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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로운 타이밍에 발표된 대북 전단 조치…남북 '시그널' 오갔나

'백두혈통' 담화 직후 대북 전단 '막는다' 정부 입장 공표
날 선 언사 속 접촉 재개 가능성도

(서울=뉴스1) 서재준 기자 | 2020-06-04 16:23 송고 | 2020-06-04 17:08 최종수정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 로이터=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 로이터=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남북이 대북 전단(삐라) 문제를 놓고 공교로운 타이밍에 입장을 주고받았다. 남북이 표면적 갈등 속 접촉을 재개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4일 북한은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명의의 담화를 발표해 대북 전단에 대한 강도 높은 비난과 경고를 내놨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동생으로 직함이 무의미한 권한을 가진 김 제1부부장의 담화는 다른 어떤 북한의 공식 입장보다 무게감이 있는 것이다.

담화의 요지는 우리 정부가 대북 전단 살포를 막지 않고 있으며 이는 남북 합의 위반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논리였다.

북한의 주장은 남북 정상 간 합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지난 2018년 4월 27일 열린 정상회담의 결과물인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판문점 선언)'의 2항 1조에는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들을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하며 앞으로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기로 하였다"라고 명기돼 있다.

또 2018년 9월 평양 정상회담의 결과물인 9.19 군사분야합의서에도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기구'를 날리지 않기로 합의한 바 있다.
김 제1부부장은 이 같은 두 합의를 들며 "남조선 당국이 이 조항들을 결코 모른다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군사분야합의의 파기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김 제1부부장의 담화가 나온 직후 정부는 통일부 브리핑을 통해 대북 전단 살포를 제도적으로 막는 방법을 검토 중에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사실상 북한의 입장 발표에 즉각 호응한 모양새가 된 것이다.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 2020.05.11. © News1 김명섭 기자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 2020.05.11. © News1 김명섭 기자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은 "접경 지역에서의 긴장 조성 행위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라며 "접경 지역의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에 위험을 초래하는 행위는 중단돼야 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명시적으로 전단 살포를 막겠다고 하진 않았으나, 제도 개선을 통해 사실상 전단 살포 행위를 차단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또 '접경지 주민들에게 피해를 준다'라는 메시지를 통해 여론 환기도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역시 "대북 전단은 백해무익"이라며 사실상 살포를 적극적으로 막겠다는 입장을 연이어 발표했다.

정부 당국자에 따르면 청와대는 이날 김 제1부부장의 담화가 나온 직후 갑작스레 정부 입장 발표를 결정했다. 관련 제도 개선 자체는 판문점 선언 이후 꾸준히 진행돼 온 것이지만, 정부의 '대북 전단 살포 차단' 입장이 공표된 것은 사실상 김 제1부부장의 담화가 불씨를 댕긴 셈이다.

김 제1부부장의 담화도 거친 언사 속에 고민의 흔적이 엿보이기도 한다. 우선 그는 남북 군사합의의 파기를 언급하면서도 판문점 선언의 파기는 언급하지 않았다. 남북의 정상이 합의한 '최고위급 합의'는 건드리지 않으려는 의도가 보인다.

또 금강산 관광의 폐지, 개성공단의 완전 철거, 개성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폐쇄 등 남북 간 걸려 있는 현안을 나열한 것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북한의 최고위급 인사인 백두혈통이 직접 남북 간 사안을 관장하고 있다는 메시지가 발현된 것도 남북관계가 악화 일로를 걸을 것이라는 분석 못지않게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게 만드는 부분이다.

이 같은 관측은 과거 북한이 실제 남북관계 경색 후 재개 국면에서 거친 언사로 우리 측을 비난하고 나서며 주도권 다툼을 했던 전략을 구사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3남인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북한이) 자존심과 체면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먼저 노골적으로 남측에 교류 재개를 제안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남북이 이날 보여 준 행보가 남북이 모종의 어떤 '시그널'을 주고받은 결과 아니냐는 관측도 아주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초부터 북한에 개별 관광, 보건 협력 등 교류협력 사업을 꾸준히 제안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면과 지난해부터 이어진 남북관계 경색 국면에도 불구하고 '씨앗'을 뿌리는 듯했다.

북한의 진의는 이날 담화 이후 행보로 추가적인 판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 코로나19 국면이 완연하게 안정화되지 못했고, 북한도 10월 결산을 목표로 자력갱생 기조의 정면 돌파전을 이행 중이라 빠른 시일 내에 가시적 대화 혹은 접촉이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그러나 북한의 입장에서도 정면 돌파전 성과를 위해 남북 교류가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어 추이가 주목된다.


seojiba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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