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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취, 자다 일어나는 것 아냐…지방흡입·성형 마취사고 비극 부른다

홍콩 재벌 손녀 숨지고 30대 한국인 여성 식물인간 의료사고
동네의원 전문의 초빙 어려워…안전한 수술 위한 대책 필요

(서울=뉴스1) 음상준 기자, 김태환 기자, 이형진 기자 | 2020-08-06 07:00 송고 | 2020-08-06 11:49 최종수정
© News1 김일환 디자이너
© News1 김일환 디자이너

성형수술과 지방흡입 등을 위해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이뤄지는 마취 시술의 안전성을 강화하도록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올해 들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대형 마취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는 등 환자 안전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우려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6일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1월 홍콩 의류 재벌 기업인 로팅퐁(羅定邦) 손녀인 보니 에비타 로가 서울 강남구 소재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은 뒤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이 의료사고는 외신을 통해 전 세계로 타전됐다.

한국인 브로커를 통해 국내 성형외과에서 지방흡입과 유방 확대 수술을 받은 보니 에비타 로는 수술 과정 중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고, 의료진이 진정제를 추가로 투여하자 산소 포화도(혈액 속에서 헤모글로빈과 결합한 산소량 최대치)가 떨어지는 증상을 보였다. 이후 의료진이 환자를 긴급히 인근 대학병원으로 이송했지만 끝내 숨졌다.

지난 3월에는 서울 한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지방흡입 시술을 받던 30대 여성이 깨어나지 못하고 식물인간이 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이 여성은 시술 과정에서 심정지가 왔고 여섯 번이나 심폐소생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원인을 놓고 현재 경찰이 수사를 진행 중이다.

마취사고는 한 번 발생하면 후유증이 매우 크다. 마취 후 환자가 의식을 잃고 식물인간이 되거나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어서다. 이는 동네의원에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상주하지 않은 탓이다.

문제는 의사 혼자 의원을 운영하거나 일정한 규모를 갖추지 않은 곳에서는 집도의가 직접 환자를 마취하는 일이 잦다. 그렇다고 수술 건건이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를 초빙하는 것도 여의치 않다.

마취 시술 행위에 수가(의료서비스 대가)가 낮게 책정된 데다 종합병원 이상 규모가 아니라면 별도로 전문의를 고용하는 것도 부담이다.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를 초빙하고 싶어도, 의료법 내 '이중개설 금지' 조항에 위배될 수 있다.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의원을 개설한 경우라면 다른 병원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하는데 제약이 따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집도의 스스로 환자를 마취를 하거나 마취전문간호사 도움을 받는 사례가 많지만, 의료사고가 발생할 경우 대처가 어려울 수 있다 .

일각에서는 수면마취를 '잠시 잠을 자고 일어나는 것'으로 표현하지만, 위험천만한 생각이라는 게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들 지적이다. 실제 동네의원에서 발생하는 마취사고 대부분은 수면마취제 프로포폴을 투여하다 발생한다.

마취는 약물을 이용해 일시적으로 무감각 또는 통증에 대한 인지능력을 떨어트리는 처치법이다. 실제 의료 현장에서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는 약물 투약 전에 환자 병력과 약물 알레르기, 체질 등을 꼼꼼히 파악한 뒤 용량을 조절하거나 안전한 약제를 선택한다. 전문적인 진료 경험이 필요한 분야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 2.8명 중 1명꼴로 의료기관에서 마취제를 처방받았으며, 그중 프로포폴을 가장 많이 처방받았다. 지난해 프로포폴을 처방받은 환자는 851만명에 달했다. 프로포폴은 강력하게 호흡을 억제하는 부작용이 있다. 이에 따라 이 약제를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참여한 가운데 사용하도록 규정했다.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마취사고를 줄이려면 전문의가 다양한 의료기관에서 초빙 시술을 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고, 수가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또 전문의를 고용한 의료기관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의사단체 임원을 역임한 한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는 "마취를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자칫 되돌릴 수 없는 의료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전문의에게 맡겨야 한다"며 "정부도 동네의원들이 안심하고 전문의를 초빙할 수 있는 여건, 이중개설 금지 폐지도 들여다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대한마취통증의학회는 안전한 마취 의료행위를 확대하는 대안으로 '마취 실명제' 도입과 '이중개설 금지'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그중 '마취 실명제'는 의료기관이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할 때 마취 시술을 한 의료인의 실명을 인증하는 방식이다.


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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