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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확장] 생산을 품은 북한의 도시

코로나19 사태 계기로 주목받은 '도시 생산'의 개념
북한 도시의 특성, 오히려 21세기에 유효할 수도

(서울=뉴스1) 임동우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프라우드 건축사무소 공동 소장 | 2020-09-19 08:00 송고
편집자주 [시선의 확장]은 흔히 '북한 업계'에서 잘 다루지 않는 북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그간 주목받지 못한 북한의 과학, 건축, 산업 디자인 관련 흥미로운 관점을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임동우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 뉴스1
임동우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 뉴스1
최근 들어 우리 도시에서도 '도심 제조업', '도시 농업', '도시 생산' 등 도시 내에서의 생산품과 생산시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도시 내 제조업이 더 주목을 받기도 한다.

코로나19 대유행이 한풀 꺾이던 지난 4월,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SNS를 통해 본인도 한 때 공장과 창고가 거주지와 너무 가까이 있어 눈살을 찌푸렸으나 이번 사태를 겪으며 어떻게든 국내에 뿌리를 내리고 사업을 영위해 온 수십만 제조회사와 종사자들이 코로나19 사태를 진정시켜준 숨은 영웅이라는 내용의 글을 게재했다. 실제로 한 때 마스크 대란이 나기는 했었으나 금방 진정됐고 이제 바이러스 시대의 필수품이 되어버린 마스크나 손세정제를 구하는 것에 전혀 어려움이 없다.
우리에게 당연한 것이 다른 나라, 소위 선진국에서도 당연시될까? 전혀 그렇지 않다. 곳곳에 비치돼 있는 손세정제를 보며 미국에 있는 친구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대유행 초기에 미국에서는 쉽게 구하지 못하는 것들이 한국에서는 쉽게 보급된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이는 마스크와 바이러스 테스트 키트 역시 마찬가지다. 국내의 제조사들이 충분히 계획을 갖고 공급해주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는 큰 어려움 없이 이 난국을 잘 헤쳐나가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제조업 시설들은 도시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던 시설들이다. 비호감 시설이라는 인식이 컸기 때문이다. 소음이 발생되고 때로는 악취가 풍길 수도 있는 시설들이었다. 도시는 점차 소비자들의 도시가 되어갔고 생산자들을 위한 도시로 남지는 않았다.

도시 거주자는 3차 산업 등에 종사하며 이를 통한 경제 소득으로 1차, 2차 산업에서 생산되는 물품을 소비한다. 더 이상 도시 내에서 1, 2차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마주치기 힘든 이유다. 바로 이 지점이 사회주의 도시에서 우려하던 지점이었다. 
생산 노동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주의의 입장에서, 도시가 소비자 중심으로 변하고 생산 노동자들은 도시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 사회주의의 이념을 지탱해줄 지지기반이 밀려나는 것과 같다. 때문에 사회주의 도시에서는 도시 내 생산시설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가치관이었고, 중국의 정신적 지주라고 하는 모택동 역시 중국의 도시는 소비의 도시가 아니라 생산의 도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소개한 강원도의 '자력갱생 전시관' 모습. 원산 구두공장에서 생산된 제품들이 소개돼 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소개한 강원도의 '자력갱생 전시관' 모습. 원산 구두공장에서 생산된 제품들이 소개돼 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북한의 도시 역시 마찬가지다. 북한의 도시는 소비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생산을 위한 공간이어야만 했다. 예를 들어 신발공장은 서울에 있을 이유가 없는 시설이다. 신발을 대량 생산하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공장이 필요하고 지가가 높은 서울은 이러한 대규모 공장을 두기에 적합하지 않다. 그리고 수출을 고려한다면 이들 생산품이 부산항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물류비용 마저 증가한다. 때문에 서울에서는 더 이상 신발공장을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북한의 도시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대량생산을 통한 산업의 경쟁력 강화가 목표가 아닌 북한에서는 효율성을 위해 신발공장을 통폐합할 이유가 없다. 각 도시에 그 지역에서 소비할 신발을 생산할 적절한 크기의 공장만 필요할 뿐이다.

