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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잘츠부르크와 트랩 패밀리

'사운드 오브 뮤직' 下(끝)

(서울=뉴스1) 조성관 작가 | 2020-04-09 12:00 송고 | 2020-04-10 13:46 최종수정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포스터. 영화에서 가정 교사 마리아가 아이들과 '도레미송'을 부르는 장면.

올해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 세상에 나온 지 55년이 되는 해다. 로버트 와이즈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세계 영화사에서 기념비적인 기록을 세웠다.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오스카상도 10개나 받았다. 1965년 이후 20세기 동안 어떤 영화도 이 영화의 흥행기록을 감히 넘보지 못했다. '사운드 오브 뮤직 현상'이었다.
와이즈 감독은 이 현상의 원인을 세 가지로 해석했다. 첫 번째는 실제 이야기를 토대로 영화의 플롯을 짰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감동적인 가족 이야기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는 점이고, 마지막은 아름다운 알프스와 잘츠부르크를 배경으로 하고 최고의 배우들이 연기했다는 사실이다.

'사운드 오브 뮤직'은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는 영화다. 보면 볼수록 새로운 감동의 싹이 움튼다. 그런데 의외로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운드 오브 뮤직'은 상(上)편에 언급한 대로 뮤지컬이 영화보다 앞서 세상에 나왔다. 1959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로 올라 1500회 이상 공연되었고, 토니상을 6개나 휩쓸었다. 
 
잘츠부르크에서 '트랩 가족 합창단'으로 활동할 때의 모습. 잘츠부르크시 제공
잘츠부르크에서 '트랩 가족 합창단'으로 활동할 때의 모습. 잘츠부르크시 제공

뮤지컬 대본은 마리아 폰 트랩(1905~1987)의 자서전 '트랩 가족 합창단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였다. 아무리 사실을 토대로 했어도 뮤지컬이나 영화로 극화(劇化)하려면 기본 골격은 그대로 두고 어느 정도의 윤색이 불가피하다. 지금부터 사실만을 들여다본다.   

트랩은 오스트리아 제국 잠수함 지휘관
 
게오르그 폰 트랩(1880~1947)은 오스트리아 귀족 집안의 남작이다. 1911년 아가사 화이트헤드와 결혼한다. 트랩의 장인은 잠수함 어뢰를 개발한 엔지니어였다. 트랩은 1차 세계대전 중 오스트리아 해군으로 복무했고, 대령까지 진급해 잠수함 부대의 사령관으로 명성을 얻었다. 

이렇게 말하면 독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겠다. 오스트리아가 내륙 국가인데 무슨 해군이 있고, 또 잠수함 부대는 무슨 소리냐. 맞는 말이다. 현재 오스트리아는 국토 면적 8만3000㎢으로 독일, 스위스, 프랑스, 이탈리아, 체코 등으로 둘러싸인 내륙 국가다.
오스트리아 잠수함 지휘관 시절의 트랩 대령(빨간 화살표). 잘츠부르크시 제공
오스트리아 잠수함 지휘관 시절의 트랩 대령(빨간 화살표). 잘츠부르크시 제공
그렇다면 오스트리아는 언제부터 현재의 영토가 되었을까.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부터다. 오스트리아는 1차세계대전 이전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국토 면적이 67만㎢가 넘는 유럽의 강대국이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 되면서 국토면적의 5분의 4를 잃고 소국(小國)으로 떨어졌다.
현재의 베네치아를 포함한 이탈리아 북부와 아드리아해(海) 일부가 모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였다. 지중해에 면해 있으니 제국은 해군을 설치했고, 잠수함부대를 운용했던 것이다.          

트랩 대령은 수도 빈 근교에 살면서 1921년까지 부인과의 사이에 일곱 명의 자녀를 둔다. 트랩의 부인 아가사가 1922년 병으로 사망하면서 트랩 일가는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트랩 대령은 살림을 줄여 잘츠부르크 교외에 새집을 장만해 이사한다. 
마리아 폰 트랩이 잘츠부르크시에 보낸 친필 편지. 잘츠부르크시 제공
잘츠부르크로 이사한 이후에도 한동안 트랩 일가는 몹시 힘든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가 트랩 가족에 시련의 장막이 걷히고 햇살이 비쳤다. 잘츠부르크 논베르크 수녀원의 견습생 마리아 폰 쿠체라가 트랩 집안에 임시 가정교사로 들어온 것이다. 어머니를 잃은 일곱 명의 아이들은 다정다감한 마리아를 좋아하게 되었고, 트랩 대령과 마리아의 거리도 점점 가까워졌다. 두 사람은 1927년 논베르크 교회에서 결혼한다. 마리아는 스물두 살, 트랩은 마흔일곱 살. 두 사람 사이에서 딸 두 명이 태어났다. 트랩 부부는 모두 아홉 명의 자녀를 두게 되었다.

1935년, 교구 사제인 프란츠 바스너 박사가 트랩 대령과 친해지면서 트랩 가족에게 합창을 가르친다. 바스너 박사의 지도 아래 취미로 시작한 가족 합창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합창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다. 이후 유럽 각국에서 초청 공연이 잇달아 트랩 일가는 유럽 순회공연을 하기에 이른다.

