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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영의 뼈 때리는 언니] 미래를 예측하는 바보짓

(서울=뉴스1) 안은영 작가 | 2020-08-13 16:21 송고 | 2020-08-14 04:04 최종수정
'49일째' 계속되던 장마가 잠시 소강 상태를 보인 12일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우산을 쓰지 않은 시민들이 출근하고 있다. 2020.8.12/뉴스1 © News1 허경 기자
'49일째' 계속되던 장마가 잠시 소강 상태를 보인 12일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우산을 쓰지 않은 시민들이 출근하고 있다. 2020.8.12/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장마에 폭염에, 안녕?

언니야. 아직 두 계절이나 남았는데 2020년에 멀미가 나는 건 나 혼자 뿐이니? 코로나19에 사상 최장 장마에 폭염을 지나고 나면 3년 치 노화가 한꺼번에 밀려올 것 같어. 이미 자고 일어나면 얼굴이 오이지처럼 쪼글쪼글하다만. 하긴 노화가 대수니, 도처가 난리법석인데.

전남 구례의 천연염색 장인이 생각났어. 그의 고택 앞으로는 청명한 계곡이 우렁우렁 흘렀어. 그 물에 몸을 헹구고 나온 붉은 천들은 장대에 꿰어 하늘 높이 걸렸지. 산중턱에 박혀서 지리산의 변덕을 온 몸으로 받아내던 곳, 다행히 지인의 목소리는 씩씩했어. 지난해 꼬박 일 년 동안 산의 물길을 터내는 작업을 했대. ‘포크레인 놔두고 삽 들고 일할 땐 속이 터졌지만’ 결국 그 조심스러운 삽질이 수마의 발톱을 막아낸 거지.

같은 날 미국에서 소식을 알린 친구의 SNS에는 기부를 부탁하는 도네이션 링크가 걸려있었어. 운영하던 가게에 불이 나 깡그리 전소한 거야. 유학시절부터 차근차근 일궈온 걸 알기에 친구의 소식은 충격이었어. 폭염으로 인한 누전으로 추측되지만 화재보험 보장한도를 낮추자마자 발생한 화재였다는 게 더 기막혔지. 친구의 ‘왜 내게 이런 일이’는 ‘왜 내 친구에게 이런 일이’에서 ‘앞으로 우리에겐 어떤 일이’로 전이되더라.

행과 불행엔 TPO가 없단다. 창궐하는 바이러스에 어깨를 옹송그린 채 지내는 건 앞으로도 익숙해질 것 같지 않고, 기후변화로 지구가 꽥 소리 내며 몸을 비트는 현실 속에서 우리의 여름은 삼복더위, 소나기 같은 단어를 지워낼 거야. 24절기는 사라지고 데이터에 입각한 경고성 예보에 귀를 기울이겠지. 새해와 함께 밝아온 팬데믹의 레드사인은 우리가 걸어야 할 고난의 행로는 생각보다 길고, 덕분에 불행을 감내하는 능력은 일취월장하고 있으며, 과거의 잣대로 미래를 예측하는 바보짓을 멈추라고 말하고 있어. 

인류의 역사는 질병의 역사이기도 할 만큼 바이러스와 함께 진화해왔잖아. 우리는 살아남을 거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겠지. ‘역대급’이라는 유행어가 무색할 만큼 세상은 역대급으로 변이할 거야. 당장의 우울과 혼란은 뼈아프지만 이 과정을 거쳐 우리는 진화하겠지. 우울의 증거로, 하루에도 수십 수백 건씩 쏟아지는 전망과 분석 가운데 어디에도 핑크빛 미래는 없어. 우리가 이 시대에 갇혀있다면 말이야.

우울평준화 돼가는 세상에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건 당대의 종말이야. 바뀌어버린 삶의 방식은 물론 소소한 생활패턴까지도 우리 시대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지. 세대와 지역의 구분 없이 너와 나 각자의 시대에 안녕을 고해야 할 시간이야.

이를테면 지금까지 당신은 어떤 인생을 살았니? 치열했고 아쉬웠고 영예로웠던 당신의 당대에 예의를 갖춰 이별하기를. 상식적으로 웃었고 낭만이 아직 촌스럽지 않았던 나의 당대도 안녕히. / 안은영 작가. 기자에서 전업작가로 전향해 여기저기 뼈때리며 다니는 프로훈수러.

© 뉴스1



argu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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