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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거래사] 사회복지사에서 ‘DMZ 양봉업자'로 변신한 박정선씨

어릴 적 부친과의 추억이 벌통으로 이끌어
귀농 초보의 조언 "끝까지 버티면 보람도 따라온다"

(파주=뉴스1) 박대준 기자 | 2020-07-04 10:00 송고 | 2020-09-24 09:37 최종수정
편집자주 매년 40만~50만명이 귀농 귀촌하고 있다. 답답하고 삭막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을 통해 위로받고 지금과는 다른 제2의 삶을 영위하고 싶어서다. 한때 은퇴나 명퇴를 앞둔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겼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30대와 그 이하 연령층이 매년 귀촌 인구의 4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농촌에서 어촌에서 산촌에서의 삶을 새로운 기회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뉴스1이 앞서 자연으로 들어가 정착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예비 귀촌인은 물론 지금도 기회가 되면 훌쩍 떠나고 싶은 많은 이들을 위해.
DMZ 안에서 양봉업으로 귀농한 박종선씨. © 뉴스1
DMZ 안에서 양봉업으로 귀농한 박종선씨. © 뉴스1

“수 천 마리의 벌들이 여왕벌을 중심으로 질서정연하고 부지런하게 일하고 번식하는 모습에 푹 빠져 벌을 키우게 됐어요.”

지난 2016년 경기 파주시로 귀농해 양봉을 하고 있는 박정선씨(41)는 귀농 전까지 6년간 서울과 양평의 노숙인 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했다.
귀농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고 했다.  

박씨는 “양평의 노숙인 쉼터에서 근무할 때 그곳에 입소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농사를 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그들의 자활을 돕기 위해 양봉을 체험하던 중 ‘나도 벌을 키워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박씨의 기억 언저리에 자리한 유년 시절의 추억도 한 몫 했다고 털어놨다.
“어느 날 쉼터 입소자들과 함께 벌통을 여는 순간 몰려온 특유의 꽃가루 냄새가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취미로 벌통 2개를 키우던 소중한 추억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귀농 6년차 박종선씨. © 뉴스1
귀농 6년차 박종선씨. © 뉴스1

이에 박씨는 어머니가 혼자 살고 계시던 파주시에서 귀농을 하기로 결심했다. 돌아가신 부친은 평안남도 출신의 실향민으로, 생전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젖어 사셨다. 어릴 적부터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란 그로서는 북녘을 바라보는 파주가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터를 잡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기존 양봉농가들과 일정 거리를 둬야 하고 바람과 습도, 밀원수의 분포도 고려해야 했다. 눈에 들어오는 장소는 주변 농가들이 거부하거나 너무 외진 곳이었다. 그러던 중 지인의 소개로 민간인통제구역 안에 위치한 통일촌 인근에 벌통을 놓을 자리를 잡고 지난해 초 결혼 후에는 아예 집도 이곳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박씨는 민통선 만의 희소성에 대해서도 자랑했다.        

“외부에는 농지정리 등으로 필요 없는 식물들을 제거하지만 민통선 안은 자연 그대로의 식물들이 많다. 농약으로부터의 위험도 적다. 특히 개량하지 않은 토종 밤나무가 많아 이곳 밤꿀은 다른 곳과 맛이 다르다”

대부분의 귀농인들이 겪었던 것처럼 시행착오도 많았다.

“처음 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배수로를 너무 얕게 판 탓에 비가 내린 후 물이 덜 빠져 애를 먹었다”고 당시 곤란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벌써 5년차 양봉업자인 박씨는 현재 생산된 꿀을 ‘벌들아’란 브랜드로 생협 등에 납품하고 있다. 수익은 넉넉하지 않지만 언젠가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벌꿀을 찾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지난해에는 결혼도 해 소중한 가정도 꾸렸다.

“막상 농사를 해 보니 농민들에게는 쉬는 날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침 일찍 나가고 피곤한 몸으로 집에 돌아오면 아내와 신혼을 즐길 여유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대화도 줄었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아내와 약속했다. 농부에게도 ‘빨간 날’(휴일)이 필요하다고”

박종선씨가 생산해 판매 중인 '벌들아' 브랜드의 벌꿀. © 뉴스1
박종선씨가 생산해 판매 중인 '벌들아' 브랜드의 벌꿀. © 뉴스1

귀농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해 줄 말이 없냐는 질문에 박씨는 쑥스러운 듯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부터 수지타산이 안 맞으면 시작하기도 전 포기한다. 경험해 보니 초보 농사꾼에게 시작부터 수지타산이 맞을 수가 없다. 농사를 좋아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 그러나 끝까지 버틴다면 그만큼 보람이 따라온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이뤄지기 직전 박씨에게는 소중한 2세가 탄생했다. 자신이 그랬듯이 박씨는 새로 태어난 아이가 이곳에서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가길 희망할지도 모르겠다.    

한편 박정선씨는 지난 2018년 시작된 파주시 청년농업인 영농정착지원 사업의 최초 선발생이자 1호 졸업자다. 파주시는 이들 청년농업인들에게 영농정착금과 대출, 컨설팅, 농지지원 등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djpar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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