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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듯…초여름에 만난 태안

13년 전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
위로를 건네는 섬, 해안길, 숲

(충남=뉴스1) 윤슬빈 여행전문기자 | 2020-06-12 05:00 송고 | 2020-06-12 09:58 최종수정
드론으로 바라본 가의도 

평범한 일상이 더없이 소중한 요즘. 행복했던 순간이 지나고서야 그것이 결코 노력 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왠지 다신 오지 않은 것은 아닌 지 걱정이 밀려온다.

울적함이 깊어지기 전에 충남 태안으로 여행을 떠나 위로를 받고 왔다. 6월 초, 태안은 쪽빛 바다가 펼쳐지고, 푸른 녹음으로 가득했다. 마치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아름다웠다.  

검은 기름 덩어리가 바다를 뒤덮었던 건 13년 전이다. 많은 사람은 옛 모습을 찾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123만명의 봉사자들이 힘을 모아 '기적'을 만들어 냈고, 지금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살려냈다.

위로를 건네는 태안의 섬과 해안길, 숲을 만나보자. 
육쪽마늘의 본고장인 가의도의 초여름 풍경© 뉴스1 윤슬빈 기자
◇때 묻지 않은 태안이 있는 '섬'

태안과 쪽빛 바다. 쉽게 어울리지 않는다. 서해는 갯벌이 있기에 바닷물이 맑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을 갖기 쉬운데 태안의 섬들로 가면 생각이 달라진다. 
 
태안엔 안면도를 비롯해 섬이 114개나 된다. 안면도와 함께 유일한 유인도가 바로 가의도다. 소위 말하는 '그림 같은 섬'의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섬이다. 몽돌해변을 배경으로 동백나무와 떡갈나무 등 원시 천연림 속에 아기자기한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섬은 지금 유난히 초록빛으로 물들어 있다. 가의도는 '육쪽마늘의 원산지'다. 육쪽마늘은 6~8개의 마늘쪽이 있는 품종을 말하는 데, 일반 마늘보다 아린 맛이 덜하고 달면서 고소하다. 특히 가의도 육쪽마늘은 유명한 셰프들도 인정할 정도로 맛이 좋다고 알려졌다.
 
6월이면 마늘 수확이 시작된다. 다 큰 마늘 줄기는 바람이 살랑일 때마다 물결을 이루며, 은은한 마늘 향을 뿜어낸다.  
궁시도에서 사진 촬영을 하는 여행객© 뉴스1 윤슬빈 기자
궁시도에서 둥지를 튼 괭이갈매기© 뉴스1 윤슬빈 기자
가의도보다 더 때묻지 않은 천혜의 섬을 찾는다면 궁시도가 있다. 서해에 외롭게 떠 있는 섬이자, 어느 곳에서도 보기 힘든 희귀한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면적 0.15㎢, 해안선 길이 0.3㎞의 이 섬은 하얀 백사장과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언뜻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의 파타고니아 같기도 하다. 

파타고니아가 '펭귄의 섬'이라면 궁시도는 '괭이갈매기의 천국'이다. 여길 보아도, 저길 보아도 갈매기 천지다. 절벽이며 하늘 위엔 수천, 수만마리의 갈매기가 날아다니며 장관을 이룬다.  

괭이갈매기가 왜 많을까. 궁시도에서 약 2.86㎞ 떨어진 곳엔 국내 대표적인 괭이갈매기 번식지인 난도가 있다. 난도에서 자리를 뺏긴 괭이갈매기들이 둥지를 틀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풍경을 갖추게 된다.  
 
가의도와 궁시도를 가려면 안흥항에서 배를 타야 한다. 각 섬은 배로 약 30분, 1시간 30분 걸린다. 가의도로 가는 길에 만나는 해안선만 봐도 섬여행은 만족 그 자체다. 사자바위, 독립문바위(아기 업은 코끼리바위)와 거북바위 등 기암괴석이 펼쳐진다.
해변길 5코스 노을길 © 뉴스1 윤슬빈 기자
◇쪽빛바다로 향하는 '해안길' 

제주에 올레길이 있다면 태안엔 해변길이 있다. 천천히 바다와 숲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길이다. 태안은 굽이굽이 리아스식(불규칙하고 복잡한 톱니형) 해안을 따라 독특한 해안생태계를 갖고 있어 국내 유일의 해안국립공원이 있다.

