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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법' 위해 국회 문 3000번 두드린 이 사람… "딱 1분만 달라고 하죠"

20일 과거사법 일부개정안 통과…법안 통과 물밑 주역
[인터뷰] 안경호 4·9통일평화재단 사무국장

(서울=뉴스1) 서혜림 기자 | 2020-05-30 06:30 송고
안경호 4·9통일평화재단 사무국장이 25일 서울 종로구 4·9통일평화재단 사무실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과거사법) 통과와 관련해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5.25/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안경호 4·9통일평화재단 사무국장이 25일 서울 종로구 4·9통일평화재단 사무실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과거사법) 통과와 관련해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5.25/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딱 1분만 달라고 말하죠. 국회의원들한테요. 의원들한테 자료를 한 개라도 더 주면서….감정 조절이 안 될 때도 있었죠. 그래도 제 몸 하나 발품 팔아서 꼭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국회에 매일 새 출입증을 만들어 8년 동안 출근한 사람이 있다. 안경호 4·9통일평화재단 사무국장(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 조사팀장·54)이다.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등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근거 법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 개정법률안(과거사법) 통과를 위해 2012년부터 국회를 들락날락했다. <뉴스1>은 25일 과거사법 통과의 물밑 주역 안 국장을 찾아 그 동안의 고통과 심경을 들어봤다.

최소 3000번이었다. 그가 행안위 소속 국회의원들을 18대 국회부터 집요하게 찾아간 횟수다. 2012~2020년 5월 과거사법이 행안위에 통과될 때까지. 매주 월~금요일 오전 9시30분 국회 출입문에서 출입증을 만들었다. 의원들과 보좌진을 많으면 하루에 10명 이상 만났다.

보좌진에게 전달한 과거사 관련 자료만 해도 1톤 트럭 가득이다. 안 국장은 어깨에 보따리상처럼 가득 '장준하 사건''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사건''형제복지원''선감학원 사건'에 대한 유가족과 피해자들의 증언이 모인 자료와 책을 짊어지고 국회의원회관을 그렇게 드나들었다.
"처음엔 의원도 보좌진도 과거사법을 모르니까 쪽지라도 자료라도 한 개 주면서 이야기해야 해요. 고향 이야기하면서 접점을 찾고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그렇게 담당 보좌관도 만나고 법안 쟁점을 서로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거죠. 그렇게 몇 달을 몇 년을 계속 이어갑니다."

안경호 4·9통일평화재단 사무국장이 25일 서울 종로구 4·9통일평화재단 사무실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과거사법) 관련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5.25/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안경호 4·9통일평화재단 사무국장이 25일 서울 종로구 4·9통일평화재단 사무실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과거사법) 관련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5.25/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보통 법안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입법계획 수립 △법령안 국회의장에 제출 △본회의 보고 및 소관 상임위원회(상임위·과거사법은 행안위가 상임위) 회부 △상임위(행안위) 법안심사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법안심사 △본회의 법안심사 △정부 이송 △공포의 과정 순을 거쳐야 한다.

안 국장은 주로 △행안위 소속 국회의원들을 찾아가 관련 자료를 제공하며 같이 법안을 만들었고 △상임위에서 법안이 통과되기 위해 의원들을 설득하러 다녔으며 △법안심사를 하는 국회 전체회의가 열릴 때는 보좌관에게 실시간으로 관련 자료를 메신저로 전달하는 일을 해왔다.

문턱은 높았다. '왜 지금 굳이 과거 이야기를 해서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냐''사회적 비용 많이 든다'는 이유였다. 국회 임기가 끝나면 수개월 동안 공을 들인 각 법안은 자동 폐기됐다. 의원실을 두드리는 일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19대 국회 때도 7개의 법안이 모두 법안심사도 받지 못하고 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서는 미래통합당의 만류로 상임위에서 다시 안건조정위에 회부된 적도 있었다. 법안심사를 다시 하는 우여곡절 끝에 다시 법안은 법사위로 넘어갔다. 통합당은 위원 추천 문제를 걸고넘어졌다. 결국 처음에는 국회 추천 8명, 대통령 추천 4명, 대법원 추천 4명으로 위원들을 구성하라고 했지만 결국 여당 4, 야당 4, 대통령 추천 1명으로 수정하는데 극적으로 합의했다.

"과거사법은 여야가 합의해 통과돼야만 이후에 위원회를 구성하는 것도 원만하게 갈 수 있어요. 여야를 막론하고 우리는 예의를 갖춰서 설득했어요. 민주당에는 수정안이 아무리 후퇴하더라도 간판 내리는 수준만 아니면 다 수용할 수 있다고 했고요. 통합당에도 어떤 안이든 말씀만 해주면 시민사회와 유족이 고민해보고 판단하겠다고 수차례 말했죠"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의원이 약속 자리에 없을 경우 의원실 안에서 밤을 새우고 다음 날 오전 11시에 만난 적도 있었다. 엎어지고 엎어져도 단 한 번의 통과를 위해 8년 간 의원들을 설득하길 반복했다. 과거사 관련 피해자들과 유족들은 점점 노쇠하고 있었다. 안 국장은 기필코 이번에 법안을 통과시켜야만 했다.

