 역사는 우리를 용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소수의 의견이 묵살되고 합의 정신이 후퇴하는 것을 방관하는 것은 스스로 국회의원의 직무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3. 정치의 사법화를 막고, 정치의 존재 의미를 지켜야 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민주화 이후 우리 대한민국은 나름의 확고한 의회 민주주의의 전통을 세워왔습니다.

입법부를 구성하는 규칙인 선거법은 늘 여야의 합의에 의해 원만히 처리해왔습니다. 권력기관과 사법질서를 다루는 중대한 법안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함께 고민하여 대안을 찾았습니다.

또, 국회에서 벌어진 일은 가급적 국회 차원에서 매듭지으려 했습니다. 기나긴 진통과 거친 갈등을 겪어도, 우리는 ‘정치적 해결’을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한 발짝, 한 발짝 전진해온 것입니다.

싸우는 국회, 동물 국회, 갈등 국회. 국민들께 더 품위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한 점은 저 역시 반성하고 또 반성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더 두려워해야 할 것은 보복과 처벌이 두려워 맞서지 않는 ‘침묵 국회’, 그 누구도 불의에 맞서지 않는 ‘식물 국회’, 그리고 적당히 권력을 나눠먹는 ‘담함 국회’입니다.

제가 이곳 법정에 서게 된 것은 송구한 일이나, 국회에서 벌어진 일이 법정에서 재판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해 저는 표현할 수 없는 참담함을 느낍니다.

제1야당의 정치적 저항권 행사를 법정에서 법리로 재단하여 형을 선고한다면, 과연 누가, 야당 의원으로서, 정권에 저항하고 불의를 지적할 수 있겠습니까?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수차례 강조하였습니다. 이것은 결코 사법적으로 풀 문제가 아니며, 가급적 상호 고발을 취하하고 국회선진화법에 있는 형사처벌 조항은 삭제하자고 했습니다.

지금 진행되는 이 재판 자체가 우리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듭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정치의 사법화’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정치는 정치의 몫으로 남겨주십시오. 그렇게 정치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4. 연동형 비례제와 공수처는 반드시 막아야 했고 그것이 옳았음은 이미 입증됐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와 우리 자유한국당이 당시 막으려 했던 것은 연동형 비례제와 공수처 설치법이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난해 말 두 법안은 제1야당과의 협의 없이 무단 처리됐습니다.

통과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현재, 이미 두 법이 악법이었음은 역사적으로 증명됐습니다.

저는 재작년 어느 한 해외매체를 통해 ‘신독재’라는 개념을 접하게 됐고, 대한민국도 결코 예외가 아니라는 깊은 우려를 갖게 됐습니다.

사법 질서를 무력화하기 위해 고안된 공수처법, 제1야당을 영원히 정치적 소수로 고립시키고 영원히 의회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마련된 연동형 비례제. 이 두 법이 바로 대한민국을 신독재로 이끄는 길이었던 것입니다.

준 연동형 비례제는 한마디로 근본도, 족보도 없는 정체불명의 선거제입니다.

게다가 4+1 야합세력은 의원수를 늘려보려다 돌아서는 민심 앞에 결국 포기하고 의원 정수를 고정시키는 장치를 마련했습니다. 그 결과 국민 1명의 1표 가치가 저마다 달라지는 위헌적인 현상이 빚어졌습니다.

내가 던지는 표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고, 누군가의 표는 다른 사람의 표의 두 배 가치가 되는 선거제. 만든 사람도 국민 앞에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선거제. 이런 선거제 처리를 어떻게 보고만 있을 수 있습니까?

지난 제21대 총선에서 벌어진 비례 위성정당 창당 경쟁의 촌극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준 연동형 비례제를 만든 집권여당이 스스로 위성정당을 만들어 선거제 취지를 무너뜨렸습니다. 한마디로 연동형 비례제는 창작자마저 내다버린 선거제인 것입니다.

지금의 국회를 보십시오. 상임위를 독식한 여당은 무소불위 권한을 휘두르며 사실상 국회를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야당은 설 자리도, 목소리를 낼 기회도 없습니다. 만약 준 연동형 비례제로 야당이 분열했다면 의회독재는 더 가속화됐을 것입니다.

공수처는 또 어떻습니까? 이미 검찰의 독립성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공수처가 출범했을 때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이제 우리는 충분히 앞날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제가 원내대표로 있을 때 저는 당시 여당에게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이 정권 임기의 종료와 함께 공수처를 출범시켜서 공수처가 대통령 직속 하명수사처로 오해받지 않도록 하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여당은 거절했습니다.

임기가 끝나기 최소 6개월 전에는 출범해야 한다며 사실상 공수처로 정권의 안위를 지키겠다는 그 잘못된 의도를 드러내버리고 말았습니다.

준 연동형 비례제와 공수처법은 이토록 위험하고 무서운 악법입니다. 우리는 이 두 악법이 민주주의를 희롱하고 헌법 가치를 훼손하는 것을 막아야 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온몸을 내던져서라도 악법을 막아야 했던 제1야당의 숙명을 헤아려주십시오.

5. 당시 원내대표인 제가 모든 것을 짊어지겠습니다.

저는 2018년 12월 자유한국당의 원내대표로 선출돼 1년 여 동안 제1야당 소속 의원들을 이끌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2019년 4월에 벌어진 모든 일들의 의사결정권은 바로 저에게 있었으며, 그로 인한 책임은 역시 모두 제게 있습니다.

짊어져야 할 짐이 있다면 그것은 저의 짐이며, 감수해야 할 고난 역시 저의 몫입니다. 동료 의원들에게 그 책임을 지우지 않아주시기를 간곡히 요청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최근 우리 대한민국은 참으로 안타까운 정치사를 경험해왔습니다.

3년 반 전, 국회는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표결하였습니다. 그 당시 새누리당의 일부가 탄핵에 찬성하기도 했습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추구했던 것은 바로 민주주의 정치의 진보였습니다.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결단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 출범한 문재인 정권은 더 무섭게 역주행하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을 위협하고 권력의 독점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많은 국민과 지식인들이 문재인 정권의 권위주의화를 우려합니다. 이제 그 잘못된 질주를 이 법정에서 막아야 합니다. 그 시작이, 바로 2019년 패스트 트랙 사태 당시 우리가 해야 했던 저항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부디 이 법정이 헌법 가치를 지켜내고 입법부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지키는 자유민주주의의 보루가 될 수 있도록 현명한 판단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buckba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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