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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택트쇼크]③총알배송→안전배송 '트렌드' 변했다…물류 혁신 다음은?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 낮추려면…"물류센터 자동화로 가야"
"빨리빨리 관행 더 안 통한다…방역 실패 땐 천문학적 손실"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2020-06-03 07:05 송고 | 2020-06-03 09:11 최종수정
편집자주 쿠팡 물류센터발(發) '집단감염'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면서 코로나19 시대의 '대안'으로 여겨졌던 '언택트'(비대면)가 돌연 '공포'로 탈바꿈했다. 역대급 호황에 가려졌던 물류센터의 '방역 허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급기야 일부 주택가에서는 '쿠팡맨 사절' 문구가 나붙으며 '택배 혐오' 논란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일상과 가장 가까웠지만, 가장 허술했던 언택트의 '민낯'을 들여다봤다.
29일 경기도 부천시 부천오정물류단지 내 쿠팡 신선센터가 운영을 중단하며 썰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20.5.29/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29일 경기도 부천시 부천오정물류단지 내 쿠팡 신선센터가 운영을 중단하며 썰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20.5.29/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 사람들은 부유하는 의자에 앉아 '화면'을 보고 있다. 일상의 모든 것이 이 안에 있다. 바로 옆에 이웃이 있어도 얼굴이 아닌 '화상'(畵像)으로 대화한다. 물건이 필요하거나 배가 고파도 화면만 있으면 문제없다. 자동화 로봇이 필요한 음식과 물건을 눈앞에 가져다준다.

2008년 개봉한 미국 픽사(Pixar)의 애니메이션 '월-E'의 한 장면이다. 가상의 공상과학(SF)이지만, '감염병'이라는 설정만 빼면 코로나19 시대의 '언택트(비대면)'와 닮은 구석이 많다. 소통은 비대면으로 이뤄지고, 물류는 자동화된 세계다.
이태원 클럽에서 다시 시작된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가 쿠팡 물류센터로 옮겨붙으면서 물류센터 운영시스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비대면 사회가 열리면서 물류센터는 누구보다 일상과 가까워졌지만 '방역 시스템'은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지적에서다.

산학계에서는 '물류센터 자동화'부터 노동 집약도와 물동량을 낮추는 '인식 개선'까지 다양한 해법을 제시한다. 3일 언택트 시대를 마주한 물류업계의 혁신 과제를 살펴봤다.

©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장기적으론 '자동화'가 정답…코로나19로 가속화할 것"
가장 적극적인 해법은 '물류센터 자동화'다. 노동 집약도가 큰 구간을 로봇으로 대체해 감염병 전파 가능성을 원천 봉쇄한다는 구상이다. 초기 비용은 많이 들지만, 장기적으로 규모의 경제를 노릴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물류센터는 일반적으로 집하→풀어놓기(Unpacking)→분류→보관→집품(Picking)→포장(Packing)→출하의 과정을 거쳐 소비자에게 상품을 배송한다. 로봇이나 인공지능(AI)이 대체하는 과정이 많을수록 자동화는 고도화되고,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은 작아진다.

박종대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지난 1일 보고서를 통해 높은 수준의 물류센터 자동화를 이룬 이마트가 비교적 낮은 단계의 쿠팡보다 코로나19 전파 위험성으로부터 안전하다고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쿠팡과 이마트는 분류·집품·포장 단계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쿠팡의 재고관리코드(SKU)는 500만개가 넘고, 하루 300만개 이상 상품이 출고된다. 취급 상품이 가짓수가 많고 크기도 다양하기 때문에 물류시스템을 규격화하기 어렵다. 결국 쿠팡은 사람이 돌아다니면서 상품을 집는 '랜덤 스토우'(Random Stow) 방식을 채택했다.

박 연구원은 "입고와 분류, 집품, 포장 등에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쿠팡 물류센터 아르바이트가 유난히 많은 것도 이 때문"이라며 "쿠팡과 같은 다품종 비규격화된 대량 배송은 구조적으로 자동화가 대단히 힘들다"고 진단했다.

반면 이마트몰 김포 물류센터는 자동화 시스템인 DPS(Digital Picking System)로 인력을 최소화했다. 이마트는 풀어놓기 단계 이후를 '완전 자동화'했다. 320여대의 고속 셔틀과 16대 대형 크레인이 개별 재고가 담긴 8만개의 셀(Cell)을 관리한다.

