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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수출규제는 전화위복…속속 돌파구 찾는 소부장 기업들

[일본 수출규제 1년]<하>소부장 경쟁력 강화 우수기업 사례
"정부 지원·기업 협력 어우러져…투자 일회성 그치지 말아야"

(세종=뉴스1) 한종수 기자, 권혁준 기자, 권구용 기자 | 2020-07-06 07:10 송고
편집자주 일본이 한국의 반도체 생산에 꼭 필요한 핵심 소재에 대해 수출규제 조치를 내린 지 1년이 됐다. 우리 핵심산업인 반도체에 타격을 가하기 위한 사실상의 '경제침략'이었지만 1년이 흐른 지금, 당시 우려와는 달리 정부와 산업계의 발빠른 공조로 국내 소재·부품·장비 산업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한일 양국 갈등이 수그러들지 않아 일본이 2차 수출규제에 나설 가능성이 큰 만큼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두 차례에 걸쳐 지난 1년간의 일본 수출규제에 대한 대응과 성과를 짚어보고 향후 대책을 모색해본다.
© News1 김일환 디자이너
© News1 김일환 디자이너

지난해 일본이 한국의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에 대해 수출규제 조치를 내렸을 당시 국내 기업들의 반응은 '당혹' 그 자체였다. 일본 의존도가 매우 높은 품목들의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당장 생산 차질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올 2월부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또 하나의 악재가 들이닥쳤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이에 따른 수요 위축이 불가피해진 데다, 한-일 양국이 입국규제를 강화하는 등 외교문제가 심화되면서 수출규제가 해소될 가능성이 더욱 낮아진 것이다.

하지만 위기는 오히려 기회로 반전됐다.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경쟁력 강화 대책 마련을 위해 정부가 팔을 걷어부쳤다. 7년간 7조8000억원에 달하는 정부 연구개발(R&D) 자금을 투입하면서 자체 기술 개발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대기업 중심의 수요기업들이 국내 기업과의 상생을 적극 도모하면서 정부의 지원을 뒷받침했다.

무엇보다 일선에서 기술 개발에 나선 '필드 플레이어' 중소·중견 기업들의 공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그간 기술력을 갖추고도 자금력 부족에 애를 먹었던 중소·중견 기업들은 오로지 '기술 개발'에만 몰두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자 날개를 달았다. 그 결과 1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에도 여기저기서 국산화 실현의 낭보가 이어졌다.

물론 '판'이 깔렸다고 해서 누구나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수출 규제와 코로나19의 풍파가 불어닥치기 전부터 제조기반을 국내에 뿌리내리고, 자체 기술 확보를 위해 오랜 기간 투자해 온 '준비된' 기업들만이 가능하다. 지금부터 소개할 기업들이 바로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원익 IPS의 반도체 장비 GEMINI HQ. (원익IPS 제공) © 뉴스1
원익 IPS의 반도체 장비 GEMINI HQ. (원익IPS 제공) © 뉴스1

◇반도체·디스플레이·기계금속… '경쟁력 강화' 앞장 서는 소부장 기업들

반도체 장비 전문기업인 '원익IPS'는 2020년 현재 국내 선두 기술그룹으로 꼽힌다. 전체 매출규모로 봐도 삼성전자 계열사인 세메스에 이어 2위에 해당하는 6692억원이다.

원익IPS는 수 년 전부터 일본·미국 의존도가 높은 미세공정용 CVD(화학 기상 증착법), ALD(원자층 증착법) 장비의 기술 자립화에 기여해왔다. 최근에는 소재부품 기술개발 R&D를 통해 새로운 국산화 장비도 진행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원판(웨이퍼) 반송 장치 기업인 라온테크, 히터 기업인 미코 등과 함께 핵심 부품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부품 전문기업인 '도우인시스'도 주목할 만한 성과를 올리고 있다. 2017 상반기 우수 특허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도우인시스는 삼성디스플레이와의 공동 R&D를 통해 접을 수 있는 0.1㎜ 이하의 투과율 특성이 높은 초박형 윈도우(UTG) 소재를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UTG는 기존 폴더블폰에 사용하는 투명 폴리미이드인 (CPI, Colorless Polyimide)가 스크래치에 약하다는 단점을 보완해 개발된 것으로, 올해 삼성전자가 출시할 예정인 갤럭시폴드2에 적용될 예정이다.

