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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문자가 두려웠다" 코로나 최전선의 그림자 '간호조무사'

환자가 짜증 내거나 방호복 착용 쉽게 생각하기도
의사 파업 보며 "간호조무사협회, 법정 단체도 아냐" 씁쓸

(서울=뉴스1) 최현만 기자 | 2020-09-19 09:01 송고
워킹스루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검체를 채취하고 있다./뉴스1 © News1 정진욱 기자
워킹스루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검체를 채취하고 있다./뉴스1 © News1 정진욱 기자

간호조무사 김윤씨(48·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선별진료소 근무가 있는 날이면 아침부터 물 한 모금 마시지 않는다. 방호복을 다시 입기 힘든 김씨가 화장실에 가지 않기 위해 터득한 '지혜'다.

검체 채취가 늦어지기라도 하면 민원이 들어오기 때문에 2시간 근무 중 쉬는 시간이라고는 없다. 그는 근무가 끝난 후에야 환기가 안 되는 방호복을 벗고 사우나에 다녀온 듯 불어난 손으로 물을 들이킨다.
김씨는 "코로나19 현장에서 일하는 간호조무사가 많은데 정부나 언론은 항상 의사와 간호사의 노고만 얘기한다"며 "지난 7개월간 누구보다 열심히 코로나19 현장에서 일해왔는데 아무도 간호조무사에 대해 얘기하지 않아 가끔 섭섭하고 회의감이 든다"고 고백했다.

19일 간호조무사들에 따르면 의사나 간호사뿐만 아니라 간호조무사도 코로나19 현장에서 일부 환자들의 짜증까지 견디며 방역 최전선을 지키고 있었다.

간호조무사들은 대한의사협회가 정부와 합의를 이끌어내는 모습을 보면서 아직 대한간호조무사협회(간무협)는 법정단체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씁쓸해했다.
이들은 간호조무사들이 전문성을 기를 수 있도록 대학에 간호조무사학과를 신설하고 코로나19 현장에 있는 의료진들에게 위험수당을 지급해줄 것을 요구했다.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방문객이 뜸해진 시간을 이용해 잠시 책상에 엎드려 휴식하고 있다./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방문객이 뜸해진 시간을 이용해 잠시 책상에 엎드려 휴식하고 있다./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일부 환자 화내기도 해…"재난문자 두렵다"

인천의료원에서 일하는 간호조무사 이삼순씨(58·여)는 코로나19 환자들이 치료를 받는 음압병동에서 81일간 근무했다. 그 역시 음압병동에서 일하면서 느낀 고충이 있었다.

그는 "음압병동에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만 근무하기 때문에 청소 여사님이나 병동 도우미들이 하는 일까지 도맡아 해야 한다"며 "간호조무사들이 방호복을 입는 것을 환자들이 쉽게 생각할 때는 서럽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에는 확진자 중에 교회 교인들이 많고 교회 지인들이 가져다주는 물건이나 음식이 많아 의료격리폐기물통이 많이 나온다더라"고 덧붙였다.

김씨는 "워킹스루 선별진료소 근처 화장실이 병원 화장실보다는 열악할 수밖에 없는데 환자분이 화장실이 안 좋다고 저희한테 화를 낼 때 씁쓸했다"며 "검사를 받으러 오신 분들이 계속 마스크를 벗고 얘기해 벗지 않도록 지도하느라 지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8월 중순부터 확진자가 많아지면서 재난 문자가 오면 또 무슨 일이 생겼나 겁부터 난다"고 전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오른쪽)과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이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집단휴진을 중단하고 의대정원 확대 등의 의료정책을 협의하는 의정협의체를 구성하는 내용의 합의문에 서명한 후 합의문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오른쪽)과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이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집단휴진을 중단하고 의대정원 확대 등의 의료정책을 협의하는 의정협의체를 구성하는 내용의 합의문에 서명한 후 합의문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의사 파업 보며 "간호조무사협회는 법정 단체도 아냐…." 씁쓸

김씨는 의사 파업 당시 대한의사협회가 나서 정부와 합의를 이끌어내는 모습을 보고 부러운 감정도 들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간호조무사들은 처우 개선에 앞서 간무협을 법정단체로라도 인정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했으나 이조차도 좌절됐기 때문이다.

1973년에 창립된 간무협은 법정단체로 인정받지 못해 민법상 사단법인으로 머물러 있는 상태다. 2019년 2월 최도자 바른미래당 의원이 간무협을 법정단체로 승격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결국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심의에서 발목이 잡혀 국회 통과가 무산됐다.

이후 2019년 11월 간호조무사 1만여 명이 국회 앞에서 집회를 하며 간무협을 법정단체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재 대한의사협회와 대한간호협회는 모두 법정단체로 인정받고 있다.

김씨는 "역사가 이렇게 긴데도 법정 단체로 인정을 받지 못 하는 단체는 간무협밖에 없을 것"이라며 "국회 앞에서 1만 명이 모여도 정부는 꿈쩍도 안하더라"고 말했다.

처우 개선도 멀게 느껴지고 코로나19로 몸도 힘들지만 김씨와 이씨는 그래도 간호조무사가 된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이씨는 환자가 의료진들에게 감사하다고 편지를 써줄 때 보람을 느낀다며 다만 나이가 많아 더 공부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고 했다.

김씨는 환자들이 찾아와 고맙다고 인사 한마디 건네주면 피로가 가시고 직업에 자부심도 느낀다며 자식들한테 멋진 엄마로 살아가고 있다고 웃어 보였다.

다만 이들이 바라는 건 간무협이 법정단체로 인정받아 간호조무사들의 열악한 처우가 개선되고 코로나19 의료진들이 위험수당을 받는 것이다.

이씨는 "일부 병원에서는 최저임금도 못 받고 일하는 간호조무사가 많다고 알고 있다"며 "간무협이 법정단체로 인정받아 열악한 환경이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김씨는 "일을 잘하는 동료가 간호대학을 못 나와 한정된 일밖에 못 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팠다"며 "대학에 간호조무사 학과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 현장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진료하는 의료진들이 위험수당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chm6462@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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