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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우 人사이트] "도시락 점심에 용돈까지 받아가는 '우리 손님' 하루 200~300명"

17년째 노숙자 급식 '민들레 국수집' 서영남씨
20년전 내돈 300만원 털어 넣었더니 주변에서 도움의 손길

(서울=뉴스1) 이길우 객원대기자 | 2020-09-20 06:50 송고 | 2020-10-21 14:05 최종수정
노숙자들에게 지난 17년간 급식 봉사를 한 민들레 국수집 서영남 씨© 뉴스1 이길우 객원대기자

흰 봉투가 있다. 조심스레 봉투를 열어본다. 현금이 있다. 천원짜리 5장이다. 화색이 돈다. 도시락이 담긴 봉지는 푸짐하다. 컵라면도 있고, 빵도 있다.

인천 동구 화수동 달동네의 조그만 식당(민들레 국수집) 앞에는 요즘 오전 11시면 노숙자들이 찾아와 도시락을 받아 간다. 평소 노숙자들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던 식당이었는데,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해 도시락을 나눠준다. 나눠주는 도시락에 용돈까지 넣어주는 인심이 후한 이 식당의 주인장은 서영남(66·베드로)씨. 25년간 수도원에서 수사 생활을 하다가 환속했다. 그리고 17년간 이 자리에서 노숙자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봉사를 계속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식당을 찾아오는 노숙자들을 ‘우리 손님’이라고 불렀다. 

지난 16일, 도시락을 나눠주고 짬을 내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민들레 국수집 주인을 찾아갔다. 식당 안에는 컵라면과 생수, 과자 등 노숙자들에게 나눠줄 먹거리를 넣은 박스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노숙자들에게 도시락을 나눠주고 있나?”
-사스나 메르스가 유행할 때, 다른 노숙자 급식시설이 다 문 닫아도 민들레 국수집은 문을 안 닫았다. 이번에는 관(官)에서 닫으라고 했다. 닫으면 우리 손님들이 굶어야 한다. 그래서 지난 2월 중순부터 하루 250개 정도 도시락을 준비했다. 한번 도시락을 받으면 하루 종일 먹어야 하기에 도시락에 밥과 반찬, 컵라면, 과자, 빵 등 한 꾸러미를 싸야 한다. 노숙자들에게 식사를 주는 곳이 없어 굶는 노숙자들이 많다. 초보 노숙자들은 어디서 먹는지도 몰라 굶은 경우가 많다.


◇ 배고픔도 고통이지만 고독이 더 큰 아픔

“노숙자들은 배고픔 외에 어떤 어려움을 호소하나?”
-외로워 죽겠다고 한다. 가까이 오려는 이가 없고, 노숙자끼리도 말을 하려 하지 않는다. 온종일 이야기하지 못하는 노숙자들이 많다. 배고픔도 고통이지만 고독함도 그들에겐 더 큰 아픔이다.

“이곳에 오는 노숙자들은 어디서 오나?”
-보통 하루에 200~300명 정도 온다. 서울에서 오거나 인천 주변에서 온다. 전철이 통하는 먼곳에서도 온다. 1시간 정도 걸어서 오는 노숙자들도 많다.

“도시락에 흰 봉투가 있다. 뭐가 들었나?”
-현금 5000원을 넣었다. 그들에게 5000원은 적지 않은 돈이다. 그들에게 ‘어제 얼마 벌었나’고 물으면 대개 2000~3000원이다. 폐지 가격이 크게 떨어진 탓이다. 지금은 신문지 1㎏에 20~30원 받는다. 노숙하면서 열심히 폐지를 주어도 돈 벌기 어렵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번, 미리 예고하지 않고 도시락과 함께 용돈을 준다. 예고하면 그날 노숙자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매일 주고 싶지만 사정이 허락하지 않는다.

