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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숙 여사, 32년만에 또 이한열 열사 묘역에 헌화…무슨 사연?

김옥숙 여사, 1988년 이 열사 묘역 찾아 헌화·참배
아들 노재헌씨 어머니 조화 들고 다시 참배

(광주=뉴스1) 허단비 기자 | 2020-05-30 07:30 송고
1988년 2월25일 광주 북구 망월동 구묘역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인인 김옥순 여사가 이한열 열사의 묘역 앞에서 참배하고 있는 모습.(독자제공) 2019.8.29/뉴스1 © News1 DB
1988년 2월25일 광주 북구 망월동 구묘역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인인 김옥순 여사가 이한열 열사의 묘역 앞에서 참배하고 있는 모습.(독자제공) 2019.8.29/뉴스1 © News1 DB

망월동 구 묘역에 안장된 이한열 열사의 묘에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의 조화가 놓여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노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씨는 29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와 망월동 구 묘역을 잇따라 찾아 오월 영령에 참배했다.
재헌씨는 5·18민주묘지에 노태우 대통령의 이름의 대형 조화를 헌화했고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 이한열 열사 묘에는 김옥숙 여사의 꽃바구니 화환을 올렸다. 노 전 대통령 부부는 거동이 불편해 아들 재헌씨가 이날 오월 영령에 대신 조화를 헌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옥숙 여사가 자신의 이름으로 이한열 열사의 묘에 헌화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 여사의 화환에는 '이한열 열사의 영령에 추모합니다. 제 13대 대통령 부인 김옥숙'이라고 적혔다.
노씨 측은 32년 전 직접 조화를 들고 찾은 어머니의 마음을 이 열사에게 전하기 위해 1988년 당시 김 여사가 헌화한 것과 최대한 비슷한 모양의 조화를 제작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29일 오후 광주 북구 민족민주열사묘역(5·18구묘역) 이한열 열사 묘소 앞에 노태우 전 대통령 부인인 김옥숙 여사 명의의 화환이 놓여 있다. 화환에는 '이한열 열사의 영령을 추모합니다'라고 적힌 리본이 달려 있다. 김 여사는 지난 1988년 노 전 대통령 당선 직후 이 열사 묘소를 방문한 바 있다. 2020.5.29/뉴스1 © News1 한산 기자
29일 오후 광주 북구 민족민주열사묘역(5·18구묘역) 이한열 열사 묘소 앞에 노태우 전 대통령 부인인 김옥숙 여사 명의의 화환이 놓여 있다. 화환에는 '이한열 열사의 영령을 추모합니다'라고 적힌 리본이 달려 있다. 김 여사는 지난 1988년 노 전 대통령 당선 직후 이 열사 묘소를 방문한 바 있다. 2020.5.29/뉴스1 © News1 한산 기자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는 노 대통령 취임(1988년 2월25일) 직후인 2월27일 광주를 찾아 이한열 열사 묘역에 참배했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해 노재헌씨가 광주를 찾아 오월 영령에 사죄하면서 뒤늦게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노재헌씨의 참배는 5·18 학살 주범의 직계 가족으로는 처음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보다 앞선 88년에 김옥숙 여사가 최초로 방문한 사실이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날 이한열 열사의 묘역을 찾은 노재헌씨는 "6·29민주화선언을 이끌어낸 장본인이시네요. 저보다 한 살 어리시고. 참 잘생기셨네요. 당시에 어머니께서도 조화를 들고 가장 먼저 찾아오셨는데"라며 이 열사의 비석을 어루만졌다.

이한열 열사는 87년 6월 항쟁 당시 가두투쟁을 진행하다 최루탄을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는 항쟁기간 내내 죽음과 사투를 벌이다 그해 7월5일 21살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당시 머리에 최루탄을 맞고 피를 흘리며 동료의 품에서 쓰러져있는 이 열사의 사진이 신문에 실리며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열사의 사진은 국민적 공분을 일으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높였고 회사원을 비롯한 일반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한 계기가 됐다.

당시 민주정의당 대표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은 이한열 열사 사건을 계기로 직선제 개헌을 골자로 한 6·29민주화선언을 발표했다.  

직선재개헌을 포함한 시국수습대책 8개항을 발표, 기대치넘는 극적양보로 시국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게 된 이른다 6.29선언을 하고 있는 노태우 민정당 총재. 87.6.29/뉴스1DB
직선재개헌을 포함한 시국수습대책 8개항을 발표, 기대치넘는 극적양보로 시국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게 된 이른다 6.29선언을 하고 있는 노태우 민정당 총재. 87.6.29/뉴스1DB

6·29 특별 선언은 신군부의 장기 집권에 분노한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뽑자'는 요구를 받아들인 것으로 실질적인 군부독재정권의 항복 선언과도 같았다.  

6·29선언에는 야당의 정치 지도자인 김대중의 활동 제한 조치 해제, 민주화 요구하다 감옥에 갇힌 사람들의 석방, 언론 자유의 보장, 사회 각 부분 자유와 자치 보장, 대학의 자율화와 자유로운 정당 활동 보장 등이 담겼다.

노재헌씨는 "이한열 열사의 희생이 6·29선언을 이끌어내기도 했고 부모님께서 일종의 부채의식이 있으셨던 것 같다. 그래서 오늘 꼭 이한열 열사를 찾아 뵙고 싶었다"며 "어머니의 마음이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씨는 이날 김의기, 김태훈, 윤한봉 열사의 묘를 참배한 후 망월동 구묘역에서 영화 '택시운전사'의 실제 주인공인 언론인 힌츠펜터 기념정원, 이한열, 이재호, 백남기 열사의 묘를 잇따라 참배한 후 묘역을 나섰다.


beyondb@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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