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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거래사]'프로복서→보디가드', 지금은 연매출 5억원 농업인

무일푼으로 고향 진주 내려와 연근에 빠진 김성식씨
"젊은 세대에게 농업도 괜찮다는 것 보여주고 싶어"

(경남=뉴스1) 한송학 기자 | 2020-07-11 10:00 송고 | 2020-09-24 09:37 최종수정
편집자주 매년 40만~50만명이 귀농 귀촌하고 있다. 답답하고 삭막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을 통해 위로받고 지금과는 다른 제2의 삶을 영위하고 싶어서다. 한때 은퇴나 명퇴를 앞둔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겼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30대와 그 이하 연령층이 매년 귀촌 인구의 4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농촌에서 어촌에서 산촌에서의 삶을 새로운 기회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뉴스1이 앞서 자연으로 들어가 정착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예비 귀촌인은 물론 지금도 기회가 되면 훌쩍 떠나고 싶은 많은 이들을 위해.
연근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 김성식 씨. © 뉴스1
연근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 김성식 씨. © 뉴스1

"뻘밭에서 삶을 건졌지요". 경남 진주시 대곡면의 연근밭에서 김성식씨(49)가 허리를 펴며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프로복서에서 회장 비서, 고물상, 퇴비회사 직원을 거쳐 현재는 성공한 농업인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진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대 초반에는 프로복서로 활동했다. 벌이가 좋지 못해 20대 중반에는 잠시 어둠의 세계에 발을 들이기도 했다. 젊은 시절 찾아온 혼란을 극복하고 20대 후반에는 정상적인 일을 하기 위해 서울 유명 헬스클럽 회장의 경호원 겸 비서 역할을 했다.
당시 대우는 대기업 직원 수준을 넘을 정도로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직장이 부도나면서 실직을 했다. 특별한 기술도 없고 운동만 해온 그는 노모가 계시는 고향 진주로 방향을 잡았다. 그의 나이 30대 초반.

진주에 내려와서는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고물을 수집했다. 박스와 폐비닐을 수거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퇴비회사에 취직해 낮에는 회사에 다니고 밤에는 고물을 수집하면서 돈을 모았다.

그는 "무일푼으로 진주에 내려와 친구 집에서 얹혀 지냈다. 파지 등 고물을 수집하고 비닐하우스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폐비닐도 수거했다. 고물상과 퇴비회사에 다닌 게 2~3년 정도 된다"고 회상했다.
퇴비 일을 하면서 농사일에 발을 들이게 됐다. 연밭에 퇴비 영업을 갔다가 연근에 빠진 것이다. 연근을 재배하면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번 종자를 심으면 매년 수확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왔고 덤으로 미꾸라지도 키우기로 했다.

그는 "농사에 대해 전혀 모르는데 하루는 연을 수확하는 것을 보고 관심이 생겼다. 매년 안정적으로 수확할 수 있고 부수입으로 자연산 미꾸라지를 키워 내다 팔면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성식 씨의 연밭. © 뉴스1
김성식 씨의 연밭. © 뉴스1

그리고 논 3500평을 임대했다. 연 재배에 대한 지식도 없고 농사 경험이 없던 터라 잘 될 리가 없었다. 2014년 1700만원을 들여 시작한 농사는 적자였다. 하지만 연근 종자는 남아있던 터라 다음 해에는 1만6500평을 임대해 연밭을 일궜다. 그러나 역시 적자였다. 제품 상태가 좋지 못했고 인건비 등을 제대로 계산하지 못해 낭패를 본 것이다.

"15kg 1박스당 연근 경매 가격은 1만4000원 정도다. 평당 2000원에 땅을 빌리고 연근 채취에만 1만2000원이 들어가는데 생산비도 미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씨는 포기하지 않고 방식을 바꿨다. 기존에는 도매로 판매했다면 이번에는 직접 시장에 나가 연근을 팔기로 했다. 진주의 새벽시장에 무작정 연근을 들고 나갔는데, 새벽시장에 지정된 자리가 있는 줄 모르고 자리를 잡았다가 여기저기 쫓겨 다니면서 한쪽 구석에서 연근을 팔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장사가 잘됐다. 그 후로 자신감을 얻어 진주, 순천, 통영 등 5일장을 돌아다니며 노점을 펼쳤다.

2016년부터는 인터넷 판매에 눈을 돌렸다. 아는 후배의 권유로 인터넷 판매를 시작했다. 국내 유명 포털 사이트 판매 1위에 오를 정도로 연근 제품이 인기가 좋았다. 퇴비를 만든 경험을 살려 친환경 연근을 재배한 것이 통한 것이다.

그는 "연근 재배는 잡초 제거가 관건이다. 제초제를 사용하면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데, 저는 친환경을 고집했다. 직원을 고용해 잡초 제거를 직접 하는데 한 해 인건비만 2000~3000만원 정도다. 퇴비회사에 다닌 것도 도움이 됐다"며 제초제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농장과 차별화된 자신의 친환경 연근을 설명했다.

직원들이 연밭 잡초 제거 작업 중 사진 촬영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뉴스1
직원들이 연밭 잡초 제거 작업 중 사진 촬영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뉴스1

친환경 연근으로 인기가 많아지면서 까다롭기로 유명한 생활협동조합인 한살림과 2019년 납품 계약을 맺었다. 전국 200여개 매장을 두고 있는 한살림과 계약 재배를 해 안정적인 판로를 찾은 것이다. 시쳇말로 대박이었다.

그의 도전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고 한다. 올해 매출은 5억원 정도이지만, 내년에는 재배면적을 3만5000평까지 확장해 8억원 이상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다른 목표도 있다. 소외계층에게 자신의 재능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부모 없는 아이들은 18세가 넘으면 갈 때가 마땅치 않은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이들을 고령화 시대 농업을 이끌어갈 세대로 만들고 싶다. 농업을 경험해보니 이제는 길이 보인다. 이 길을 갈 때 없는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땅도 분양해 주고 싶다. 농업도 괜찮다는 것을 젊은 세대에게 보여주고 성공할 수 있는 길도 알려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귀농 정책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정부가 주도해 방향을 잡고 끌고 가는 것이 현실로, 그 방향에 맞춰 귀농을 권유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진단했다. 한 분야를 정해 놓고 밀어주기 때문에 포화상태가 돼버리고 결국은 모두가 힘들어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ha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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