해변길은 약 100㎞나 되는데, 이 길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해안국립공원을 가장 가까이 제대로 만끽하게 된다. 학암포를 시작으로 바라길, 소원길, 파도길을 지나 솔모랫길, 천사길, 노을길, 새별길, 바람까지다.
 
그중 꼭 가야 하는 길이 있다면 '해변길 5코스 노을길'이다. 해안 동식물의 보고인 기지포 해안사구에서부터 태안의 대표 여행지로 할 수 있는 '꽃지 해변'까지 잇는 구간이다.
 
이 길이 재미난 이유는 해안사구와 소나무숲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바닷가에 바로 인접한 해안사구는 신비롭다. 척박할 것 같은 모래 위로는 풀과 꽃으로 이루어진 염생식물이 뿌리내렸다. 사구 뒤로는 울창한 곰솔 숲이 펼쳐진다. 바닷가 숲속에서 서식하는 곰솔은 해송이라고도 불린다.
드론으로 찍은 바람아래해변
한적한 해변을 거닐고 싶다면 7코스 바람길도 좋다. 황포항을 시작으로 운여해변, 장삼해변, 장동해변, 바람아래해변 등 안면도의 최남쪽 해변을 지나는 코스다. 총 거리는 16㎞로 약 5시간 걸린다. 그중 바람아래해변은 끝없는 해안선과 함께 마치 사막과 같은 모래언덕이 펼쳐지는 해변이다.

'바람아래'라는 이름도 모래언덕 아래로 바람도 비껴간다고 하여 지어졌다. 이곳은 멸종 위기종 2급인 '표범장지뱀'이 서식하여 특별보호구역으로 관리되고 있다.

옷점항은 인근 군산항과 옷감 교역이 활발히 이루어졌던 곳이며, 태안 해변길의 남쪽 끝에 자리한 영목은 항구로 널리 알려진 포구마을이다. 
안면도 휴양림© 뉴스1 윤슬빈 기자
◇걷기만 해도 힐링되는 '숲' 

바다나 갯벌만 있을 것 같은 태안엔 숲이 많다. 특히 소나무가 유명하다. 안면도의 경우 조선왕조 500년 동안 왕실림으로 자리 잡았다. 이곳에 자란 큰 소나무는 궁궐을 짓는데 가장 질 좋은 재목으로 여겨져 왕실에서 '안면송'이 '안면송'이란 이름을 하사했다. 안면송은 임진왜란 때 거북선 등 주요 함선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고도 전해진다. 
 
이 소나무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안면도 자연휴양림'이다. 국내 유일의 소나무 단순림으로서 수령 100년 내외의 안면송 천연림이 430ha(헥타르)에 집단적으로 울창하게 자라고 있다. 휴양림으로 들어서면 시원스레 쭉쭉 뻗어 오른 소나무들에서 뿜어 나오는 솔향에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다.

휴양림만 딱 보고 돌아서기엔 아쉬움이 남을 수 있다. 주차장을 기준으로 반대편엔 안면도수목원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면도수목원 내 테마 정원© 뉴스1
수목원 내에 아산정원을 비롯해 생태습지원, 지피원, 식용수원 등 화려하지는 않지만 자연미를 그대로 살려 정겨운 정원들이 잘 조성돼 있다.
 
우리나라 전통정원을 재현한 아산정원의 경우 사계절의 매력을 잘 담아낸 곳이다.  지금 가면 팔각정 아래 수국이 꽃송이가 떨어질 듯 위태로울 정도로 탐스럽게 만개했 있다.  

조금 더 다채로운 볼거리와 이야깃거리가 있는 수목원을 찾는다면 천리포수목원도 좋다. 이곳은 미국계 귀화 한국인 고 민병갈 설립자가 40여 년간 일궈낸 우리나라 1세대 수목원으로 2009년부터 일부 지역이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이곳의 매력은 1만6000여 종류의 다양한 식물들을 볼 수 있는 동시에 청량한 파도와 고운 모래펄이 펼쳐진 바다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노을쉼터나 바람의 언덕은 아름다운 낙조를 감상하기 위한 최고의 명당으로 손꼽힌다.
천리포수목원에선 사계절 푸른빛을 머금은 곰솔 사이로 탁 트인 서해를 볼 수 있다.




seulbi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