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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에 숨이 턱, 다가서면 버럭'…택배기사 폭염 수난기

"마스크 쓰고 상자운반 불가능…계단 오르다 못견뎌"
"감염되면 어쩌라고…당장 떨어져라" 진상고객까지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2020-06-10 14:23 송고 | 2020-06-10 17:41 최종수정
10일 오전 7시쯤 서울 동남권 물류센터 단지 안에서 기사들이 택배 상자를 분류하고 있다.2020.06.10© 뉴스1이승환 기자
10일 오전 7시쯤 서울 동남권 물류센터 단지 안에서 기사들이 택배 상자를 분류하고 있다.2020.06.10© 뉴스1이승환 기자

"이토록 더운 날에 마스크 쓰면 숨 쉬는 것조차 힘듭니다."

10일 오전 7시쯤 서울 동남권 물류센터 단지 앞에 작업 조끼를 걸친 중년의 남성 택배기사 6명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3명은 마스크를 썼고 나머지는 쓰지 않았다. 마스크를 착용한 3명 중 1명인 김철수씨(가명·58)는 마스크를 턱 밑으로 내렸다. 구름 사이를 비집고 떠오른 강한 햇볕이 김씨와 그의 동료를 비추고 있었다.

김씨는 "마스크를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최근 날마다 기승을 부리는 '폭염' 때문이다. 기상청은 서울을 비롯한 중부 내륙과 경북, 전라 내륙 지역의 체감 온도가 33도 이상으로 치솟을 것으로 보고 해당 지역에 폭염 특보를 발효한 상태다.

"더운 날에 마스크 쓰면 갑갑하다는 건 다 알 것입니다. 그러나 마스크를 쓴 채 택배 상자를 들고 계단을 오르는 일은 경험하지 못했다면 절대로 그 고충을 모릅니다."

15년 차 택배기사 김철수씨의 말이다. 김씨 같은 노련한 택배기사의 사정만이 아니다. 건장한 체구의 젊은 택배기사도 이글거리는 햇볕이 부담스럽다 못해 두렵다.

직업 군인 출신으로 다부진 체격을 갖춘 강진호씨(가명·33)는 "마스크 쓰고 택배 상자를 운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그의 주요 배달지인 송파구 소재 A아파트 단지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았다. 5층짜리 건물이다. 택배를 옮기려면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숨이 차서 결국 마스크를 벗게 된다고 했다. 강씨는 "나이 들어서도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자신 없다"고 말했다.

택배기사마다 업무 시간과 수익이 다르다. 오전 7시에 출근해 자정까지 일한다는 60대 택배기사가 있었다. '특수고용직' 노동자 택배기사 대부분 수익원이 '수수료'라 자신이 일한 만큼 벌어들인다. 

택배업체들은 "성실하게 일하면 기사들은 월수익 500만~600만원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홍보하지만 무더운 나날이 이어지면서 '근면 성실 유지'는 힘들다는 게 택배 기사의 호소다.

10일 오전 서울 동남권 물류센터 단지 인근에서 휴식을 취하는 기사들.2020.06.10© 뉴스1이승환 기자
10일 오전 서울 동남권 물류센터 단지 인근에서 휴식을 취하는 기사들.2020.06.10© 뉴스1이승환 기자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덮쳤다. 물류단지 바깥에는 '코로나19 예방수칙' 현수막이 걸렸다. 물류센터 안 한복판에는 기찻길 모양의 대형 컨베이어 벨트에 자리 잡았다.

형광등처럼 흰빛을 쏟아내는 컨베이어벨트 판독 장치(스캐너)를 통과한 상자들이 분류 담당 기사 앞에 도착했다. 이들은 재빠른 솜씨로 지역 따라 상자들을 분류했다. 그들의 주변 바닥에는 땀방울이 찍혔다.

택배 수백 상자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붉은색으로 '꼭 당일배송 식품'이라는 적힌 상자가 보였다. '더 힘찬 녹용' '옥수수 수염차' '매실' 상품 상자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물류단지 안에서는 코로나19 관련 예방수칙 안내문은 잘 보이지 않았다.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에서 온 20대 남성은 영어로 "소 핫(So hot·너무 덥다)"이라는 탄식을 내뱉었다. 분류 작업 중인 그는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마스크 미착용 이유를 물었더니 그는 "소 핫"이라고 답했다. 

쿠팡부천물류센터에서 촉발한 코로나19 확진자가 100명대에 달하지만 물류센터 기사들은 쉴 수 없었다.

60대 남성 이광호씨(가명)는 조선소 관리직 직원이었으나 해당 사업장에서 직원이 사고로 숨져 책임지고 물러났다. 이씨는 오후 6시에 동남권 물류센터 단지를 찾아 12시간 이상 분류 관련 업무를 한다. 

이씨는 "이곳에서 일하는 기사 가운데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며 "하나뿐 딸을 생각하며 견디고 있다"고 말했다. 연거푸 한숨을 쉬던 이씨는 20대 '딸' 얘기를 하는 순간엔 잠시 미소를 지었다.

현장에서 만난 택배기사들은 "진상 고객이 가장 큰 애로"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가까이 다가가면 가까이 오지 말라고 화를 낸다고 한다. "감염이라도 되면 어떻게 하냐며 당장 떨어지라"는 고객이다. "가까이 오라"는 반품 고객도 있다. "자신의 눈앞에서 물건을 받아가야 믿을 수 있다"는 고객이다. 

오전 10시쯤 택배기사들은 상자들을 차량에 싣고서 배송지로 향하기 시작했다. 웃음 소리도 들렸고 한숨 소리도 들렸다. 1시간 뒤인 오전 11시 서울 기온은 30.1도를 기록했다.


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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