세라믹 비드.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 뉴스1
세라믹 비드.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 뉴스1

국내에서 유일하게 '세라믹 비드'를 생산하는 기업인 쎄노텍도 모범 사례로 손색이 없다. 세라믹 비드는 각종 전자기기에 많이 사용되는 적층 세라믹콘덴서(MLCC)나 리튬이온 배터리 등 무기물 원재료를 미세하게 분쇄하는 데 사용되는 소재다.

수년 전만 해도 일본에서 시장을 독점하고 있었지만, 쎄노텍이 과감하게 뛰어들었다. 0.1㎜ 비드를 시작으로 적극적인 개발에 나섰고, 일본의 수출규제와 맞물려 납품이 성사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0.05㎜ 비드도 국내 최초로 개발에 성공해 국내 대기업에서 테스트를 받고 있다.

전자제품·반도체 등에 사용되는 소재인 본딩와이어 분야 국내 1위 기업인 엠케이전자도 빼놓을 수 없다. 엠케이전자는 일본기업이 시장을 선점한 '은(Ag) 합금와이어' 개발에 뛰어들었다. 자본력 부족에 애를 먹었지만 일본 수출규제에 따른 정부 지원을 받으면서 날개를 달았고, 코로나 시국에서 국내외 물량까지 증가하면서 올 1분기에만 매출액 1208억원, 영업이익 40억원 등의 괄목할 성과를 냈다.

전문 화학 회사인 '켐트로스'도 지난해 한국화학연구원에서 고급 도장(PDVF) 제조 공정 기술을 인정받은 후 국산화에 성공했다. 국내 취약 분야 중 하나인 불소화합물 분야에서 선도적인 연구개발에 성공한 사례로, 향후 1000억원 이상의 수입대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평이다.

/뉴스1 DB © News1
/뉴스1 DB © News1

◇"기술력에 '정부지원' 날개 달아 빠른 성장…꾸준한 투자 필요해"

업계 관계자들은 일본이 수출 규제를 단행한 지난 1년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전화위복'의 과정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일본에 의존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분야였지만, 정부와 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실행에 옮기면서 반전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이 그간 기술력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자본력이 부족했던 것이고, 못하는 것이 아니라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라면서 "이미 갖추고 있던 기술력에 정부 지원 등 환경이 갖춰지면서 빠른 속도로 일이 진행됐다. 당사자인 우리 조차도 예상하지 못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도 "확실하게 변화의 기반이 마련된 것 같다"면서 "수요기업들의 입장에서도 그간 일본산 부품을 쓰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지만, 이번 기회를 계기로 조금은 인식이 바뀔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소부장 분야의 특성상 하루 아침에 일본의 기술력을 완전히 따라가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에 좀 더 시간을 두고 봐야하고, 꾸준한 지원과 투자도 병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소부장 기업이 대부분 중소기업인 만큼 인력이나 자본력이 많이 부족할 수밖에 없고, 원천기술도 아직은 부족한 점이 있다"면서 "소부장 분야의 경쟁력을 키우려면 끈기가 있어야 한다. 한 두해 만에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닌만큼, 지속성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 업계 관계자도 "'지원이 뒷받침되면 우리도 할 수 있더라'라는 말은 바꿔말하면 '이전까지는 지원이 부족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면서 "현재 기술개발을 진행하는 기업들은 물론, 앞으로 더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기술에 도전하는 기업이 계속 나오기 위해서라도 소부장에 대한 관심이 '일회성'에 그쳐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추가적인 경쟁력 강화 전략을 추진할 계획이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전기전자 등 기존 품목들 뿐 아니라 바이오와 소프트웨어 등까지 핵심 관리 품목으로 지정하고 정부 R&D를 확충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소부장 2.0 전략'을 오는 9일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는 공세적 소부장 정책으로의 전환을 통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국내외 첨단산업이 모두 모이는 세계적 제조클러스터로의 도약을 기대하고 있다.


starburyn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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