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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첩약급여 시대! 60년을 앞서 간 일본의 현황은?③

(서울=뉴스1) 권승원 경희대학교한방병원 순환신경내과 조교수 | 2020-09-08 08:30 송고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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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두 차례 기고를 통해 일본의 한약재(생약) 보험 적용 경위와 역사, 구체적인 방법과 활용 현황까지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일본 의사들의 전통의학 계승과 전승을 위한 노력을 살펴보고, 한국 한의학계의 당면한 과제를 제안한다.

60년전 시작한 한약재(생약) 보험과 한방 엑기스제 보험이 일본 한방의학과 한방약산업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보험제도에 기반을 두어 80% 이상의 의사가 한방약을 일상진료에 활용하고 있으며, 한방약 관련 기초와 임상 연구데이터를 토대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노리는 한방제약회사까지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것은 보험제도의 결과만은 아니다. 보험제도를 기반으로 끊임없이 전통의학을 계승, 전승하고자 했던 의사들 노력이 깃든 결과다. 핵심 키워드는 '한방의학 교육'과 '한방처방 표준화'에 있다.
2019년 기준으로 일본 내 82개 의과대학에서는 모두 '한방의학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1883년 10월 23일, 당시 메이지 정부는 의사면허규칙포고 제35호 제1조 공포를 통해, 국가에서 양성하는 의사 교육에서 한방을 제외했다. 이후 약 100년간 일본 의과대학 커리큘럼에서 '한방의학'은 족적을 감췄다. 하지만 2001년 들어 '의학교육모델, 코어, 커리큘럼-교육내용 가이드라인'의 일반목표 '진료에 필요한 약물치료의 기본원리(약리작용, 부작용)를 학습한다' 속 도달목표에 '화한약(和漢藥)을 설명할 수 있다'가 추가 수록되면서 흐름에 변화가 생겼다.

의과대학 커리큘럼에 서서히 한방의학 수업이 추가되기 시작했고, 2019년에는 모든 의과대학에서 한방의학 수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조사된 것이다. 비슷한 조사가 2011년에도 있었는데(Kampo Med. 2012;63(2):121-130), 8년 전에 비해 전체 평균 한방의학 수업 횟수가 증가했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세계의학교육협회(WFME)가 제시한 기준에 맞춰 임상실습이 강조되는 신커리큘럼을 도입 중이다. 이에 따라 총 강의시간 수는 감소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방의학 수업 시간은 오히려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의과대학 교육 내 한방의학 수업이 점차 높은 비중을 차지하며 정착돼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방처방 표준화 역사는 더욱 길다. 한방처방의 표준화라고 하니, 마치 환자의 개별성을 중시하는 동양의학의 특장점을 빼버리고 누구에게나 동일한 처방을 사용하는 매뉴얼식 진료 표준화로 오해할 수 있겠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표준화는 사용 방식의 표준화가 아닌 '기준처방의 설정'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1989년 일본한방협회가 편찬한 '실용한방처방집(국내에도 번역 출간, 2010년, 신흥메드싸이언스)'이다. 이 처방집에는 약 1600개 현대 일본 한방처방이 수록되어 있으며, 전통처방은 물론 현대빈용처방까지 총망라돼 있다.
주목할 점은 각 처방과 관련된 정보를 망라하되, 억지로 정보를 일률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방처방은 같은 이름의 처방이더라도 기록된 서적에 따라 구체적인 용량과 사용 목표가 다를 수 있는데, 이런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를테면 십전대보탕(十全大補湯)은 일본에서 많이 참고되는 세 가지 서적의 구성 용량, 사용 목표, 응용방법, 가감법을 병렬로 제시하고 있다. 다만 용량 단위는 기본적으로 그램(g)으로 현대화했다. 1960년대 한약재와 한방 엑기스제 보험이 시작한 이래, 제도에 맞춰 한방처방을 관리할 필요가 있었는데, 이런 제도적 배경 속에서 이 같은 처방집이 등장한 것이다. 1989년 이래, 총 3회의 개정을 거쳐 2019년 11월 개정4판이 출간됐다. 개정 때마다 최신 개정 약사법, 개정 일본약국방,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해 당대의 기준 한방처방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기준은 의료진의 한방처방 및 선택의 자유를 인정하면서도 의료진 간 소통 기준을 제시한다. 도 한방 관련 산업에도 표준을 제시하고 있다.

일본 의료계 리더들 안목 또한 한방의학 보급에 큰 몫을 차지했다. 첫 기고에서 밝혔듯 한약재 의료보험 도입에 큰 역할을 한 타케미 타로 전 의사회장이 있었고, 비교적 최근까지 일본의사회장, 세계의사회장을 역임한 요코쿠라 요시타케는 한때 의료보험의 한방약 적용 범위를 축소하려던 재무성 행위를 비판했다. 그는 "서양을 포함한 세계 각국이 의료용 한방의 이용을 점차 확대하는 와중에, 한방약을 의료보험에서 제외하는 것은 국제화 흐름에 역행한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교육-표준화-리더의 안목' 삼박자가 맞아 떨어져 일본 국민들은 필요할 때 큰 부담 없이 한방진료를 받고 있다.

2020년 10월 드디어 대한민국에서도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이 실시된다. 연간 500억원(총 3년간, 15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2020년 기준 전체 77조원에 육박하는 건강보험 예산의 0.1%에도 미치지 않는 예산을 투입하지만, 시작 전부터 시끄럽다. 하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고령사회로 진입한 대한민국은 앞으로 각종 만성질환에 대한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유럽 최대의 샤리테 베를린대학병원의 안드레아스 미할젠 박사는 "과학적으로 입증된 자연요법이 만성 질환의 증가에 대한 유일한 해답"이라고 말했다. 만성질환에 효과으로 접근하려면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한 것이다. 또한 요코쿠라 요시타케 전 일본의사회장 역시 그런 흐름을 인정했다. 더 이상 '비싸서 접근하기 어려운 약'이 아니라 필요한 환자들에게 보편적으로 제공하는 약으로 한약처방(첩약)이 자리매김해야만 하는 것이다.

다만, 일본의 현황을 토대로 꼭 해결했으면 하는 점을 지적하며 본 기고를 마친다. 우리나라는 12개 한의과대학이 존재하므로, 굳이 일본의 한방의학 수업 도입까지 본받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처방의 표준화는 본받아야 한다. 다행히 이번 시범사업에는 그동안 개발된 한의표준진료지침과 전문가의견을 토대로 한 기준처방이 제시된다. 기준처방을 토대로 한의사의 진찰 결과에 따라 한약재 가감이 가능한 형태로 제도가 운용된다. 표준화를 하면서도 한의사의 전문 지식이 활용될 수 있는 기반이 세워진 것이다. 한의학계도 다양한 의견을 종합된 처방집을 만들어 볼 필요가 있다. 이번 시범사업을 거치면서 기준처방에 대한 개정 작업이 병행되면 일본처럼 합의된 처방집이 만들어질 뿐 아니라 학문의 발전이 제도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틀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를 토대로 한약제제의 상품화도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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