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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칼럼] 외자유치가 만든 유령도시

(서울=뉴스1) | 2020-07-31 14:19 송고 | 2020-07-31 14:48 최종수정
 © News1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 관광단지 인근 예례마을 해변에 짓다 만 ‘휴양형 주거단지’가 흉물스럽게 서 있다. 그건 영락없는 고스트 타운(ghost town), 즉 유령도시의 풍경이다. 한때 성공적 외자유치로 세계적 휴양 명소가 될 것이라고 홍보되었던 이곳 22만여 평의 해안 언덕 위에는 외형만 완성된 2, 3층짜리 콘크리트 건물 폐허가 을씨년스럽다.

서양에서 고스트 타운이란 광산이나 군사기지 등이 폐쇄되거나 재난으로 사람들이 떠나버린 빈 마을이나 도시를 일컫는다. 폐광촌처럼 스토리가 있는 고스트 타운은 관광지로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예례 휴양형 주거단지는 제주도와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이 해외자본을 끌어들이는 데 급급해서 법률적 타당성을 면밀하게 검토하지 않고 공사를 강행하다 유령도시를 만들어 놓았으니 쓸모없는 콘크리트 쓰레기더미다.

문제의 발단은 1997년 서귀포시가 이곳 예례마을 해변 약 12만평에 ‘유원지’를 신설한다는 도시계획시설 결정 고시를 하면서다. 그 후 2001년 정부는 제주도를 국제자유도시로 개발하기로 방침을 세웠고, 2002년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을 제정하고 국토교통부 산하에 국책사업을 펼칠 수 있게 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를 설립했다. 제주국제자유도시는 제주도와 JDC가 이원 협력 체제로 추진됐다.

JDC는 7개 선도 국책 사업을 맡아 추진했는데 예례 휴양형 주거단지가 그 사업 중 하나다. 제주도는 2002년 사업시행자로 JDC를 지정했고, 여기에 맞춰 서귀포시는 이미 유원지로 고시된 땅을 포함한 총 22만5000평으로 사업시행지 범위를 확대하는 도시계획시설 변경을 고시했다. 그리고 JDC는 2006년 사업시행지의 토지 매입 협의에 나섰다. 협의에 응하지 않는 지주들에 대해서는 토지수용위원회의 재결을 통해 강제로 수용했다. 훗날 이게 탈이 났다.

당시 제주도는 해외여행자유화에 의한 관광객 감소와 FTA(자유무역협정)에 의한 농산물 개방으로 침체의 늪에 빠져 있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제주도와 JDC는 외국자본 유치에 혈안이 되어 있을 때였다. JDC는 2009년 말레이시아 버자야 그룹의 투자를 끌어들였다. 버자야 그룹은 휴양형 주거단지를 건설하기 위해 1250억 원을 투자해서 81%의 지분을 갖고 JDC와 합작법인 버자야리조트㈜를 설립했다. 이 과정에서 제주도는 버자야 그룹의 요구에 맞춰 50층짜리 레지던스호텔 허가 등 행정적 특혜를 제공했다.

유령도시가 돼버린 예례 휴양형 주거단지. 짓다 만 주택들이 훙물스럽게 늘어서 있다. 2020.7.31 /뉴스1

그러나 강제 수용당한 일부 지주들이 가만있지 않았다. 이들은 JDC와 버자야리조트를 상대로 토지수용 취소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2011년 고등법원이 이들 지주들에게 승소판결을 내렸다. 예례 휴양형 주거단지는 국내외 고소득노년층을 유치해 관광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게 목적이므로 시민의 휴식공간인 유원지 형식으로 개발하는 인가 처분은 무효라는 것이다. 무효인 인가처분에 의한 토지수용 재결도 당연히 무효라고 판결했다.
  
JDC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버자야리조트는 2013년 본격적으로 공사를 시작했다. 대법원은 2015년 토지주에 승소판결을 내리고 문제가 된 토지에서 진행 중인 공사를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이렇게 해서 부풀었던 휴양형 주거단지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버자야 그룹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합작법인 버자야리조트로 하여금 JDC를 상대로 계약위반에 따른 3238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기하는 한편, 한국정부를 상대로 무려 4조4000억 원에 이르는 ‘투자자 국가분쟁 해결신청’(ISDS)을 했다. JDC와 버자야리조트는 지난 1년 동안 협상을 통해 이 문제의 처리 방법에 합의했다.

이 합의에 바탕을 두고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6월 26일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다. 결정 내용은 JDC가 약 1200억 원을 버자야 그룹에 지급하고, 버자야리조트는 한국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투자자 국가분쟁 해결신청’을 철회하며 기존 사업권은 JDC에 전부 양도하라는 것이다. 6월30일 양측이 법원 결정문을 수용함으로써 10년 이상 끌어온 소송은 일단락됐다. JDC 등 관련 당사자들은 소송이 양측 합의로 마무리된 것을 성과로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 모양이다. 사업당사자나 관련기관으로선 그럴 만도 하다.

그렇지만 주민이나 국민적 관점에서 보면 프로젝트 실패에 따른 막대한 예산이 낭비됐고, 공동체에는 갈등의 상처를 남겼다. 특히 짓다 중단된 유령도시 처리문제는 JDC, 지방자치단체, 예례마을에 큰 짐으로 남았다. 법원판결에 따라 JDC는 지주들에게 강제로 수용한 토지를 반환하고 토지보상금을 환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JDC는 지주들에게 지가 상승을 반영한 환수액을 요구하고 있어 또 다른 소송전이 예고되어 있다.  
      
결국 정부와 그 산하기관이 잘못된 판단으로 국가와 지역사회에 손해를 끼쳤으면 책임이 규명되어야 하고, 엄격한 성찰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한때의 관광 붐에 편승해서 무분별하게 외자를 유치하고 자연경관을 훼손하며 사업을 벌이다 실패할 때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를 예례 휴양형 주거단지가 너무 잘 보여주고 있다. <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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