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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성의 뉴스1픽]"아빠 나 콜 수 못채웠어"…여고생 죽음 내 몬 '해지방어' 사라지기까지

'해지방어' 콜센터 직원 자살후 제도 개편…법 개정은 아직
7월부터 인터넷-TV 결합상품 사업자 변경시 자동해지

(서울=뉴스1) 강은성 기자 | 2020-07-06 07:35 송고 | 2020-07-06 10:49 최종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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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3월 전북 전주시 대우빌딩 앞에서 열린 '아빠 나 콜 수 못채웠어' LGU+고객센터 현장실습생 추모제 참가자들이 고인을 추모하며 묵념을 하고 있다.2017.3.17/뉴스1 © News1 문요한 기자

2017년 1월, 한파가 몰아치던 날 전라북도 전주의 한 저수지 차가운 물 속에서 아직 졸업장도 받지 못한 여고생 '은주'(가명)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습니다. 은주는 특성화고등학교에 다니며 한 통신사 협력업체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갔었죠.

통신사 가입자들이 초고속인터넷이나 인터넷TV(IPTV)를 해지하려고 전화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입자를 붙들고 늘어져 해지를 못하도록 하는 '해지방어' 업무가 은주에게 떨어진 업무였습니다.

밝고 독립적인 성격의 은주는 실습기간 동안 해지방어 업무 자체에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은 데다가 이용자들의 전화폭력에도 상당부분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결국 은주의 죽음 이후 정부는 통신사들의 '해지방어' 실태를 조사해 중징계를 내렸지만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잃은 은주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해지방어 업무를 하다가 목숨까지 내던진 극단적인 선택은 은주 하나로 그치지 않습니다. 은주가 저수지에 몸을 던지기 3년 전, 똑같은 업체에서 동일한 '해지방어' 업무를 하던 콜센터 직원도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대체 해지방어가 뭐길래 콜센터 직원들이 목숨마저 내던지는 것일까요. 콜센터에 전화를 거는 '고객님'들이 모두 악마였던 것일까요. 

서울인권위원회는 서울시가 120다산콜센터 상담사들을 부당한 노동인권 침해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실질적 개선 대책을 마련 할 것을 권고했다. 이번 권고는 인권위 출범 이후 첫 정책 권고로서 전국 최초로 콜센터 상담사들의 열악한 인권상황을 다각도로 파악하고 근본적인 개선책 마련을 제시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동대문구 120다산콜센터. 2014.2.5/뉴스1

통신사의 '해지방어' 실태를 조사했던 한 공무원의 얘기를 들어보니 기가 막힙니다. 

이용자가 초고속인터넷과 IPTV 결합상품을 해지하려고 해당 통신사에 전화를 겁니다. 그러면 해지 신청 전화를 받은 콜센터 직원들은 일단 '담당팀을 연결해주겠다'면서 전화를 다른 곳으로 돌립니다. 

한번씩 전화를 돌릴때마다 연결도 잘 되지 않습니다. 십수분씩 기다리기는 일쑤지요. 치밀어오르는 화를 참아가며 기다린 끝에 연결이 되면 전화를 받은 상담사는 몇번 질문을 하고 그때마다 인적사항을 캐묻다가 결국은 "담당자가 따로 있는데 연결해드리겠습니다"라며 또 다시 전화를 돌립니다.

이렇게 전화를 뱅뱅 돌리다가 툭 끊어지면 이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반복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단순 변심'으로 해지를 하려 했던 이용자들은 바쁘고 짜증이 나서 '다음에 하자' 이런 식으로 상당수 해지를 '포기'한다고 합니다. 이러면 '해지방어'에 성공한겁니다. 

이사 등으로 반드시 해지를 해야 하는 이용자들은 연결이 될 때까지 이 과정을 몇차례나 반복합니다. 간신히 상담원에게 연결되면 해지를 하고 싶다는 이용자에게 상담원들은 "오늘 날씨가 참 덥지요. 아주 습하네요", "요즘 뉴스 보셨어요? 정세가 너무 불안정 한 거 같아요"와 같이 해지 업무와 상관없는 전혀 엉뚱한 대화를 걸며 말을 돌리기도 했다고 하네요. 

고등학교를 아직 졸업하지도 않았던 은주가 맡은 해지방어 부서는 이처럼 '막고 막는' 해지방어로 화가 치민 고객님들의 '욕받이'였습니다. 

콜센터 노동조합 대책위원회(대책위)가 9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 콜센터 상담사들이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며 인권위에 현장조사를 통한 콜센터 노동인권 조사와 개선 권고를 요청했다.2019.1.9( 콜센터 노동조합 대책위원회 제공)© News1

규제당국인 방송통신위원회는 은주가 목숨을 잃었던 2017년, '해지방어' 업무가 지극히 비인간적이며 이용자들에게도 사실상 '강매' 수준의 재계약을 강요한다는 지적에 따라 실태를 조사해 과징금 철퇴를 내렸습니다. 

방통위가 계약 해지 제한 문제로 사업자를 제재한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이같은 해지방어가 '관행'이라는 이유로 계속 돼왔던 셈입니다. 

당시 방통위는 앞으로 이용자들이 이런 불편함을 겪지 않도록, 상담원들이 비인간적인 회사의 '목표 할당'에 시달리며 욕받이 노릇을 하지 않도록 해지 절차를 간소화하기로 했습니다. 

그로부터도 3년의 시간이 더 걸렸네요. 

방통위는 이달 1일부터 초고속인터넷이나 IPTV 결합상품을 해지할 때 가입회사를 바꾸면 이전 회사는 이용자가 별도로 해지 신청을 하지 않아도 자동해지가 되도록 제도를 개편했습니다. 현재는 시범운영중이지만 오는 25일부터는 정식 시행된다고 합니다. 

이동전화 번호이동과 달리 유선상품은 셋톱박스나 인터넷 공유기 등 장비를 회수해야 하기 때문에 장비 철거 등을 위해 이용자에게 연락은 할 수 있지만, 절대 해지를 방해하거나 시간을 질질 끄는 과거와 같은 행태는 반복하지 않기로 사업자들은 약속했습니다. 

법 개정을 통한 강제 준수가 아닌 사업자 '자율규제'이기 때문에 사업자들은 자동해지가 되도록 연계 전산시스템을 구축하고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를 통해 '원스톱 자동해지' 시스템을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번호이동을 '법'으로 규정한 이동통신과 달리 유선사업 부문은 아직 법 개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방통위는 사업자들의 자율 참여 외에 이동전화처럼 서비스 이전을 제도화 하는 법 개정을 하려 했지만 지난 20대 국회는 이 법에 별 관심이 없었는지 처리하지 않았습니다. 해당 법안은 그대로 폐기됐지요. 

은주의 죽음 이후 비록 3년반이나 걸렸지만 사회는 조금은 '변화'했습니다. 은주와 함께 일했던 '언니'들은 이제 해지방어 목표를 할당받지 않아도 되고, 이용자들도 보다 편리하고 손쉽게 서비스를 바꿀 수 있게 됐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리 어렵지도 않은 일인데 너무 오래 걸린 것 같아 좀 속상합니다. 은주도 조금은 하늘에서 마음이 편할까요.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콜센터 감정노동자 노동인권 보장을 위한 촛불문화제에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2013.5.23/뉴스1



esth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