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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인사이트] 합의 정신으로의 회귀

조항과 문안에 집착하며 책임 전가 말아야
'합의 정신 깨졌다' 인정하고 다시 새 전환점 찾아야

(서울=뉴스1) 서재준 기자 | 2020-06-25 13:00 송고 | 2020-06-30 14:54 최종수정
편집자주 2018년부터 북한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 동북아시아 정세는 급변했다. '평양 인사이트(insight)'는 따라가기조차 쉽지 않은 빠른 변화의 흐름을 진단하고 '생각할 거리'를 제안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2018.9.20/뉴스1 © News1 평양사진공동취재단

'강 대 강' 구도로 치닫던 남북관계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마치 장맛비가 과열된 상황을 식히는 듯하다.

지난 20여 일간 꽤 강도 높은 소나기를 맞는 듯했다. 북한에서는 연일 담화나, 발표, 보도가 나왔는데 센 내용이 격렬한 비난조로 나왔다.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쏟아져 나오던 비난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북한은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파괴했는데, 실제 폭약을 설치해 폭파했다. 이번 국면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이 이렇게 연출됐다.

접경지에서는 대남 전단(삐라)를 날리겠다고 공언했다. 규모는 최소 1200만 장이라는 것이 북한의 관영 매체의 보도 내용이었다. 전 전선(접경지)에서 청년 학생들이 동원돼 전단을 날리겠다고 밝혔다. 비공개 살포가 아니라 대대적인 공개 살포가 예상됐다.

동시에 군사분계선 일대에 확성기가 설치되는 것이 확인됐다. 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북한의 후속 대응은 대대적인 선전전으로 이어지는 모양새였다.

과정 과정에서 남북은 합의 위반 여부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전단 살포 문제와 접경지 일대에서의 선전전은 지난 2018년의 4.27 판문점 선언 위반에 해당하는 사안이었다. 우리 측의 "합의 위반" 주장에 북한은 "위반이라는 것을 몰라서도 아닐뿐더러 이미 다 깨진 북남관계"라는 언급으로 응수했다.

그러다 돌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대남 군사행동 계획 보류'를 발표하며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그런데 여론은 조금 과하게 급반전된듯하다. 사실 아직 남북 간 긴장은 풀리지 않았다.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은 김 위원장의 군사행동 계획 보류 발표 직후 담화를 통해 "자중이 위기극복의 열쇠"라며 "우리가 공식적인 대남 입장 발표에서 다시 험한 표현들을 쓰지 않도록 하려면 현명하게 사고하고 처신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보류'가 '재고'가 되지 않도록 하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북한의 발언에 어느 정도 '엄포'가 있다고 하더라도 연락사무소는 결국 파괴됐으며, 북한은 여전히 1200만 장의 전단을 가지고 있다. 접경지에 확성기가 철거됐지만, 이미 들여놓은 발자국이 사라질 리 없다. 지금 남북관계는 회복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남북 간 합의는 손상됐다. 몇 가지 조항만 위반됐으니 큰 틀에서는 문제가 없다거나, 조항의 세부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아 위반 내지는 파기를 논하기에는 모호하다는 주장은 특정 세력의 논리일 뿐이다. 지난 2018년에 남북이 보여 준 합의 정신은 이미 깨지고, 사라졌다.

지금 남북관계는 정부가 던져 놓은 교류협력 사업 재개를 통해서 회복될 일은 아니다. 관념적이고 순진하게 들릴지 몰라도 합의 정신 자체를 재정비해야 회복될 관계다. 뭘 주고, 받겠다고 '딜'을 공언할 상황이 아니라는 듯이다.

판문점 선언 위반이니, 군사분야합의 위반이니 조항을 따지고 마치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상황 전개는 아주 살짝, 간신히 식힌 현재 상황을 다시 달구게 될 뿐이다.

구체적으로는 합의 정신이 깨진 것을 인정하는 남북 지도자의 발언이 필요하다. 이는 남북관계의 또 한 번의 전환이 필요함을 공표하는 셈이 된다. 일정 기간 동안의 소강상태는 이런 면에서 오히려 호재가 될 수 있다.

깨진 합의 정신을 어떻게 되살릴 것인지는 그다음 상황들이 방향과 길을 제시할 것이다. 우리는 흔들리지 않았고, 작은 상처를 치유하면 될 것이라고 희망적 사고를 한다면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것 같다.


seojiba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