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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월요묵상] 거리두기로 제한된 공간은 자기혁신의 정원

(서울=뉴스1) 배철현 고전문헌학자 | 2020-04-06 06:30 송고
배철현 고전문헌학자.© 뉴스1
요즘처럼 인간이 혼자 지낸 본적이 없다. 인간은 언제나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이유를 확인하고, 쾌락을 느끼는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적 동물이란 용어는 그리스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동물인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구분하고 싶어 만들었다.
인간은 본성상 '동물'이지만,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이성'을 소유했다. 인간은 이성을 통해 인간만의 특징인 문화와 문명을 구축했다. '도시'는 이 문화와 문명의 총체적으로 지칭하는 용어다. 도시는 서로 다른 생각과 배경, 인종과 언어를 지닌 사람들이 어울려 지낼 수 있는 추상적인 공간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도시에서 거주하는 동물'이란 의미로 그리스어 문구 '쪼온 폴리티콘'이라고 불렀다. 동물이지만, 다른 인간들과 더불어 지내기 위해 법과 질서가 필요하고, 법과 질서의 실행을 위해 시민들의 자발적인 연민과 배려가 필수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는 인간이 과연 '도시 안에 거주하는 동물'이란 정의를 숙고하게 만든다. 요즘 인간은 '도시 안에 거주하는 동물'이 아니라 '집에 감금된 동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IT의 혜택으로 전 세계의 소식을 항상 접하고 있지만, 육체는 집 울타리에 감금됐다.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하는 우리는 어떤 인간인가? '사회적인 동물' 즉 연민과 배려를 실천하는 동물이 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감염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스스로 거리두기를 실천해야 하는 우리가 이 시간을 선용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이 고독을 답답해하고 밖으로 탈출하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는 반강제적인 '수용소'이지만, 자신을 응시하고 자신의 고유한 역할을 발견하려는 사람에게는 자기혁신을 위한 최적의 '정원'이다.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 (1606–1669) '예루살렘의 파괴를 슬퍼하는 예언자 예레미야', 유화, 1630년, 58x46㎝,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국립박물관.© 뉴스1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 (1606–1669) '예루살렘의 파괴를 슬퍼하는 예언자 예레미야', 유화, 1630년, 58x46㎝,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국립박물관.© 뉴스1

나는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서울남부교도소에서 수용자를 위한 인문학 프로그램을 60회 진행한 적이 있다. 서울대학교가 법무부와 수용자를 위한 인문학 강의를 개설하기로 결정해, 나는 기꺼이 주임교수로 참여했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마아트 프로그램'이라고 지었다. 마아트는 고대 이집트어로 '정의'라는 의미다. 10회로 구성된 한 기수를 6번 진행했다. 한 기수에 40명이 듣는 강의에 100명이 넘는 재소자들이 지원해 2∼3대 1의 경쟁률을 보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당시 강의안을 모은 '낮은 인문학'이란 책도 출간됐다.

금요일은 서울남부교도소에 가는 날이었다. 나는 강의할 교수와 함께 매주 금요일 오전 9시 구로구 천왕동에 있는 서울남부교도소를 찾았다. 내가 사는 설악면에서 서울남부교도소와의 거리는 90km로,  자동차로 거의 2시간 거리다. 나는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종종 상념이 빠졌다.

"인간이 제한된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사실 모든 인간은 제한된 시간과 공간에서 잠시 살다가 사라진다. "내가 수용소 안에서 생활한다면, 나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나는 매 시간 강의할 교수를 소개하기 전에, 항상 이런 질문을 던졌다. 내가 자동차를 몰고 오면서 나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여러분은 1주일 전과 다른 인간이십니까?" 그러면 불편한 침묵이 흐른다. 천천히 재소자들 눈을 살펴봤다. 그들의 눈에는 회한과 희망이 섞여 있었다. 재소자들의 강의집중도는 남달랐다. 그들은 절박하게 자기 삶을 변화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교도소는 자신을 혁신할 수 있는 최적의 '정원'이다.

노예였다가 철학자가 된 에픽테토스의 혜안은 언제나 남다르다. 그는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두 가지로 간단히 구분했다. 자신이 조절할 수 있는 것들과 조절할 수 없는 것들로. 어리석은 자는 자신이 조절할 수 없는 것들에 연연한다. 과도한 부, 명예, 권력 혹은 기후와 같은 것들이다.

반면에 지혜로운 자는 자신이 조절할 수 있는 것에 몰입한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이다. 내가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내 생각이며 그런 생각이 만들어낸 시선뿐이다. 내가 세상에 바라는 그것이 먼저 되지 않으면, 세상이 변할 리가 없다. 세상은 나의 온전한 연장이기 때문이다.

'마아트 프로그램'의 마지막 수업은 독후감 발표다. 수용자들은 지정된 도서를 읽고 자신의 삶의 변화를 글로 적어 제출했다. 이들의 에세이는 감동적이다. 자신의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고, 자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자기 투쟁과 용서,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수용자는 자신의 사적인 생각과 내용을 담은 글을 다른 동료들 앞에 덤덤하게 고백한다. 그리고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가족을 용서하고 그리워하면서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그의 진심은 우리 모두를 울렸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이 틀렸다는 교정이 아니라 자신을 깊이 돌아보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용기이며 희망찬 미래를 만들겠다는 의지다.

코로나19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면서, 제한된 공간을 자기변화를 위한 훈련장으로 만들 것을 요구한다. 이 제한된 공간은 자기 연민의 씨앗을 심어 배려의 꽃을 피울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그 은밀한 공간이 자기혁신과 사회변혁의 시발점이다.

함석헌은 우리에게 묻는다. "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 이 세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 세상의 냄새가 들어오지 않는, 은밀한 골방을 가졌는가? 그대 마음의 대문 은밀히 닫고, 세상 소리와 냄새 다 끊어 버린 후, 맑은 등잔 하나 가만히 밝혀 놓으면, 극진하신 임의 꿈같은 속삭임을 들을 수 있네." 여러분은 1주일 전과 다른 인간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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