그리고 5월20일 '과거사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의 활동이 10년 만에 재개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형제복지원 사건과 선감학원,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 등에 대한 진실규명의 문이 사건 발생 이후 몇십년만에 열렸다. 그는 국회 앞에서 927일 농성해온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한종선씨, 국회의원회관 캐노피에서 단식고공농성을 했던 최승우씨(51)와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과 과거사법 처리를 촉구하며 지난 5일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고공 농성을 하던 형제복지원 피해자 최승우씨(왼쪽)가 7일 오후 농성을 끝내고 지상으로 내려온 뒤 4.9통일평화재단 안경호 사무국장과 포옹하고 있다. 2020.5.7/뉴스1 © News1 성동훈 기자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과 과거사법 처리를 촉구하며 지난 5일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고공 농성을 하던 형제복지원 피해자 최승우씨(왼쪽)가 7일 오후 농성을 끝내고 지상으로 내려온 뒤 4.9통일평화재단 안경호 사무국장과 포옹하고 있다. 2020.5.7/뉴스1 © News1 성동훈 기자

그에게 법안이 통과될 때 왜 눈물을 흘렸냐 물어보니 한참을 침묵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10년을 매달렸는데 말이에요. 두드리는데 30초 걸렸어요. 땅땅. 허무하기도 하고 온갖 생각이 나더라고요. 이틀 전부터 잠을 못 자고 법사위를 기다렸어요."  

지지부진했던 과거사법이 20일 극적으로 통과된 데에는 김무성 미래통합당 의원의 역할이 컸다고 안 국장은 설명했다. 20대 국회에서 과거사법이 다시 폐기되는 것을 볼 수 없다며 국회 지붕에 올라간 형제복지원 피해자 최승우씨에게 "차라리 내 방에서 농성을 하라, 각서를 써 주겠다"며 김 의원은 최씨를 설득했다. 이후 김 의원은 당 원내대표와 간사를 찾아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김무성 의원이 고공 농성하던 최씨를 보고 마침 한번 이야기를 좀 하자고 했어요. 뭐가 문제냐고 말하면서요. 의원회관 401호 들어가서 창문을 열고 지붕 위에 있던 최승우랑 이야기를 했어요."

김 의원의 역할도 컸지만 결국 안 국장과 국가폭력 피해자들과 유족들, 그리고 물밑에서 법안을 끊임없이 만들고 토론회와 공청회, 보고대회, 학술대회, 심포지엄, 전시회 개최와 유해발굴에 동의한 국회의원들이 없었으면 이뤄질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홍익표, 이재정, 강창일, 인재근, 설훈, 전혜숙, 소병훈, 김해영, 김영진 의원, 추혜선 정의당 국회의원,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보좌진 등에게 깊은 감사를 표했다.

"법이 통과되려면 대중의 관심과 정권과 대통령의 의지가 있어야 해요. 과거사법은 이야기해봐야 또 그 이야기구나 이러는데 형제복지원 같은 경우 고공농성도 하고 단식농성도 해서 알려졌죠. 그렇게 법안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안경호 4·9통일평화재단 사무국장이 25일 서울 종로구 4·9통일평화재단 사무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5.25/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안경호 4·9통일평화재단 사무국장이 25일 서울 종로구 4·9통일평화재단 사무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5.25/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그는 자신과 같은 활동가는 '그림자'라고 말했다. 그는 "투명인간처럼 알려지지 않고 드러나지 않게 국회에서 사람을 만나 작업을 하고 자료를 만들고 피해 생존자들이 마음 놓고 발언할 수 있게 조건을 만들어주는 일을 한 거죠"라고 말했다. 매일 국회 앞 문을 두드리고 다녔다는 그에게 '안 국장을 모르는 의원이 없었겠네'라고 묻자 배시시 웃으며 '그럴 거다'라고 답했다.

안 국장은 2001년부터 의문사조사위원회의 조사팀장으로 활동했으며 과거사위원회에 들어가 근무하다가 2011년부터 4·9통일평화재단에 사무국장으로 역임 중이다. 진화위 1기 때는 조사팀장으로 활동했다.

마지막으로 왜 이렇게 과거사법과 의문사 관련 일에 매달렸는지 연유를 알고 싶어 물으니 그는 가만히 미소 지으며 잠시 과거를 회상했다.

"그놈 때문이죠. 그놈과의 약속요."

그가 '그놈'이라고 지칭한 사람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막역지우였던 고 박태순씨(당시 27세)다. 노동운동을 하던 박씨는 1992년 기무사 추적을 받다가 실종돼 열차에서 의문사했다. 안 국장과 영등포 뒷골목 허름한 선술집에서 만난 후 보름이 지난 날이었다. 그는 "친구가 실종됐는데 10년 동안 가족들이랑 친지들도 그 친구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몰랐어요"라고 담담히 말했다.  

안 국장은 의문사위원회에서 사건을 조사했지만 결국 친구 태순이를 숨지게 만든 범인을 잡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에 진화위 2기가 만들어지면 고 박태순씨의 사건도 함께 들여다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태순씨 뿐만 아니라 국가기관에 의해 감금당하고 수도 없이 의문사한 수많은 사람들의 사건도 포함해서다.

형제복지원 피해자와 안경호 국장 등이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8회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를 참관하며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하자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고 있다. 2020.5.20/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형제복지원 피해자와 안경호 국장 등이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8회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를 참관하며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하자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고 있다. 2020.5.20/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suhhyerim777@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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