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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n번방 방지법'이 아니라 희대의 '인터넷 규제악법'이다

(서울=뉴스1) 송경재 경희대학교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연구교수 | 2020-05-14 17:25 송고 | 2020-05-14 18:50 최종수정
송경재 경희대학교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연구교수 © 뉴스1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사회적 공분을 샀던 'n번방 사건'의 핵심 3명 모두 구속됐다. 이들은 청소년과 여성을 대상으로 성착취 동영상을 게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에게 또 한 번 충격을 줬다.
이 사건 이후 독버섯처럼 남아 있는 악질 성착취 동영상 근절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시민단체와 학계, 인터넷 사업자들은 '제2의 n번방 사건'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기술적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데 정치권의 움직임이 좀 다르다. 여당과 야당 그리고 정부는 n번방 방지를 빌미로 희대의 인터넷 규제법을 만들려 하고 있다. 인터넷에서의 자율규제와 미래지향적인 여러 대안을 무시하고 일방적인 입법 과정에 들어간 것이다.

물론 제2의 n번방 사건은 반드시 막아야 하고 피해자들을 생각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처방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게 문제다. 

◇대놓고 카톡과 네이버 블로그 검열?
현재 국회에서는 이른바 '정보통신망법'과 '방송통신발전기본법' 등 개정안이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를 거쳐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다. 이 법안에 대해 이미 학계와 시민단체, 그리고 기업 차원에서 '부실입법'이란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관련 법안의 목적이 '제2의 n번방 방지'란 명분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논리적으로 모순투성이고 심각한 헌법적 가치 손상, 인터넷 감시의 일상화란 심각한 문제점도 안고 있다.  

첫째,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이른바 감시와 사찰의 일상화를 야기한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통신비밀을 인터넷 사업자에게 열람, 삭제하고 접속을 차단하라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이것은 큰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먼저 통신비밀의 보호가 침해될 소지가 강하다. 대한민국 헌법 제18조는 통신의 비밀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하위법으로 통신을 열람·감시한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더 큰 문제는 인터넷 사업자에게 통신기록을 열람하고 삭제할 권한을 주는 것이다. 이는 국가기관도 아닌 기업에게 지나치게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국가기관도 통신기록을 열람하기 위해서는 영장이나 법절차가 필요하다. 그런데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이 권한을 인터넷 기업에 넘기는 것이다. 그럼 이제 카카오톡이나 네이버 블로그, 카페를 운영하는 인터넷 사업자들은 불법 의심이 가는 개인의 사생활 공간이 카톡과 블로그, 라인 등을 합법적으로 열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심만으로 개인의 기록을 열람할 수 있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아이러니하게 법규제의 번짓수도 틀렸다. 오히려 n번방 사건의 온상으로 지목되는 텔레그램, 슈어스팟은 해외 사업자이기 때문에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의 법망을 벗어날 수 있다. 그러면 검열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사이버 망명으로 텔레그램이나 슈어스팟을 선택한다면, n번방 방지법안이란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의 취지는 무색해질 것이다.

◇데이터센터 감시, 데이터센터도 사이버 망명...망신살

둘째, 방송통신발전기본법의 개정과정을 보면 더욱 기가 막힌다. 정부의 방송통신재난관리 대상에 인터넷데이터센터 사업자를 포함한 것이다. 그러나 핵심은 단순히 방송통신재난관리 대상의 확대가 아니라 부수적으로 정부가 데이터를 검사할 수 있는 권한도 같이 부여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필요하다면 주요 통신사업자에게 설비 관련 장부나 서류를 검사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미 정보통신망법 제46조에 재난대비책을 잘 마련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중 규제라는 비판이 강하다.

여기에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은 절차적 문제도 드러나고 있다. 지난 5월6일 법안2소위에 상정된 개정안 2건은 통신재난에 대비한 통신사 규제 수준을 상향하는 수준이었으나 갑자기 부가통신사업자도 포함됐다.

그럴 뿐만 아니라 한국 인터넷 관련법의 가장 큰 문제점인 대통령령에 포괄 위임하는 독소조항도 그대로 남아 향후 행정권에 의한 규제 강화의 여지도 있다.

만약 이런 독소조항들이 계속 남아 있으면 정말 있어서는 안 되지만 일부 인터넷 사업자들의 망명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인터넷데이터센터의 검사를 피하려고 해외로 망명할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사용자들은 감시와 통신 검열을 피해서 사이버 망명하고, 인터넷 사업자는 정부의 이중규제를 피해 데이터센터를 해외로 이전하는 웃지 못할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정부와 여야, ICT 전문가 부재가 만든 혼란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ICT 활용은 중요한 무기였다. 이에 전 세계의 이목이 한국의 ICT활용의 재난예방과정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ICT와 보건방역이 결합된 'K-방역'이란 신조어까지 나올 정도다.

그런데 정보통신 강국 대한민국의 이번 입법 과정을 지켜보면 근본적으로 정책결정 라인에 ICT 전문가가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이다.

문재인 정부에 들어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비롯해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 여러 ICT 관련 정책이 쏟아지지만, 아직 인터넷에 관한 시각은 산업사회의 관료적이고 경직된 감시 마인드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정치권과 정부 정책결정권자들은 관료중심주의, 시장중심주의 시각에서 벗어나 다각적인 차원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ICT 전문가집단의 조언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이번 코로나19 확산과 방역에서도 보건 방역전문가의 의견을 잘 수용한 국가는 성과가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국가는 큰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전문가집단은 이럴 때 활용해야 한다.

이번 정보통신 관련 개정법안들은 단순히 법하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세간의 관심사를 그대로 입법하는 것이 아니라 인권적 가치와 ICT 산업의 손실 등 다각적 고민과 이해당사자간 논의가 필요하다.

5월로 임기가 끝나는 20대 국회 마감에 임박해 사회적 합의 없는 인터넷 규제법보다는 21대 국회에서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미래지향적인 n번방 대책과 방송통신재난관리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과거 인터넷 관련 규제법인 '정보통신망법' 인터넷선거 금지, 임시조치 조항 등도 국회임기 말에 개정되어 제대로 검토가 이루어지지 못한 경험이 있다. 이 조항은 한국이 매년 인터넷 자유도 평가에서 마이너스가 돼 2019년까지 부분적 자유국에 머물러 있다.

20대 국회는 정보통신 관계법 개정으로 또다시 '인터넷 규제국', '인터넷 자유 후진국'이란 오명을 후세에 남기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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