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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쿨파] 미국이 만든 WTO에서 미국이 버림받았다

(서울=뉴스1) 박형기 기자 | 2020-09-16 06:40 송고 | 2020-09-16 09:34 최종수정
WTO 로고. © AFP=뉴스1

세계무역기구(WTO)가 중국산 제품에 대한 미국 정부의 수입관세 부과를 무역규칙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미중 무역전쟁에서 사실상 중국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WTO 분쟁해결기구(DSB) 전문가 패널은 15일(현지시간) 미 정부가 중국산 수입품에 부과하고 있는 추가 관세에 대해 국제무역규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미국이 의무에 부합하는 조치를 취하도록 권고한다"고 판결했다.

WTO의 이번 판단은 미 정부가 지난 2018년 2500억달러(약 295조원)의 중국산 수입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한 것에 대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로이터=뉴스1 © News1 자료  사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당시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와 기술이전 강제 등 불공정 무역관행을 이유로 자국 무역법 제301조에 따른 추가 관세 조치를 취했고, 중국 정부는 "미국의 조치는 WTO 회원국들에 대한 최혜국 대우 조항 위반"이라며 WTO에 제소했다.

특히 중국은 당시 미 정부가 관세 인상 조치에 앞서 WTO가 정한 분쟁해결 절차를 거치지 않은 점을 부각시켰다. DSB 패널도 이 같은 중국의 주장을 받아들여 "미 정부가 무역법 301조 발동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미국의 블룸버그통신은 WTO의 이번 판결에 대해 “중국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미 정부는 이번 판결과 관련해 60일 이내에 항소할 수 있다. 미국이 항소하면 이 사건은 WTO에서 최종심을 맡는 상소기구로 올라간다.

그러나 WTO 상소기구는 미국의 비협조로 위원 선임이 지연돼 기능이 정지된 상태다. 따라서 미국이 항소하더라도 후속 절차가 진행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WTO가 국제기구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 우선주의를 내걸며 보호무역을 강화함에 따라 자유무역을 기치로 내건 WTO의 존립자체를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사무총장이 임기를 1년 남겨두고 돌연 사임을 발표할 정도다. 지난 5월 14일 호베르토 아제베도(62) 사무총장은 전격 사퇴했다. 이후 유명희 한국 통상교섭본부장 등이 WTO 사무총장에 출마해 경선을 벌이고 있다.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호베르토 아제베도 WTO 사무총장. (산업통상자원부 제공)2020.1.23/뉴스1

브라질 출신인 아제베도 사무총장은 지난 2013년부터 WTO 6대 사무총장을 지냈으며 연임을 거쳐 내년 8월 임기를 마칠 예정이었다.

그는 미국의 WTO 홀대를 염두에 둔 듯 "WTO가 완벽하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무역에 관한 한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었다"는 말을 남기고 WTO를 떠났다.

특히 미국은 국제 무역분쟁에 대해 최종적으로 판결하는 WTO 상소기구 위원 임명을 지난 2년간 거부함으로써 지난해 말 이 기구의 기능을 정지시켰다.

7명이 정원인 WTO 상소위원은 그간 164개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선임됐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WTO의 미중 무역 판결이 미국의 이익을 침해한다며 임명에 동의하길 거부해왔다. 이에 따라 그간 최소인원인 3명이 최종심리를 해오다 지난해 12월 2명의 임기마저 끝나 그 기능이 완전히 정지된 상태다.

WTO의 분쟁조정 기능이 마비된 것이다. 그동안 WTO는 국제무역에서 사법부의 역할을 맡아 무역 분쟁에 대한 판결권과 집행권을 갖고 국가간 발생하는 무역마찰과 분쟁을 조정해 왔다.

WTO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인 가트(GATT) 체제를 대신해 국제 무역질서를 바로 세우고 우루과이라운드(UR) 협정의 이행을 감시하는 국제기구로 지난 1995년 출범했다. 이후 다자간 무역협상과 국가간 무역분쟁 해결을 도왔다.

물론 미국이 출범을 주도했다. 그런데 미국이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자유무역 질서를 침해함으로써 미국이 주도한 기구에서 미국이 버림받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WTO 핵심 기능이 정지된 상태이기 때문에 이번 조치로 미국이 당장 특별한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WTO가 미중 무역전쟁에서 사실상 중국의 손을 들어줌에 따라 미국의 도덕성에는 큰 흠집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세계 유일 초대강국 미국의 황혼을 보는 듯하다.

 



sinopar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