“앞으로 코로나 사태가 계속되면 노숙자들이 늘어날 것인가?”
-오늘 오전 식당 앞에 50대 남자가 몇 번을 들어오려고 망설이다가 힘겹게 식당에 들어왔다. 옷차림을 보니 오래된 노숙자는 아니었다. 며칠을 굶어, 하도 배고파서 소문을 듣고 멀리서 찾아왔다고 했다. 집은 경매에 넘어가 잠 잘 곳이 없어졌고, 돈 한푼 생길 길이 없었다고 했다. 코로나 전에는 구호 시설에 많았으나 이제는 노숙자들에게 도움 주는 곳이 드물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노숙자들이 많아질 텐데 걱정이다.

◇ 공기 잘통하는 야외에서 생활하는 노숙자 코로나엔 다소 안전

“노숙자들 가운데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나?”
-아직 노숙자 가운데 확진자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노숙자들은 코로나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우선 공기가 잘 통하는 야외에서 산다. 사람들과의 접촉이 적다. 돈이 없어 사람들이 많이 가는 식당이나 클럽 등을 안 간다. 종교단체에서도 전도하려고 접근하지 않는다. 워낙 가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아직 노숙자 가운데 코로나 확진자가 없는 것 같다. 정부가 노숙자들에 대한 코로나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어 불안하다.

“이 골목에 식당 말고도 노숙자들을 위한 시설이 뭐가 있나?”
-3평짜리 공간에 식탁 하나 놓고 민들레 국수집을 열었다. 처음엔 힘들었다가 5년이 지나니 제대로 운영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을 위한 민들레 꿈 공부방을 열었다. 아이 때부터 따뜻한 식사를 주고, 잘 돌보면 제대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다음엔 민들레 희망센타를 열었다. 노숙자들이 쉴 수 있고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다. 노숙자들은 마음만 먹으면 공부하기 편한 형편이 된다. 옛날 선비들처럼 돈 벌지 않고 공부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에 문을 열어 그들에게 샤워할 수 있고, 빨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노숙자들에게 냄새가 나지 않으면 다른 일을 찾아 할 수 있다. 옷을 기증받거나 새 옷을 싸게 사서 그들에게 제공하기도 했다.

노숙자들에게 따뜻한 시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서영남씨© 뉴스1 이길우 객원대기자

◇찜질 목욕탕 찾아다니며 '우리 손님' 받아달라 애원

“주변 찜질방과 목욕탕 티켓도 제공했다고 들었다.”
-아주 추울 때 ‘우리 손님’들을 받아달라고 찜질방과 목욕탕 사장님들께 사정을 했다. 그들에겐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고, 더운 곳에서 하룻밤 자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달 300~400장씩 티켓을 나눠주곤 했다. 그들이 노숙자 신세를 벗어나 보통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모르는 남을 돕기로 맘을 먹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마음만 먹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하루하루가 기적이라고 했다. 처음에 어떻게 시작했나?”
-이웃을 도울 때 남의 돈으로 돕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다 내놓고 시작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예수님이 5000명에게 먹을 것을 준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자. 한 소년이 하루 먹을 다섯개의 보리빵과 두 마리의 생선으로 5000명을 먹이는 기적을 행하셨다. 20년 전 300만원으로 시작했다. 내 전재산이었다. 사람들은 안다. 다 털어 내놓았는지, 아니면 숨기고 있는 것이 있는지…. 내 것을 다 털어놓고 남을 돕기 시작하니 다른 이들이 아낌없이 나를 돕기 시작했다. 한번도 이 식당에 쌀이 떨어진 일이 없다. 오히려 너무 많이 들어와 쌀을 썩히지 않고 보관하는 것이 고민이었다. 노숙자들에겐 풍부한 물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다. 여기 음식이 있으니 엣다 먹어라고 주는 것이 아니라, 국수 한 그릇이라고 따뜻한 마음으로 두 손으로 주는 것이 필요하다.

