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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군인이 폭로한 北실상 "무법지대…뇌물엔 모두 열외"

'2017년 귀순' 노철민 WSJ 인터뷰 "그땐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서울=뉴스1) 김서연 기자 | 2020-07-05 16:41 송고
지난달 23일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비무장지대(DMZ) 북쪽 북한군 초소. 2020.6.23/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지난달 23일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비무장지대(DMZ) 북쪽 북한군 초소. 2020.6.23/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비무장지대(DMZ)에서 북한군 병사로 복무하다 2년 전 귀순한 탈북민이 외신을 통해 부패한 북한군의 실상을 폭로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4일(현지시간)자 서울발 기사에서 탈북민 노철민씨와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하며 "그의 증언은 정보당국이나 탈북자, 연구자 등의 견해와 일치한다"고 전했다.

노씨가 서구 언론과 인터뷰를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WSJ에 따르면 노씨는 지난 2017년 늦은 여름 DMZ 부대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5피트8인치(약 172.7㎝)라는 북한인치고는 큰 키와 뛰어난 사격 실력 덕분이었다. 노씨의 동료 병사는 모두 46명이었는데, 모두 키가 크고 젊은, 그리고 연줄이 있는 이들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노씨는 부대 배치 후 훈련 첫날부터 깜짝 놀랐다. 동료들이 상관에게 뇌물을 주고 훈련에서 빠지면서 아무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씨는 당시 군 생활에 대해 "무법이었다. 돈만 있다면 기본적으로 무슨 일도 피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노씨는 DMZ 부대 근무 초기 풍부한 식량과 조직적인 훈련을 기대했었으나, 동료들은 총기 사고로 죽어갔고 장교들은 부대에 배급된 쌀을 시장에 내다 팔고 병사들에겐 값싼 옥수수죽을 먹였다고 한다.

노씨는 "당시엔 내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먹을 게 없어 야생버섯을 먹으며 버티자 몸무게가 수개월 만에 90파운드(약 40.8㎏)까지 줄었다고 한다. 그는 "쉽게 구할 수 있는 건 담배뿐이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3일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비무장지대(DMZ) 북쪽 지역의 대남 확성기 시설. 2020.6.23/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지난달 23일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비무장지대(DMZ) 북쪽 지역의 대남 확성기 시설. 2020.6.23/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노씨의 주임무는 DMZ가 내려다보이는 초소에서 13시간씩 경계근무를 서는 일이었다. 기온은 영하 40도 가까이 떨어졌고, 아침이 돼 근무에서 복귀할 때면 피부가 갈라질 것 같고 눈썹도 얼어붙었다고 한다.

그러나 고위직 부모를 둔 병사들은 지휘관들에게 150달러(약 18만원) 가량을 뇌물을 주고 이런 경계근무에서도 열외됐다. 이들은 여분의 음식을 받고 따뜻한 방한복을 입었으며 가족들과도 매주 통화할 수 있었지만, 노씨는 동료들이 자신보다 더 많이 잠을 자고 빵을 사러 외출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그는 가족에게 전화 한 통 걸지 못한 채 대부분의 시간을 초소에서 보냈다고 소회했다.

한 상관은 "진급을 원하지 않느냐"면서 노씨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뇌물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북한에서 노씨와 같은 젊은 군인들은 조선노동당원이 되기 위해 공부한다고 한다. 노동당원이 된다는 건 사회적 계층 상승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씨에겐 공부에 필요한 공책 1권, 펜 1자루를 살 돈도 없었다.

노씨는 2017년 12월 어느 날 아침 탈북을 결심했다. 며칠 전 상관으로부터 쌀과자를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난 뒤였다. 그는 탈북하던 날 처음으로 북한 인공기 아래를 지나가면서 경례를 거부했다. 그는 남쪽을 향해 가면서 '그 어떤 유혹이 있어도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구호가 떠올라 등골이 오싹해지기도 했다. 노씨는 남한 도착 뒤 한국군 병사로부터 "귀순자냐"라는 질문에 난생 처음 듣는 단어라 어리둥절했었다고 전했다.

현재 한국에서 노씨는 서울에 있는 대학을 다니며 주말이면 웨딩홀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노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보면서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걱정했다. 또 탈북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을 겪었을 지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그는 "(북한 정권은) 우릴 아마 죽게 내버려 뒀을 것"이라며 "(그들에게) 우린 일회용품처럼 여겨진다"고 비판했다.

노씨는 가족들이 북한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알지 못해 탈북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있다. 북한 정권은 탈북자 가족을 처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씨는 알 수 없는 일을 너무 오래 생각하면 고통만 되기 때문에 "매일매일 잊으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s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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