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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현실 향해 발언한 화가들, 오늘날 현실은 어떻게 생각할까

'현실과 발언' 동인 16인 '그림과 말 2020'展

(서울=뉴스1) 이기림 기자 | 2020-07-03 09:30 송고 | 2020-07-03 10:40 최종수정
'그림과 말 2020' 홍보 이미지, 왼쪽부터 손장섭, 주재환, 심정수, 성완경, 김건희, 김정헌, 노원희, 정동석, 민정기, 신경호, 임옥상, 이태호, 강요배, 박재동, 안규철, 박불똥.(학고재 제공)© 뉴스1
'그림과 말 2020' 홍보 이미지, 왼쪽부터 손장섭, 주재환, 심정수, 성완경, 김건희, 김정헌, 노원희, 정동석, 민정기, 신경호, 임옥상, 이태호, 강요배, 박재동, 안규철, 박불똥.(학고재 제공)© 뉴스1

미술(美術)은 말 그대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예술이다. 그러나 독일의 대표적인 표현주의 화가 케테 콜비츠(1867~1945)는 이를 부정한다. 그는 미술에서 아름다움만을 고집하는 것은 삶에 대한 위선이라고 했다.

1980년 모습을 드러낸 한국의 '현실과 발언' 동인 소속 청년예술가들의 생각도 이와 같았다. 그들은 화가가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되며, 미술은 자유로운 발언을 할 수 있는 소통의 기능을 통해 삶의 맥락 안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당대 혼란스러운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미술로 표현하며 시대와 소통했다.

'현실과 발언' 동인들이 어느덧 청년에서 중노년이 됐다. 이들이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전시가 오는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학고재에서 열리고 있다. '현실과 발언' 동인 작가 16명의 작품을 모은 '그림과 말 2020' 전시는 1980년대, 그리고 2000년대 이후의 현실에 대해 발언하는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전시는 동인의 창립 40주년 특별전 성격을 띤다.

민정기 작가와 심정수 작가의 작품들이 학고재 본관에 전시된 모습.© 뉴스1 이기림 기자
민정기 작가와 심정수 작가의 작품들이 학고재 본관에 전시된 모습.© 뉴스1 이기림 기자

이번 전시는 '현실과 발언'이 1982년 덕수미술관에서 개최한 '행복의 모습' 전시를 기록하면서 발간한 회지 '그림과 말'의 제목과 태도를 참조했다. 이들은 당시 '미술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돕고,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길 희망하며 회지를 발간했다. 비록 '현실과 발언'은 1990년 해체했지만, 각자 작품활동을 해온 것을 토대로 전시에 작품을 내놨다.

전시에 나선 작가는 강요배, 김건희, 김정헌, 노원희, 민정기, 박불똥, 박재동, 성완경, 손장섭, 신경호, 심정수, 안규철, 이태호, 임옥상, 정동석, 주재환 등 16명이다. 전시는 학고재 본관 입구에 들어서면 볼 수 있는 안규철의 작품으로 시작한다.

본관 중앙에 있는 심정수 작가의 조각 '사슬을 끊고'는 1980년대 군사독재정권 아래 억압받는 청년의 초상을 표현한다. 사슬과 장벽을 끊어내려 노력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신관 입구에 들어서면 매일 이름 없이 목숨을 잃는 약 6명의 근로자를 기리는 이태호 작가의 '무명 사망 근로자를 위한 비'를 만날 수 있다. 이 작가의 작품 중에는 전두환, 김영삼, 부시 등 전직 대통령들뿐만 아니라 최서원씨(개명 전 최순실) 등에게 수여한 반어적인 의미를 담은 '상패' 연작도 인상 깊다.

1978년 제3땅굴 발견을 보도한 신문을 재료로 콜라주한 작품 위에 성에가 낀 듯한 뿌연 막을 씌운 임옥상 '신문-땅굴 1~6'도 만날 수 있다. 이는 군부독재 시절 반공 심리를 이용해 국민의 눈을 가리려 한 정부의 모습을 투영하는 작품이다.

신경호 작가가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뉴스1 이기림 기자
신경호 작가가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뉴스1 이기림 기자

신경호의 작품도 눈길을 끈다. 광주 출생인 그는 1980년 5월18일 민주화운동을 기리는 작품 '넋이라도 있고 없고-초혼'(1980)을 내놨다. 전두환 정권 당시 '빨갱이 단체 상징 깃발 같다'며 압류 당한지 20여년 만에 돌려받은 작품이다. 또한 5·18민주화운동 이후 사라진 넝마주이, 구두닦이, 거지 등 실종된 무연고자들을 생각하며 제작한 작품, 척박한 현실에 일침을 가하던 언론인들을 떠올리며 만든 작품 '칼보다 강한 그대에게' 등이 소개된다.

동인의 고참격인 김정헌 작가는 "요즘엔 소위 페북 등 SNS 같은 인터넷이 발달해 더 말이 많아진지도 모른다. 말이 많아진 게 내 탓인가? 페북 탓인가?"라며 "아직도 나는 ‘그림과 말’이라는, 즉 ‘그림의 가벼움과 말의 무거움’이라는 현발 신화에 사로잡혀 거기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는지도 모른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40년 전부터 지금까지 현발은 중력을 뿌리치고 하늘 높이 날아오르려고 한다"며 "이제 마지막 '날아오르기'는 죽음으로 '승천'하는 일만 남았다"고 했다.


lgir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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