◇국수 한 그릇이라도 따뜻한 마음으로 주는 것이 중요

“민들레 국수집은 아침 일찍부터, 그리고 배식을 위해 줄을 세우지 않는다고 들었다.”
-처음엔 낮 12시부터 오후 5시까지 식당 문을 열었다. 그런데 오전 일찍부터 오는 손님들이 생겼다. 그래서 오전 10시부터 열었다. 그들을 기다리게 하면 안되기 때문이다. 10시 전에 오더라도 들어오라고 한다. 준비하는 상태에서 식사를 대접한다. 배식을 위해 줄을 세우면 통제하긴 쉬우나, 그들에게 인격적인 대우를 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줄을 서면 사나워진다. 새치기하는 이가 있으면 욕하고 싸운다. 힘 없고, 약하고, 어려운 이들을 먼저 도우면 사람들이 착해진다.

“민들레 국수집은 하루에 여러 번 와도 되나?”
-대부분 노숙자들을 위한 식당은 하루 한번 식사가 가능하다. 민들레 국수집은 여러번 오셔도 항상 따뜻하게 대접한다. 하루에 무려 다섯번 와서 식사하는 노숙자도 봤다. 오랫동안 제대로 먹지 못하면 깊이 허기가 진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다. 보름 정도 실컷 먹으면 그렇게 많이 먹지 않아도 된다.

“민들레 국수집은 큰 기업체로 부터 후원을 안 받고, 국가기관이나 공공단체로부터 후원을 안받고, 재단의 지원 프로그램에 공모하지 않는 3무(無) 원칙를 지킨다고 들었다.”
-사실 그동안 큰 독지가가 몇 번 나타났다. 재벌 회사 회장님이 오셔서 재단을 만들어준다고 제안도 했다. 거절했다. 회장님이 개인적으로 도움을 주시면 받을 수는 있다고 했다. 예수님이 가르쳤다. 내가 희생하고 아끼는 것으로 남을 도와야 한다고 했다. 남의 큰 도움을 받아 잘 도와주고, 많이 도와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배고픈 이들이 정말 필요한 것은 사람 대접이고, 따뜻한 마음이다. 나는 천주교 신자이고, 수도원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환속했다. 이 땅의 천주교 신자들은 힘들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남을 도왔다. 200여년 전, 천주교를 믿으면 목이 잘리는 박해를 받을 때 천주교 신자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산 속으로 피해 옹기를 구우며 살면서도 남을 도왔다. 박해받는 이들이 아낌없이 남을 도운 것이다.

민들레 국수집에서 노숙자들을 위해 마련한 도시락.용돈을 넣은 흰봉투도 보인다.© 뉴스1 서영남씨 제공

◇재벌 회장이 재단 만들어주겠다 했지만 거절

“그럼 개인적인 후원자들의 도움만으로 민들레 국수집을 운영하나?”
-1000명 남짓의 개인 후원자들이 한달 5000원에서 1만원 정도의 후원비를 꾸준히 내주신다. 이곳과 필리핀 민들레 센터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먹고살 수 있을 정도로 후원비가 들어온다. 신기하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어려워질수록 기탁하는 후원비와 물품은 많아진다. 서울 압구정동의 중국식당인 동천홍 사장님은 15년 전부터 매주 한번씩 짜장덮밥을 우리 손님들에게 대접한다. 자신이 타는 벤츠 승용차에 짜장을 담은 큰 솥을 싣고 와서 손수 짜장덮밥을 만들어 대접했다. 훌륭하신 분이다. 요즘은 코로나로 짜장덮밥 대접을 못하게 되니 반찬과 식재료를 제공한다. 정말 고마운 분이다.

그는 단순히 노숙자들에게 먹을 것만 주는 것이 아니라, 재활의 방법을 함께 찾았다. “노숙자들에게 독후감을 쓰게 하고 그것을 발표를 시켰다. 왜 그런 어려운 숙제를 주었나?”
-노숙자들은 말이 없다. 처음엔 함께 대화를 나눌 이가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말하는 것을 잊어버린다. 사회에서 점점 더 소외된다. 그들에게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고, 그것을 남들 앞에서 큰 소리로 읽게 했다. 그런 숙제를 하면 3000원을 주었다. 처음엔 벌벌 떨며 남들 앞에서 독후감을 읽어내리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며 익숙해졌다. 말하는 기술을 되찾고, 그것이 그들이 사회에 복귀하는 첫번째 수단이자 무기가 된 것이다.

