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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100℃] 북한에도 '매운맛 열풍'이 불고 있다?

담백한 음식에도 양념 가미되는 북한 음식 문화의 변화
라면 대중화도 눈길…남측과 비슷한 제품도 등장

(서울=뉴스1) 김정근 기자 | 2020-09-19 10:00 송고 | 2020-10-15 09:26 최종수정
편집자주 [북한 100℃]는 대중문화·스포츠·과학·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북한과의 접점을 찾는 코너입니다. 뉴스1 북한팀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관심사와 관점을 가감 없이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북한 선전 유튜브 'Echo of Truth'가 소개한 대동강수산물식당의 '대동강 숭어국'. ('Echo of Truth' 갈무리)© 뉴스1
북한 선전 유튜브 'Echo of Truth'가 소개한 대동강수산물식당의 '대동강 숭어국'. ('Echo of Truth' 갈무리)© 뉴스1

◇빨개지는 북한 요리…입맛 따라 먹는 매콤한 평양냉면

북한의 음식이 점점 빨개지고 있다. 지난 5월 북한 선전 유튜브 'Echo of Truth'가 소개한 '대동강 숭어국'은 빨간 국물에 두툼한 숭어 토막이 들어 있는 모습이었다.

2018년 서울과 평양의 음식을 다룬 JTBC의 '서울 평양, 두 도시 이야기'에 등장한 '청류관'에서도 대동강 숭어국에 빨간 양념장을 한 움큼 넣고 있었다. 맛을 본 오은정 북한 문화해설사는 "굉장히 고소하고 구수한 맛이 난다"라고 언급했다.

사실 대동강 숭어국은 맑은 국물이 특징이며 담백한 맛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숭어의 비린 맛을 통후추와 고추 등만을 사용해 잡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데 된장과 고추장을 섞어 만든 양념장을 넣다 보니 그 맛과 빛깔이 조금 달라진 듯하다.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평양을 찾았던 윤숙자 한국전통음식연구소장은 "제가 먹고 온 대동강 숭어국은 담백하게 맑게 끓이는 것이었다"라며 "(지금은) 얼큰하게 매운탕으로 변했다"라고 언급했다.

이어 "평양 분들이 매콤하고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는 추세로 흐르지 않나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평양의 매운맛은 다른 음식들에서도 나타난다. 평양의 4대 진미로 불리는 '평양온반'과 '고기쟁반국수'를 내올 때도 빨간 양념장을 함께 제공한다. 특히 심심하게 먹어야 제맛이라고 알려진 평양냉면에도 매운 양념장이 들어간다는 것이 알려지며 화제가 된 바 있다.

평양 옥류관에서 옥류관 직원이 평양냉면 먹는 법을 보여주고 있다. 2018.9.19/뉴스1 © News1 평양사진공동취재단

2018년 4월 평양 방문 공연에 나선 남측 예술단에게 '옥류관' 종업원은 평양냉면에 양념장을 넣을 것을 권했다. 평양냉면에는 식초와 겨자를 포함한 어떤 양념장도 넣지 말아야 한다는 남측의 속설이 깨진 것이다.

종업원은 육수에서 면만을 건져내 면에 식초를 살짝 둘렀고 "국수에 기본적으로 따라나서는 것이 겨자"라며 겨자도 조금 넣었다. 또 "매운 것을 좋아하냐"라고 물으며 기호에 따라 양념장을 곁들일 것을 추천했다.

3년 전 남한에 정착해 서울 서초구에서 평양냉면집 '설눈'을 운영하는 평양 출신 문연희씨는 냉면에 들어가는 양념장을 두고 "2000년도쯤부터 양념장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라며 "다만 모든 식당이 (냉면에) 양념장을 넣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옥류관처럼 양념장을 종지에 따로 내놓는 식당도 있지만 애초에 냉면 위에 양념장을 얹어서 제공하는 식당도 있다고 한다. 또 양념장을 아예 주지 않는 곳도 존재한다. 평양냉면은 만드는 방식이 하나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 기호에 맞게 다양하게 즐긴다는 것이 문씨의 설명이다.