1938년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한다. 나치 독일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던 트랩 대령은 미국 이민을 결심하고, 가족을 데리고 알프스를 넘어 스위스로 들어갔다.

오스트리아가 나치에 점령된 후 잘츠부르크에서 자유 세계로 망명을 택한 명사들이 여러 명 된다. 전기 문학에서 명성을 떨친 유대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 역시 빈에서 잘츠부르크로 이주했다가 다시 스위스로 갔다. 잘츠부르크는 알프스산맥 자락을 사이에 두고 스위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적지 않은 오스트리아인이 탈출 루트로 삼았다.

트랩 일가는 미국 뉴욕에 도착했다. 부부 사이에서 1939년 아들이 태어나면서 자녀는 열 명이 되었다. 뉴욕에 정착한 이후 트랩 가족 합창단의 인기는 더 치솟았다. 트랩 가족합창단이 가는 곳마다 열광적인 환영의 물결이 이어졌다.

1941년 트랩·마리아 부부는 미국 동북부 버몬트주 산속 마을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왜 버몬트주였을까. 그곳이 고향 잘츠부르크와 분위기가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이들보다 앞서 번잡한 뉴욕 생활을 청산하고 버몬트 숲속으로 들어간 부부를 기억하고 있다. 스코트 니어링과 헨렌 니어링 부부다. 니어링 부부는 스무해 동안 버몬트 숲속에서 절반 이상을 자급자족하며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살았다.  
미국 버몬트에서 트랩 패밀리 롯지를 운영할 때의 트랩 부부. 잘츠부르크시 제공
미국 버몬트에서 트랩 패밀리 롯지를 운영할 때의 트랩 부부. 잘츠부르크시 제공
트랩 부부는 숲 속에 큰 농장을 사들여 잘츠부르크 스타일의 샬레(Chalet)로 꾸몄다. 입소문이 나 방문객이 많아지면서 고급 리조트 호텔로 바뀌었고, 트랩 일가의 가족 사업으로 자리 잡는다. 현재의 '트랩 패밀리 로지'(Trapp Family Lodge)가 된다.

트랩 대령이 잘츠부르크에서 산 기간은 1922년부터 1938년 초까지 16년이다. 트랩 대령은 잘츠부르크에서 새로운 사랑과 음악을 만났고, 이것이 미국에서의 제2의 인생과 '트랩 패밀리 롯지'의 밑거름이 되었다.          
 
모차르트와 카라얀이 생을 받은 곳
 
잘츠부르크의 별칭은 '사운드 오브 뮤직 도시'다. 1965년 이전까지 알프스 산자락의 이 도시는 '모차르트의 도시'였다. 손바닥만 한 도시 잘츠부르크에서는 어딜 가나 모차르트를 피할 수 없다. 게트라이데 가세의 모차르트 생가(生家)를 비롯해 스물다섯 살까지 산 모차르트 하우스가 있다. 이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모차르트 연구기관인 모차르테움이 있다. 이뿐인가. 모차르트 다리, 모차르트 광장, 모차르트 동상 ….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의 고향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축복받은 도시인데 전설적인 명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까지 이곳에서 생을 받았으니 더 말해 무엇할까. 카라얀은 모차르테움에서 1929년 피아니스트로 데뷔했다.
잘츠부르크 게트라이데 가세의 모차르트 생가. 조성관 작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1920년 시작됐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브레겐츠 페스티벌과 함께 세계 3대음악축제로 평가받는다.

영화의 대성공으로 잘츠부르크는 하루아침에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명성도 덩달아 높아졌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줄리 앤드류스를 비롯한 출연 배우들은 트랩 일가와 가족처럼 지내는 관계로 발전한다.

잘츠부르크를 찾는 외국 여행객을 국적별로 분류하면 미국인이 상위권에 든다. 미국인들은 '사운드 오브 뮤직' 투어를 위해 대서양을 건너 잘츠부르크로 날아온다. 아름다운 산, 호수, 정원, 성, 그리고 음악. 모차르트 생가와 호엔 잘츠부르크가 있는 구시가는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모차르트 광장, 레치덴츠 광장, 미라벨 정원, 호엔 잘츠부르크 성. 구시가 골목은 언제나 여행객들로 넘쳐난다.
'도레미송'의 무대로 나오는 미라벨 정원. 뒤로 보이는 곳이 구시가와 호엔 잘츠부르크 성이다. 조성관 작가
'도레미송'의 무대로 나오는 미라벨 정원. 뒤로 보이는 곳이 구시가와 호엔 잘츠부르크 성이다. 조성관 작가
영화에서 트랩 가족이 '에델바이스'를 부르는 합창대회 장소를 기억할 것이다. 트랩 대령이 '에델바이스'를 부르다 목이 메는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여름승마학교인 이곳은 실제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열리는 곳이다. 페스티벌이 열릴 때면 정장과 드레스를 갖춰 입은 세계의 음악 애호가들로 축제 극장 앞길은 웃음꽃이 핀다.

잘츠부르크시의 공식 슬로건은 '세계의 무대'(the stage of the world)다. 모차르트, 카라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트랩 가족 합창단, 사운드 오브 뮤직. 이 모든 것을 하나로 엮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역시 '세계의 무대'다.


autho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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