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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대한민국 노예' 9만9천명, 부정할 수 있나?

"우리나라 500명당 1명꼴 노예 존재"
창녕 여아·N번방 피해 정부의 책임 있어

(서울=뉴스1) 최현만 기자 | 2020-06-23 08:25 송고 | 2020-06-23 08:30 최종수정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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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제도는 전 세계적으로 자취를 감췄다. 영국에서는 1833년 노예해방령이 의회를 통과하면서, 미국은 남북전쟁에서 북부가 이기고 수정 헌법이 통과하면서 노예제도가 사라졌다. 우리나라에도 갑오개혁 때 신분제가 폐지되면서 머슴, 노비 등에 대한 신분이 사라졌다. 하지만 현대에도 '노예'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뜬금없는 노예 얘기가 나온 건 한 글로벌 시민단체에서 나온 통계 때문이다. 여기에 따르면 대한민국에도 아직 노예가 존재한다고 한다. 우스개가 아니다.

국제인권단체 '워크프리(Walkfree)'는 2017년에 국제노동기구(ILO)와 협력해 '현대판 노예'와 관련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들이 말하는 현대판 노예란 강제 노역 혹은 성 착취를 당하거나 강제결혼을 하게된 사람 등을 의미한다. 단체는 2016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 약 4030만명의 현대판 노예 피해자가 있으며 이 중 71%는 여자고 25%는 아이들이라고 밝혔다.

워크프리는 2018년에 '세계노예지수'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약 9만9000명의 사람들이 노예 상태로 살고 있다. 이는 500명당 1명꼴이며 1위가 노예 비중이 가장 높다고 봤을 때 전체 167개국 중 137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단체에서 이런 통계를 발표하는 이유는 노예제도는 사라졌지만 노예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다.

© News1 김일환 디자이너
© News1 김일환 디자이너

2020년에는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린 사건이 연달아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중 하나가 'N번방' 이다. 가해자들은 피해자를 협박해 아동 성 착취물을 제작하고 돈을 벌었다. '박사방'의 회원들은 성착취 피해자들이 새끼손가락을 얼굴 옆에 댄 포즈를 취하도록 해 스스로 '노예'임을 인증하도록 했다. 가해자들은 그들을 노예라고 불렀다.

경남 창녕에 사는 9살 여아는 부모의 극심한 학대를 받았다. 그는 발견 당시 눈에 멍이 들고 손가락이 심하게 훼손돼 있었다고 한다. 아이의 계부와 친모는 불에 달궈진 쇠젓가락으로 아이의 발등과 발바닥을 지지고 도망치지 못하게 쇠사슬로 아이의 몸을 묶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사랑해줘야 할 부모한테서 인신의 구속을 당하는 노예와 같은 대우를 받았다. 그는 겨우 집에서 탈출해 빌라 내 물탱크실에 장시간 숨어있다가 나와 신고했다.

워크프리에서는 현대판 노예를 방지하기 위해서 '정부의 대응'을 중요하게 본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 분야에서 전체 10개 등급 중 뒤에서 세 번째인 CC를 받았다.

정부가 적절한 대응을 하고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 이 단체는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진다.

국가가 대중들에게 신고를 위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는가. 가장 일선에 있는 공무원들이 노예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적절하게 식별하는가. 처벌 정도는 범죄의 심각성과 비례하는가.

9살 여아가 목숨을 걸고 가까스로 빠져나오기 전에 그를 신고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아가 다녔던 창녕군의 초등학교는 학대 정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담임교사가 여아의 집을 찾아갔지만 친모가 만남을 거절해 아이의 상태를 알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사이버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낮은 처벌 수준이 N번방을 확산시키는데 한몫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24)는 재판에 넘겨졌지만 2018년 9월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손씨가 2년8개월간 사이트를 운영하는 동안 회원 수는 128만여명에 달했다.

현대판 노예가 더이상 나타나지 않도록 하려면 무엇을 해야하나. 우선 정부가 경각심을 가지고 재발 방지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범죄의 심각성에 비례해 처벌 수준을 정하고 일선에서 노예나 다름없는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빠르게 파악해 도울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chm6462@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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