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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라면 형제' 사고 누굴 탓하랴…법도 사회도 방임했다

(인천=뉴스1) 박아론 기자 | 2020-09-18 15:17 송고 | 2020-09-18 16:13 최종수정
지난 14일 오전 11시16분께 인천시 미추홀구의 한 빌라 건물 2층 A군(10) 거주지에서 불이 나 A군과 동생 B군(8)이 중상을 입었다. 사고는 어머니가 집을 비운 사이 형제가 단둘이 라면을 끓여먹으려다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인천 미추홀소방서 제공)2020.9.16/뉴스1 © News1 박아론 기자
지난 14일 오전 11시16분께 인천시 미추홀구의 한 빌라 건물 2층 A군(10) 거주지에서 불이 나 A군과 동생 B군(8)이 중상을 입었다. 사고는 어머니가 집을 비운 사이 형제가 단둘이 라면을 끓여먹으려다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인천 미추홀소방서 제공)2020.9.16/뉴스1 © News1 박아론 기자

"살려주세요."

지난 14일 오전 11시16분께 인천소방본부 119상황실로 어린아이들이 다급하게 구조요청을 하는 신고가 접수됐다. 삽시간에 집안 전체로 번지는 불길에 대처하기에는 너무 어린 두 아이들은 자신들의 정확한 위치도 밝히지 못한 채 "살려주세요"라는 말만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소방은 위치추적장치를 이용해 불이 난 두 아이의 집을 확인하고 현장에 도착했지만, 이미 매캐한 연기와 불길이 두 아이를 덮친 뒤였다.

10살에 불과한 작은 몸집의 형은 더 작은 동생을 감싸 안았다. 불길이 벽을 타고 천장으로 치솟자, 형은 동생을 가장 불길이 미치지 않는 책상 아래 공간에 두고 이불을 덮었다. 형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발견 당시 형은 침대에 쓰러진 채였다.

형은 전신에 40% 화상을, 동생은 전신에 5%가량 화상을 입었다. 형은 18일 현재까지 중환자실에서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동생은 형의 대처 덕에 다행히 전날 저녁 의식을 회복한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형제는 홀어머니 슬하의 한부모가정 자녀들로 확인됐다. 사고 전날 밤부터 어머니가 집을 비운 사이 단둘이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 일어난 일이다.
형제는 이미 아동보호기관과 경찰 등에 수차례 어머니의 방임과 학대로 신고가 접수돼 보호가 필요한 상태였다. 어머니는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돼 지난 8월말 검찰에 넘겨졌다. 이후 아동보호기관은 가정법원에 어머니와의 격리 필요성이 있다고 보고 보호명령 청구를 했다. 법원은 격리 조치 없이 상담위탁 판결을 내렸다.

형제는 결국 다시 울타리 없는 가정에서 방치됐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이기도 했던 형제는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을 돌보는 드림스타트 지원을 받았으나, 어머니의 허락 없이는 형제가 받을 수 있는 혜택은 없었다. 형제는 '가정보육'을 고집하는 어머니 탓에 단 한번도 유치원 등 보육시설을 다닌 적이 없었다고 한다.

초등학생인 형제는 어머니가 없어도 학교에서 점심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되면서 그마저도 여의치 않게 됐다.

형제는 복지카드를 들고 편의점을 다녔다. 주민들은 형제를 자주 목격했으나, 학대를 의심해 말을 건넬 때마다 형제는 주민들을 피했다고 한다.

형제의 어머니는 사고가 나기 바로 전날 저녁부터 집을 비운 것으로 알려졌다. 어머니는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자활근로를 해왔는데, 최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일이 끊겼다"면서 "친구가 박스 붙이는 일을 하는데, (돈을 벌고자) 그 일을 도와주러 전날 저녁부터 집을 비웠다"고 조사기관에 진술했다고 한다.

이번 사고 역시 이미 수차례 예견된 징후들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가정은 두 아이를 지킬 울타리가 돼야 했지만, 형제에게는 단둘이 라면을 끓여 먹을 수밖에 없는 어머니의 방임을 감추는 공간이었다. 법은 어머니의 방임에서 형제를 지킬 수 없었다. 기초생활수급자이자 한부모가정 자녀들로 여러 복지혜택을 받고 있는 자녀들이었지만, 사회도 어린 형제의 허기짐을 채우고 안전을 담보할 수도 없었다. 결국 우리 모두가 이들 형제를 방치한 것이다.

복지사각은 매번 크나큰 사고 후에야 드러나고 그때마다 정치권에서는 사각지대를 메우겠다고 되풀이하고 있다. 이번엔 좀 제대로 대책을 세웠으면 한다.

박아론 기자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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