때문에 도시에도 신발공장이 존재하며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한 명의 도시민으로 존재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시스템은 비효율적인 산업 시스템을 만들었다. 신발공장이 평양에도 있고, 원산에도 있고, 신의주에도 있게 됨으로써 대량생산을 통한 생산 원가 감소가 될 수가 없고 물류의 통합을 통한 소비가의 절감도 기대할 수 없다.

북한의 경제는 이러한 비합리성 때문에 대량생산을 통한 경쟁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산업을 발전시킨 한국은 이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다.

비록 산업의 경쟁력은 떨어졌지만, 사회주의식 생산시스템이 갖는 장점도 분명히 있다. 이른바 지역생산·지역소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역 내에서 제품들이 생산되고 소비되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도시에 비해 훨씬 자생력을 갖춘 도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도시나 외국에서 수입되는 것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인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진다면 그야말로 순환경제가 이루어지는 셈이다. 일본의 북한 경제 전문가인 미츠히로 미무라는 북한이 경제제재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살아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사회주의 협동조합이라는 자신들만의 시장경제 시스템을 도입하고 그 안에서 순환경제가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물론 북한이 순환경제를 목표로 생산시설을 도시에 품은 것은 아닐 것이다. 모두가 기본적으로 노동을 해야 하고, 특히 생산노동이 중요한 북한에서 생산공장을 각 도시, 국토 전반에 걸쳐 고르게 분포시킨다는 것은 가장 사회주의적인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평양에도 비교적 중심부에 고무공장, 제약공장, 구두공장 등이 자리 잡은 것이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의 낙랑옷공장 내부 모습.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의 낙랑옷공장 내부 모습.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때문에 '조선건축'과 같은 북한의 건축 잡지를 보면 심심치 않게 공장의 건축을 소개하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굳이 공장 건축이 대단할 것이 없다. 공장이 카페로 바뀐 사례는 소개되겠지만 공장 자체가 소개되는 일은 매우 드물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생산시설이라고 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이들을 건축 전문 잡지에서도 종종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북한 지도자들의 현지지도에서도 잘 나타난다. 지난 4~5월 20여 일간 두문불출하여 사망설까지 나왔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오랜만에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을 통해 공식일정을 소화한 적이 있었다. 당시 김 위원장의 등장 때문에 한국에서는 비료공장에 포커스가 맞춰지진 않았지만, 이와 같은 공장의 준공은 여전히 북한 사회에서 중요하게 인식되곤 한다.

이제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됐다고 한다. 21세기의 산업도 여전히 대량생산을 통한 경쟁일까? 많은 전문가들은 대량생산의 시대는 끝났다고 한다. 오히려 소비자들의 구미에 맞게 소량생산, 대량 커스터마이징으로 전환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대량생산을 위해 필요했던 공단 규모의 공장들은 점차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는 로봇과 AI기술의 발달로 가속될 것이다. 이미 독일의 아디다스는 해외의 많은 공장들을 철수시키고 자국에 다시 무인화 시설을 들인 공장을 지었다. 독일에서 빠져나간 생산시설을 수십 년 만에 회기 시킨 것이다. 기술의 발달 덕분에 더 이상 공장이 소음과 분진을 내는 비호감 시설이 아닐뿐더러, 값싼 노동력을 찾아 이전해야 하는 요인도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도시는 비록 20세기 자본의 경쟁에서는 도태됐지만 그들이 갖고 있었던 개념, 즉 생산을 품은 도시의 개념은 오히려 21세기에 유효할는지 모른다. 지난 세기에는 그 개념이 현실화되기에는 많은 제약과 부작용이 있었지만 현재는 새로운 기술과 플랫폼으로 가능해졌다. 20세기에는 신발공장이 여러 도시에 있는 것이 이상했지만 이제는 도시 곳곳에 존재할 수도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자본주의 도시냐, 사회주의 도시냐 하는 이념의 잣대로 도시를 바라볼 수 없다. 세상이 변했고 기술은 발달하고 있으며,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우리의 도시에서 새로운 방식의 생산시설과 제조업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도시, 혹은 사회주의 도시에서 어떻게 생산을 품었는가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seojiba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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