“처음 민들레 국수집을 시작했을 때의 손님 가운데 아직도 오는 이가 있나?”
-1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손님인 노숙자가 몇 명 있다. 문 열고 온 첫 손님은 알콜중독자였다. 그는 알코올 중독을 벗어나려고 병원에 10차례 입원하기도 했다. 그가 정상인이 되리라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마침내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 정상인으로 살기 시작했다. 최근 만나니 3000만원 저금도 했고, 전셋집도 얻었다고 자랑했다. 보람을 느낀다. 

코로나 시대에 노숙자들에게 사회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서영남씨가 뉴스1과 인터뷰하고 있다.© 뉴스1 이길우 객원대기자

그는 최근 교정대상 자애상을 받으며 받은 상금 전액을 교도소 형제들에게 영치금으로 나눠주었다. 1인당 3만원씩 130명에게 영치금으로 준 것이다. 그는 법자(法子)로 불리는, 즉 아무 연고가 없고, 오로지 법무부와 관계가 있는 이들의 유일한 가족이기도 하다.

“교도소 봉사를 먼저 하지 않았나?”
-1981년 서대문 구치소에서 교정 사목을 시작했다. 40년째인 셈이다. 교도소 봉사가 본업이고 민들레 국수집은 부업인데 지금은 비중이 비슷하다. 한국 천주교를 시작한 성인들은 모두 교도소 출신이다. 천주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다. 감옥 안에서,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고, 포교를 했다. 예수님도 교도소 출신이다. 사형수 신분이었다.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 가운데 아무도 면회 오지 않고, 한푼도 영치금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10%에 이른다. 그들은 돈 한푼 없다. 1만원이 일반인들에겐 별것 아니지만, 감옥이 있는 이들에겐 큰돈이다. 한여름에 5000원을 벌기 위해 돈이 있는 죄수를 곁에서 밤새도록 부채질을 하기도 한다. 빨래를 대신 해준다. 한때 청송 교도소에 가면서 면회를 한 이들에게 영치금을 2만원씩 넣어주었다. 교도소 내에 소문이 나면서 단체로 개종 사태가 나기도 했다.

“어떤 방법으로 교도소 봉사를 하나?”
-한번 방문하면 15~20명씩 만나 식사도 함께하고, 기도도 함께한다. 1~2시간 그들과 시간을 보낸다. 그들이 교도소를 옮기면 옮긴 교도소를 찾아가 만난다. 그렇게 면회 가는 형제가 100여명이 된다. 토요일부터 수요일까지 민들레 식당을 운영하고, 목요일과 금요일은 전국 교도소를 다닌다. 지금은 딸(모니카)과 함께 다닌다. 청송교도소까지 가려면 오래 운전해야 한다. 딸이 나를 대신해 운전하기도 한다.

“필리핀 봉사는 어떻게 시작했나?”
-1988년에 처음 필리핀에 파견됐다. 그곳 아이들이 참 밝고 명랑했다. 2013년 포스코에서 주는 청암상 봉사상을 받으며 2억원의 상금을 받았다. 1억원의 한국의 민들레 국수집에 썼고, 1억원으로 필리핀 빈민가에 봉사를 시작했다. 공동묘지 낡은 교회 건물을 빌려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했다. 필리핀 말도 못하고, 영어도 능숙하지 못한데 그곳 아이들과 재미있게 살았다. 어려운 가정엔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기도 했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필리핀에 가지 못하고 있다. 

◇큰 훈장도 받으니 내가 잘난 줄 착각, 그래서 필리핀 봉사활동

“이런 봉사의 삶을 시작한 동기는?”
-25년간 수도원에서 평수사로 살다가 환속했다. 22살에 수도원에 들어가 45살에 세상으로 나왔다. 속세에서 예수님 흉내내며 살고 싶었다. 가난하게 사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 틈에서 사는 것이 멋지겠다고 생각을 했다. 가난하게 살면 사람이 착해진다. 그리고 겁이 없어진다. 한때 헷갈린 적이 있었다. 민들레 국수집이 커지고, 국가로부터 큰 훈장도 받으니 마치 내가 잘나서 그런 것이라는 착각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아내(베로니카)와 딸에게 한국의 민들레 국수집 운영을 맡기고 필리핀에 가서 봉사활동을 3년간 하고 왔다.