양념장의 배경에 대해서는 "90년대 인조고기밥을 양념장에 찍어 먹기 시작했는데 이후 냉면에도 넣어 먹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라며 "한국과 중국에서 매운 음식이 인기이듯이 북한에서도 매콤한 음식을 좋아하게 되면서 점점 퍼진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도 처음에는 손님들에게 양념장을 내놨는데 대부분 남기더라"라며 "(남한) 사람들이 슴슴한 맛에 이미 적응돼 있어서 그런 것 같다"라고 웃음을 지었다.

북한 선전 유튜브 'Echo of Truth'가 소개한 '김치맛 즉석국수'. ('Echo of Truth' 갈무리) © 뉴스1
북한 선전 유튜브 'Echo of Truth'가 소개한 '김치맛 즉석국수'. ('Echo of Truth' 갈무리) © 뉴스1

◇직장인들에 인기 있는 라면…'매운맛 열풍'의 주범?

북한 음식의 간이 세지게 된 배경에는 라면의 대중화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북한에서는 '즉석국수'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종류의 라면을 팔고 있다.

지난 3월 북한 선전 유튜브 'Echo of Truth' 속 여성 리포터는 자신이 즐겨 간다는 평양 서성구역의 '장경식료품상점'을 찾았다. 라면 매대에 도착한 그는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한테는 뭐니 뭐니 해도 즉석국수가 인기가 있다"라며 자신이 즐겨 먹는다는 '김치 맛 즉석국수'를 집어 들었다.

북한에 라면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다. 중국과 개성공단을 통해 라면이 본격 유입되자 평양에서만 볼 수 있던 라면이 각지 장마당에서도 찾을 수 있게 됐다.

라면의 인기가 높아지자 북한은 2015년부터 "우리 기술과 원료에 의거한 질 좋은 새 제품 개발에 힘을 넣어야 한다"라며 라면의 국산화를 장려하기 시작했다. 이후 소고기맛·짜장맛·해물맛 등 다양한 북한 라면이 꾸준히 출시되고 있다.

최근에는 경흥은하수식품공장에서 제조된 '매운닭고기 맛 짜장면'이라는 라면이 유튜브를 통해 조명받고 있다. 포장지부터 한국의 '불닭볶음면'과 유사한 이 라면은 맵기 역시 밀리지 않는다. 해당 라면을 먹은 유튜버들은 "불닭볶음면보다 매운 것 같다"라며 열띤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이 제품은 지난 2019년 12월 평양1백화점에서 열린 제30차 전국인민소비품전시회에 소개된 바 있다. 북한 선전매체 '통일의 메아리'는 "손님들의 수요가 제일 높은 것은 치즈과자와 검은참깨과자, 매운닭고기 맛 짜장면이었다"라며 매운맛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반응을 전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도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맵고 자극적인 라면이 등장하듯 북한에서도 이와 비슷한 추세를 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우리도 처음부터 음식을 맵게 먹던 것은 아니었다. 1986년 첫 출시 때만 하더라도 남한의 '신라면'은 매울 신(辛)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아주 매운 라면에 속했다. 하지만 요즘엔 그 이름이 조금은 머쓱할 듯하다. 시판되는 라면 중 매운맛으론 열 손가락 안에도 못 들기 때문이다.

신라면의 맵기는 그대로지만 훨씬 매운 라면들이 시장에 쏟아졌다. 2012년 매운맛 열풍 속 등장한 불닭볶음면 시리즈와 '틈새라면', '열라면' 등에 밀려 신라면은 이제 보통의 라면으로 인식되는 정도다.

이러한 매운맛 열풍에 힘입어 남한에서는 몇 년 전부터 입안이 얼얼할 정도로 매운 중국의 '마라탕'과 '훠궈'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또 기존 맵지 않았던 음식의 '매운맛 버전'들도 대거 출시되고 있다.

과거 담백하게 먹던 음식에 매콤한 양념장을 추가하고, 극히 강한 매운맛의 라면을 찾기 시작한 북한에서도 남한의 매운맛 열풍이 불게 된 것으로 보인다.


carro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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