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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 확진자 이송 모두가 '손사래'…항만순찰선 “우리가 하지요”

감염 불안감 안고 빗줄기·너울성 파도에 출항
이창호 선장 “같은 일 생기면 또 도우러 갈 것”

(부산=뉴스1) 조아현 기자 | 2020-09-11 07:00 송고
부산항 부산신항 항만순찰선 '뉴미르호'를 운항하는 선장 이창호 주무관(중간), 해기사 이용규 주무관(왼쪽), 기관사 천정미 주무관(오른쪽)이 10일 오후 부산항 수미르공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뉴스1 조아현 기자

부산항 컨테이너 선박에서 발생한 필리핀 선원 확진자의 육지 이송을 모두가 거절하던 상황 속에서 항만순찰선 선장과 항해사, 기관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 우려와 기상 악화에도 발벗고 나서 주위에 감동을 선사했다.

지난달 27일 오후 3시쯤 부산항 부산신항에서 항만순찰선 '뉴미르호(새로운 용)'를 운항하는 선장 이창호씨는 부산지방해양수산청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외국인 선원이 있는데 다른 기관과 협조 요청이 잘 되지 않아 병원으로 이송을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제까지는 감천항으로 들어오는 러시아 원양어선 또는 선체수리 목적으로 들어오는 선박에서 선원 확진자가 나오는 사례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선박이 부두에 접안한 상태에서 확진자를 데리고 나올 수 있었지만 이번처럼 태풍을 피해 바다로 이동한 컨테이너선에서 확진자가 나온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해당 확진자를 빨리 병원으로 이송하지 않으면 추가 선원 확진자가 발생할 우려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미 선사와 검역소 측이 민간 통선업체와 유관기관에 모두 연락을 해봤지만 다들 확진자가 있는 선박이라는 말에 손사래를 치거나 현재 지원할 수 있는 선박이 없다는 말만 되돌아왔다.

이 선장은 고민에 빠졌다. 당연히 가야한다는 생각이 머릿 속을 스쳐지나갔지만 혹시모를 감염 우려가 있는만큼 함께 가야하는 팀원들의 생각이 먼저였다.

이 선장은 "남외항에서 제일 멀리 떨어진 부산신항에 있는 항만 순찰선까지 도움을 청했다는 것은 정말 마지막으로 구조를 요청한 것과 다름없다"며 "우리는 최후의 보루였고 평소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헌신하는 의료진들의 노고를 잘 알고 있었기에 우리가 나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항해사인 이용규 주무관은 "팀장(선장) 이야기를 듣고 솔직히 고민은 됐다"며 "하지만 공무원 생활을 하기 전에 외항선에서 오랜기간 근무했고 선박에서 사고로 부상자가 발생해도 쉽게 이송을 안해주는 광경을 많이 목격해 왔기 때문에 우리가 도와줘야 한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천정미 주무관(기관사)은 "나는 이분들과 다르게 겁부터 났다"며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며 당시의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는 "구성원 모두가 꼭 가야한다고 의무를 부과한 것도 아니었고 회피할 수 있음을 알려줬지만 동료들의 성향과 남다른 사명감을 평소 잘 알고 있었던터라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따라나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의 의지와는 다르게 뉴미르호는 해상으로 곧바로 나갈 수 없었다. 제8호 태풍 '바비(BAVI)'가 지나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풍랑주의보가 계속 발효중이었고 많은 비가 지속적으로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 사람은 다음날인 28일 오전 10시쯤이 되어서야 출항할 수 있었다. 여전히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고 너울성 파도 때문에 배 안에서 제대로 서있기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이들은 부산신항에서 약 2시간30분동안 22마일(약 35km)을 헤치고 세관 통선장에 도착해 방호복으로 갈아입었다. 부직포로 된 신발을 갈아신고 장갑을 2개 덧끼운 뒤 안면 투명 마스크를 착용했다. 

이 주무관은 "방호복을 입고 손장갑을 끼면서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며 "아내도 생각이 났고 집에있는 3명의 아이들 얼굴도 떠올랐지만 해야하는 상황이었기에 얼른 마음을 바로잡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뉴미르호는 통선장에서 검역관 1명을 태운 뒤 남외항으로 향했다. 남외항 해상에서 발견한 컨테이너 선박은 1만 8327톤. 세 사람이 타고 간 항만순찰선 '뉴미르호'는 38톤이었다.

부산항 부산신항에 정박중인 항만순찰선 '뉴미르호(38톤급)'.© 뉴스1

덩치로 비교하자면 무려 480배 이상 차이가 나는 셈인데 컨테이너선에서 내려다보면 항만 순찰선은 '작은 조각배'와 다름 없었다.

여전히 날씨는 흐렸고 파도가 크게 밀려 들어왔다. 그만큼 대형 컨테이너선에 소형선박인 뉴미르호를 붙이기가 더욱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확진자를 어떻게 항만순찰선으로 옮겨야 하는지도 문제였다. 컨테이너선 선장과 이 선장이 함께 의논한 결과 환자는 혼자 움직이는 것이 가능했지만 선박 이동형 사다리(Gangway)를 사용할 경우 선박 간에 충돌 사고로 부상할 가능성도 컸기 때문에 도선사용 사다리(Pilot Ladder, 줄 사다리)를 이용하기로 했다.

이 선장이 베테랑 항해술을 발휘해 접안을 하는 사이 이 주무관은 파도와 바람의 방향을 확인하고 선박 간에 이격 거리를 예의주시하면서 견시(Lookout)에 집중했다. 천 주무관은 접안을 하는 동안 출력을 높여야하는 순찰선 엔진이 꺼지지 않도록 힘을 쏟았다.

50대 중반인 필리핀 선원은 발열 증세로 인해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면서 커다란 짐을 줄에 묶어 순찰선으로 내렸고 이어 자신의 몸도 줄로 감은 뒤 천천히 하선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확진자였던 탓에 동료 선원들 그 누구도 옆에서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도선사용 사다리를 이용하려면 대형 선박과 소형 선박 사이에 이격 거리를 최대한 좁혀야 한다.

게다가 너울성 파도가 심한 상황에서 선박을 잘못 붙이면 충돌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고 배 사이에 틈이 벌어지면 하선자의 다리가 끼어 다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기에 이때 만큼은 모두가 긴장하고 있었다.

다행히 환자는 10여분만에 무사히 내려왔고 뉴미르호는 검역소가 있는 세관 통선장으로 다시 향했다.

1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배를 탔던 천 주무관마저 이 날은 뱃멀미로 인해 돌아오는길이 너무나 고생스러웠다고 한다.

통선장에 도착한 해당 선원은 119 구급차를 타고 무사히 부산의료원으로 이송됐고 현재까지 치료를 받고있다.

이 선장과 이 주무관, 천 주무관 3명은 지난 8일까지도 뉴미르호 안에 있는 좁은 선실서 격리생활을 해야했다.

천 주무관은 이날 "선한 영향력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였다"며 "나 혼자였다면 절대로 할 수 없었을텐데 용기를 낼 수 밖에 없도록 환경을 만들어 준 동료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가장 크다"고 했다.

이 선장은 "사람의 도리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했다"며 "한번 해본 일이기 때문에 다음에 같은 일이 벌어진다해도 똑같이 도우러 갈 것"이라는 말과 함께 미소를 지었다. 




choah4586@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