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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월요묵상] 당신은 자신을 사랑하십니까?

(서울=뉴스1) 배철현 고전문헌학자 | 2020-08-10 06:30 송고 | 2020-10-05 09:58 최종수정
배철현 고전문헌학자 © 뉴스1
인생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나침반들이 있다. 인간과 인간에 깊은 영향을 주는 환경에 대한 심오한 사상들이다. 흘러가는 시간을 잡을 수 없고 한번 지나가면 되돌릴 수 없는 세월의 아쉬움을 달래며, 순간을 영원처럼 살도록 유도하는 도우미들이 있다. 성현들은 이런 도우미들을 모아 '학문'(學問)이란 분야를 만들었다.

학문의 세 분야는 크게, 예술, 과학, 그리고 인문학으로 구분된다. 과학(科學)은 세상을 객관적인 눈으로 관찰하여 이성적으로 설명하려는 과정(過程)이고, 예술(藝術)은 인간과 자연에서 숨은 미(美)를 찾는 학문이고, 인문학(人文學)은 그것을 공부한 사람의 생각, 말, 그리고 언행을 통해 진리(眞理)를 체득하고 실천하려는 수련이다. 과학의 대상은 3인칭이고 예술과 인문학의 대상은 2인칭과 1인칭이다.
 
인간은 자신이 유한한 삶을 살고 있다고 아는 유일한 동물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가장 혁신적인 발명은 사후세계다. 자신이 경험할 수 없는 죽음 너머의 세계를 상상하여 그것이 존재한다고 믿었고, 정교한 장례 의식은 삶의 가장 중요한 의례로 자리를 잡았다. 특히 종교체계들은 모두 순간을 사는 인간들이 온전한 인간, 신적인 인간을 살기 위한 강력하면서도 흠모할 사상을 주장한다. 바로 자비(慈悲)다. 개별 종교의 다양하고 복잡한 교리는 '자비'에 대한 각주다. 자비는 타인의 희로애락을 나의 희로애락으로 여기는 인간 최고의 덕목이다. 자비를 간략하고 강력하게 표현한 문구가 '황금률'(黃金律)이다. 이들은 모두 '당신이 당하기 싫은 방식으로 상대방을 대하지 말라' 혹은 '당신이 대접받고자 하는 방식대로 상대방을 대접하라'로 표현한다.
 
​황금률은 나라를 잃은 유대인들을 생존하게 만드는 생존키트였다. 기원전 586년 바빌론의 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예루살렘을 부수고, 유대인들을 포로로 잡아간다. 이때부터 유대인들은 소위 디아스포라를 시작한다. 성전이 기원전 515년에 재건됐다. 그 후 그 유대인들은 페르시아, 그리스, 그리고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로마의 유대 점령에 대항한 유대인 봉기는 기원후 70년 로마 군대의 예루살렘과 성전 파괴로 이어졌다.
유대인들은 신이 거주한다고 믿었던 예루살렘이 두 번째 파괴되자 망연자실했다.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가장 중요했던 유대인들에게 창의적인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유대교 랍비들은 자신들이 간직해온 경전 연구를 통해 다시는 파괴할 수 없는 '마음의 예루살렘'을 짓기 시작했다. 기원후 200년경 등장한 유대교 경전 '미쉬나', 그리고 5·6세기 등장한 '탈무드'가 그것이다. 유대인들은 이 경전들을 공부하는 행위가 천상의 예루살렘을 위한 벽돌을 하나하나 쌓는 것으로 생각했다.
 
​예수와 동시대인인 위대한 랍비 힐렐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힐렐에게 한 이교도가 다가와 묻는다. "당신이 한 다리로 서 있는 동안 토라 전체를 암송할 수 있다면, 나는 유대교로 개종할 것이요"라고 말했다. 힐렐은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 스스로 혐오스러운 일을 이웃에게 하지 마시오. 이것이 토라의 전부이며 나머지는 그저 각주일 뿐이니, 가서 이것을 공부하시오"라고. 그는 여기에서 신의 유일성, 천지창조, 출애굽 혹은 613계명과 같은 교리를 언급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힐렐에게 그저 황금률에 대한 부연설명일 뿐이다.
 
​유대교가 말하는 첫 계명인 '신을 사랑한다'는 말과 그리스도교가 전파하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한다'는 문장의 의미는 무엇인가? 인간은 보이지 않는 신을 어떻게 사랑하고, 때로는 적대적이며 원수와 같은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는가? '사랑하다'는 한순간의 행동으로 마치는 동사가 아니다. '사랑하다'는 '어떤 대상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일 처럼 애쓰는 마음가짐'이다. 누가 신을 사랑하고 자신이 아닌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가?
 
​자신을 깊이 사랑한 사람만이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 자신이 흠모할 만한 자신을 상정하고, 그런 자신이 되기 위해 애쓸 때, 인간은 '사랑'이라는 인류 최고의 가치를 자신의 소유로 만들기 위해 자신을 사랑하는 연습을 시도해야 한다. 누가 신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가? 자신을 깊이 사랑하기를 연습하는 사람이다. 그(그녀)의 사랑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 대한 수용뿐만 아니라, 자신이 변모시키려는 내일의 자신의 모습에 대한 기대다. 인간의 불행과 공동체의 비극은, 혼자 가만히 있을 여유가 없어 생긴다. 가만히 자기를 응시하여 자신이 되어야 할 자신을 존경하고 수련할 때, 인간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도산선생 '애기애타' 친필 휘호
도산선생 '애기애타' 친필 휘호
 
​며칠 전. 강남 신사동에 있는 '도산공원'에 들어가 보았다. 서울에 살면서도, 이 공원 안에 들어가 본 것은 처음이다. '도산'(島山)은 조선말기와 일제 강점기에 독립 운동가이며 교육가로 활동한 안창호 선생의 호다. 도산의 언행은 섬에 우뚝 솟아오른 산과 같다. 그의 사상을 여실히 드러내는 문구가 하나 있다. 바로 '애기애타'(愛己愛他)다. 도산은 이 문구를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여 한자 '애'의 밑 부분에 나오는 심(心)과 쇠(夊)를 친구를 의미하는 우(友)로 대치하였다. '애기애타'는 자신을 가장 심오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타인도 사랑할 수 있다는 도산의 깨달음과 철학이다.
 
미국 시인 월트 휘트먼이 시 '내 자신을 위한 노래'(Song of Myself)에 등장하는 '내 자신'이다. 이 제목은 현재의 자신을 무작정 인정하고 노래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당신 자신은 노래할 만한가?"를 묻는 말이다. 모세가 신에게 이름을 물었을 때, 신은 자신의 이름을 "나는 나다"(I am Myself)라고 대답하였다. 신이란 혹은 신적인 인간이란 흠모할 만한 자신이 되고 있는 자다. 모세와 휘트먼의 'Myself'가 도산에겐 己로 표시되었다. 도산은 자신을 깊이 사랑하는 자만이 타인을 깊이 사랑할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그런 나를 가지고 있는가? 만일 가지고 있다면, 그런 나를 사랑하는가? 나는 오늘 그런 나를 존경할 만한 나로 수련하고 있는가? 신은 '그런 자신'을 위해 인내를 지니고 조용히 수련하는 자에게 '인격'(人格)을 선물한다. 도산공원 안에 설치된 도산의 한 비문이 나를 꾸짖는다.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이 되라
우리 중에 인물이 없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마음먹고
힘쓰는 사람이 없는 까닭이다.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는
그 사람 자신이 왜 인물이 될
공부를 아니 하는가"



cultur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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