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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군대] 소원수리 대신 靑청원 찌른다…자정능력 부재?

(서울=뉴스1) 이원준 기자 | 2020-06-26 07:00 송고 | 2020-06-30 14:54 최종수정
편집자주 '요즘 군대'는 우리 군과 관련된 이야기를 소개하는 뉴스1의 연재형 코너입니다. 국방·안보 분야 다양한 주제를 밀도 있게 전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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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알 순 없지만 장병들 사이에선 이런 말이 통한다. 군 부대 소원수리나 헌병(현 군사경찰)은 믿지 말라고, 불합리한 일이 있으면 '청와대에 찌르라'는 말이다.

자정 의지가 별로 없는 군 내부 상황을 꼬집는 표현이다. 최고 상급자라 할 수 있는 대통령에게 문제를 제기할 정도로 유난 떨어야 조금이라도 바뀌는 게 있다는 자조적 뜻을 담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군대 관련 청원글이 종종 올라오곤 한다. 주로 군대 내부 부조리와 악·폐습을 폭로하는 고발성 내용이다. 청원글은 언론 보도를 통해 재확산된다. 최근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공군 '황제 병사'와 육군 '여단장 갑질' 사건이 대표적이다.

일반 장병이 온 국민이 읽을 수 있는 청와대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건 큰 부담이다. 신고자가 노출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국민신문고나 국방 헬프콜 같은 제도를 통해 상대적으로 '조용히' 애로사항을 신고하는 방법도 있다. 현재 군이 자체적으로 운영 중인 신고 제도만 20여개가 넘는다.

그런데도 청와대 청원을 이용하는 건 자신의 문제가 공론화돼 해결되길 바라는 간절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 24일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출석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도 이와 관련된 문제가 제기됐다.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 장관에게 "여러가지 군대 내 부조리를 지적하면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보복을 당한다"며 장병들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세태를 꼬집었다.

정 장관은 이에 "청와대 국민청원 같은 외부 도움을 받는 데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내부의 시스템이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강조하겠다"고 답변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2020.6.24/뉴스1 © News1 성동훈 기자

군 안팎에서는 일련의 청와대 청원 사태를 놓고 '요즘 병사들이 군기가 빠진 탓'이라는 뉘앙스의 목소리가 나온다. '청와대가 소원수리함이냐'는 지적도 들린다. 병사 휴대폰 사용 허가와 연관 짓는 의견도 있다. 모두 맞는 말일 수 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건 군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자정 능력이 있다면 목격하지 않았어도 될 모습이라는 사실이다. 청와대 청원에 이끌려 가는 게 요즘 군의 모습이다. 청원글 폭로 내용에 각 군 본부 감찰반이 투입되고 군사경찰 수사까지 이뤄지는 요즘이다.

이달 중순 청와대 청원을 통해 제기된 공군 '갑질 대대장' 의혹이 대표적이다. 논란이 된 대대장은 올해 1월 이미 폭언, 갑질, 사적 지시 등으로 상급부대 감찰조사를 받아 경고 처분이 내려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징계 이후 내부고발자를 색출하고, 감찰 조사에 응한 부대 장병들을 괴롭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자정 능력을 상실한 대표적 사례다. 청원자는 해당글에서 대대장의 2차 가해를 멈춰 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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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하게 청원글을 통해 △부사관을 통한 세탁물과 음용수 배달 △근무지 무단 이탈 △1인 생활관 사용 등 의혹이 제기됐던 '황제 병사' 논란은 군 감찰조사 결과 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병사가 부사관에 빨래를 심부름 시켰다'는 내용만 일부 사실관계가 확인됐다. 피부질환으로 공용세탁기 사용에 어려움을 겪자 소속부서 부사관이 올해 3월부터 총 13차례 세탁물을 부모에게 대신 전달해줬다는 것이 군이 내린 결론이다.

공군 관계자는 이 과정에서 대가가 오갔는지 여부 등은 군사경찰 수사로 드러날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힘들어하는 병사를 위한 선의의 배려가 규정에 위배되는 부분이 있었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특혜가 아닌 배려였다'는 취지의 발언이지만,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국민들 시선은 여전히 냉랭하다. 왜 특정인에게 배려가 집중된 건인지, 왜 다른 장병은 이러한 배려조차 못 받는 것인지를 묻고 있다. 보다 정확한 평가를 내리기 위해선 군사경찰 수사결과까지 기다려야 하겠지만,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기엔 부조리가 깊어 보인다.

'황제 병사' 의혹을 제기한 청원자는 글에서 이렇게 적었다. "부대가 자정하려는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판단 때문에 비위 행위를 폭로한다"고 말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이 소원수리를 대신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먼저 군이 자정능력을 갖출 필요가 있어 보인다.


wonjun44@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