쿠팡 작업자가 물류센터를 돌아다니면서 집품하는 반면, 이마트는 고정된 자리에 앉아 자동화 로봇이 가져다주는 상품만 처리한다. 풀어놓기 이후 분류, 포장까지 장비의 도움을 받기 때문에 아르바이트 인력이 거의 없다.

박 연구원은 "쿠팡과 마켓컬리는 동일 규모당 이마트 대비 3~4배 인력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며 " 물류센터 안에서 집합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감염 위험이 높은 것도 피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근무자 집합도 측면에서 이마트 물류센터가 상대적으로 감염에서 안전하다"고 평가했다.

박 연구원은 물류센터의 '완전 자동화'를 구축한 글로벌 식품 온라인 유통회사 오카도의 '그리드'(Grid) 모델에 주목한다. 오카도가 도입한 '그리드'는 현존하는 DSP 가운데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평가된다. 수천개의 '그리드 로봇'이 축구장만큼 거대한 '셀'을 오가면서 4만9000여 품목의 상품을 옮긴다. 오카도의 신선식품은 입고부터 출고까지 5시간 만에 이뤄진다.

한국유통학회장을 지낸 안승호 숭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도 한국 물류센터의 지향점으로 '자동화'를 지목했다.

안 교수는 "물류센터는 작업자의 안전보다는 '상품의 보관'에 초점을 맞춰 설계되기 때문에 안전 문제에 취약할 수 있다"며 "예컨대 냉동창고는 공간이 밀폐되고 온도가 낮아 바이러스가 번식하기 좋은 환경"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물류센터의 자동화는 과거부터 비용 절감과 효율성 향상을 위해 꾸준히 진행됐다"며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더 급격히 가속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류센터의 기능과 안전을 모두 최적화하려면 '자동화'가 바람직하다는 설명이다.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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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빨리' 더 안 통한다…신속배송→안전배송 전환해야"

물류센터 운영방식의 무게추를 '속도'에서 '안전'으로 옮겨 달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장 코로나19의 확산을 방지하려면 배송 속도를 낮추더라도 물류센터의 근로환경을 더 안전하게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설명이다. 소비자의 관심사가 '안전'에 집중된 만큼 방역에 실패했을 때 감수해야 하는 '손실'이 어느 때보다 커진 시점이기도 하다.

실제로 쿠팡의 물류센터 방역 관리가 부실했다는 역학조사가 나오자 경기도는 부천 물류센터에 2주간 집합금지명령을 내렸다. 그사이 쿠팡에 쏠렸던 온라인 수요는 경쟁업체와 편의점으로 대거 흡수됐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쿠팡을 탈퇴했다'는 이탈 행렬이 이어지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물류업계가 코로나19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운영 초점을 '신속배송'에서 '안전배송'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방역당국의 역학조사 결과 쿠팡 물류센터 안전모와 옷, 신발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됐다"며 "사실상 물류센터 전체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둥둥 떠다녔다는 의미"라고 진단했다.

이어 "발열체크, 손 소독제 비치 수준의 '형식적인 방역'을 넘어 근로자의 수를 제한하고, 휴게시간을 늘리는 등 접촉 가능성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마스크 지급량을 더 늘리고 안전모, 작업복, 신발을 매일 회사에서 세탁·소독하는 등 현실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물류업계의 '빨리빨리' 관행이 더는 통용되지 않은 시기가 왔다"며 "다소 (배송) 속도가 느려지더라도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롭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일의 효율성에 몰두하면 귀찮고 번거로운 방역 원칙을 간과하기 쉽다"며 "방역이 뚫리는 것도 결국은 이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방역을 철저히 지키는데 투입되는 비용과 방역에 실패했을 때의 손실을 저울질해 봐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쿠팡은 집단감염 사태 이후 근무자 채용 방식을 '캠프'(배송 거점) 단위로 쪼개 세분화했다. 예컨대 A캠프에서 일한 전력이 있는 직원은 오직 A캠프에서만 계속 근무하는 방식이다. 마켓컬리도 물류센터 소독 횟수를 늘리고 일용직의 과거 근무 이력을 확인하는 등 방역을 한층 강화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물류업계의 트렌드가 '신속배송'에서 '안전배송'으로 옮겨가고 있다"며 "두 마리의 토끼를 누가 먼저 잡느냐에 따라 '혁신'의 주인이 결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dongchoi8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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