“딸은 어떻게 아버지를 돕기 시작했나?”
-딸은 2008년부터 아이들을 위한 민들레 꿈공부방을 맡아 봉사하기 시작했다. 당시 딸은 조그만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하루는 딸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 아까운 청춘을 월급 몇푼 받으려고 애쓰며 보내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딸은 며칠을 고민하더니 회사에 사표를 내고, 나를 돕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목욕시키고, 공부를 가르쳤다. 아내 역시 처음엔 따로 사업을 하며 돈벌이를 하다가 지금은 나를 전적으로 도와 함께 이곳을 운영하고 있다.


만들레 국수집 운영자 서영남씨. 간판의 글씨가 거의 보이지 않는 이유가 있다.© 뉴스1 이길우 객원대기자

민들레 국수집 간판은 거의 글자가 보이지 않는다. 오래된 탓일까? “간판이 너무 흐릿하다. 처음 보는 이들은 찾기 어려울 듯 하다.”
-처음 민들레 국수집을 시작할 때 재활용 간판을 사용했다. 마침 흰바탕의 간판이 있어서 간판집에 들고 가서 노란색으로 써달라고 했다. 흰바탕에 노랑글씨이니 당연히 잘 눈에 띄지 않는다. 간판 쓰는 이가 이런 간판은 처음 써본다고 했다. 잘 보이지 않게 쓴 것은 이곳을 찾는 이들의 자존심을 해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였다. 보통 자본주의의 간판은 조금 투자해서 많이 벌려고 눈에 잘 보이게 만든다. 나는 그런 세상이 아닌 세상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이 필요한가?”
-처음엔 요리학원을 다니며 요리의 기본을 배웠다. 잔치 국수는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민들레 국수집이라고 간판을 붙이고, 국수를 파는 것이 아니라 노숙자들에게 국수를 무료로 대접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국수는 큰 도움이 안됐다. 그래서 밥과 국물, 반찬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우리 손님이 70명까지는 나 혼자 음식 준비하고, 배식하고, 설거지가 가능했다. 그 이상이 되니 혼자는 도저히 못해서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지금은 민들레 식구들만의 힘으로 운영이 가능하다.

“어떤 마음으로 봉사를 해야 하나?”
-사랑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남을 사랑하려면 사랑을 받아봐야 한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우선 깨달아야 한다. 부모님으로부터, 형제로부터, 친구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을 느껴야 한다.

“이런 봉사의 삶을 산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어떤 반응을 보이셨나?”
-현재 어머니는 백 살이 넘으셨는데 정정하시다. 아버님은 내가 8살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어머님을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시다. 내가 수도원에 들어간다고 말씀드리니 좋다고 춤을 추셨다. 47살에 환속해선 실망드릴 것 같아 말씀도 못 드리고 숨어 지냈다. 나중에 만들레 국수집을 차렸다고 말씀드리니 오히려 다 자랑스럽다고 말씀하셨다. 

“노숙자들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이 어떠한가?”

-노숙자들은 범죄인들이 아니다. 그런데 노숙자들을 보는 시선이 너무 차갑다. 교도소에 있는 죄인들은 남에게 피해를 입힌 이들이다. 국가는 그들에게 세금으로 밥을 주고, 잘 자리를 제공한다. 노숙자들은 남에게 피해를 준 이들이 아니다. 그들은 사흘을 굶고도, 그냥 또 굶는다, 교도소에 있는 이들을 그 굶주림을 참지 못하고 남에게 피해를 준 이들이 대부분이다. 노숙자들에 대한 국가적, 사회적 관심이 너무 적다. 좋은 사회는 약하고, 힘든 이들을 귀한 존재로 대접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민들레 국수집에 쌓여 있는 노숙자들에 줄 먹거리들 © 뉴스1 이길우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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