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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확장] 북한을 보는 또 하나의 창구…건축문화 이해하기

건축은 한 사회의 문화·사회·경제·기술의 집약적 결과물
세 지도자 모두 '건축 정치'로 이념 표현해

(서울=뉴스1) 임동우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프라우드 건축사무소 공동 소장 | 2020-05-30 08:00 송고
편집자주 [시선의 확장]은 흔히 '북한 업계'에서 잘 다루지 않는 북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그간 주목받지 못한 북한의 과학, 건축, 산업 디자인 관련 흥미로운 관점을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임동우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 뉴스1
임동우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 뉴스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이제는 먼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여행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여행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사진 촬영이다. 재밌는 사실은 현대 사진 기술의 기반이 됐다고 볼 수 있는 19세기 중엽의 카메라로는 대부분 건축물을 촬영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노출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미세한 움직임이 있는 인물 사진에는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진 역사의 시작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우리도 여행에서 건축물 사진을 즐겨 찍는다. 파리에서는 에펠탑을 배경으로 찍고, 이집트에서는 피라미드를, 뉴욕에서는 타임스퀘어 한복판에서 인증샷을 찍는다. 그 누가 사진 역사의 기원을 생각하면서 건축물을 찍긴 하겠냐만은, 건축과 도시를 배경으로 한 여행사진을 남기길 원하는 이유는 내가 그 여행을 갔을 때 경험하고 느낀 그 도시에서의 이야기, 즉 역사와 문화를 기록하길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북한을 볼 때에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정치·경제적·사회적 문제들을 인지하고 관심 갖는 것은 어찌 보면 한국인으로서 당연하고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런던에 여행 갈 계획을 세우며 영국의 총리가 누군지, 집권 정당이 어딘지, 경제 상황이 어떤지를 꼭 인지할 필요는 없는 것처럼 우리가 북한에 대해 관심을 가질 때에도 미디어의 관심 주제에 시각을 국한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북한의 건축은 어떠하며 도시 공간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여기에 사는 북한 주민들의 일상의 모습이 어떤지 충분히 호기심을 가질만한 일인 것이다. 세상 모든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북한에서도 그들의 문화, 사회, 경제, 기술 등등이 모두 집약돼 물리적 결과물로 나타나는 것이 건축이고 도시다.

그래서인지 세 명의 북한의 최고지도자들은 모두 건축에 특별한 관심이 있었다. 전쟁 후 평양을 사회주의 도시의 본보기로 만들고자 했던 김일성 주석은 물론이고, '건축 예술론'을 쓰기도 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 역시 건축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 최근 평양건설건재대학의 이름을 건축 디자인에도 방점을 두는 평양건축종합대학으로 변경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역시 건축에 대한 애착이 큰 것을 알 수 있다. 세 명의 지도자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건축을 해석하고 도시를 만들어 왔다. 그럼에도 공통점이 있는데, 정치 사회적 이념인 '주체사상'의 결과물로서의 건축과 도시를 인민들에게 보여 주고자 했다는 점이다.

김일성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 양식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와 민족주의 양식이다. 김일성 주석은 건축은 민족적인 형식에 사회주의적인 내용, 즉 인민의 삶을 반영한 내용을 담는 것이라 이야기를 했다. 이에 따라 북한의 1950~60년대 초기 건축에서는 동유럽에서나 봄직한 건축의 양식과 전통의 양식이 결합되는 작품들을 종종 볼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1950년에 착공한 평양역사나 1954년에 준공한 모란봉 극장의 경우 언뜻 보면 유럽의 건축 양식이지만 자세히 보면 전통의 건축양식이 결합되어 있다. 북한의 많은 공공건축물이 이러한 양식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우리가 이색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이 같은 방향성은 주체사상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이후 민족주의 양식으로 발달한다. 우리가 미디어에서 가장 많이 본 김일성 광장의 배경 역할을 하는 인민대학습당은 그야말로 전통건축의 현대적 해석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서양에서 발달한 양식을 전통적으로 해석한 것이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라면, 민족주의적 양식은 전통의 건축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 양식은 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하기 위해 웅장하고 상징적인 건축에 더욱 도드라지게 사용되었다. 인민대학습당(1982), 인민문화궁전(1974)이 그러했으며, 평양 개선문(1982)에도 민족적 양식이 강조됐다.

한편 김정일 위원장은 건축을 예술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1970년대에 이미 '건축예술론'이라는 책을 편집한 그는 건축에서 모방은 유사성을 낳고 이 유사성은 인민 대중의 생활적 요구를 깊이 파악할 수 없도록 하는 요소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김정일 시대에는 건축의 양식보다는 조형적인 모습이 강조됐는데, 우리에게도 익숙한 산 모양의 류경호텔(1987 착공)이나 아이들을 품에 안는 엄마의 팔 모습을 하고 있는 만경대 소년학생궁전(1988) 등이 김정일 위원장이 주도한 조형성이 강조된 건축 작품들이다.

김일성 광장에서 마주 본 인민대학습당 모습.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김일성 광장에서 마주 본 인민대학습당 모습.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시대를 주체건축의 새로운 전성기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최근 들어 급속도로 진행하고 있는 건설 개발에 건축의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 실제로 김정은 시대에 계획돼 건설된 미래과학자거리나 려명거리의 살림집들을 보면 새로운 부분이 눈에 띈다. 김일성, 김정일 시대 때는 몇 개의 살림집의 유형을 개발해 반복해 활용한 반면, 김정은 시대에 건설된 새 거리에 들어간 살림집은 각기 다른 모습을 띄고 있다.

아직 김정은 시대의 건축의 양식을 정의하기는 힘들 듯하다. 집권 시기가 길지 않으며, 건축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발표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지난 몇 년간 북한의 대표적인 건축으로 홍보되고 있는 것이 다양해진 살림집임은 부인할 수 없다. 쑥섬의 과학기술전당과 같이 체제 선전에 적합한 건축물들도 완공되었지만,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은 북한의 새로운 살림집들이다. 북한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한다.

북한의 세 지도자들은 모두 "건축 정치"를 했다. 건축을 통해 그들의 이념을 완성하고자 했으며 그것이 사회주의건 주체사상이건, 혹은 그 다른 무엇이건 건축을 통해 인민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도시를 만들어 나갔다. 때문에 우리가 북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건축문화와 도시 공간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하고 이를 통해 대화의 폭을 넓혀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친해지고 싶은 누군가가 음악이 중요한 취미이고 가치라고 말하는데, "나는 음악에 관심이 없고 알 필요가 없다"라고 대답해봐야 서로 득 될 것이 없다. 만약 그 누군가가 계속 관계를 지속하고 싶은 상대라면, 내가 음악에 관심을 갖고 상대가 좋아하는 음악에 대해 이해해보려 노력하는 것이 관계의 첫 단추일 것이다. 아마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seojiba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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